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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땅, 파타고니아

<어디로든 가보자>

  • (2024-01-19 10:27)



파타고니아라는 이름은 어딘지 비장미가 느껴진다
. 설핏 피냄새가 비치기도 하고. <진화론>을 완성한 찰스 다윈은 스물다섯 살 무렵 이곳 파타고니아를 여행했다. 200년도 더 전에 이 황야를 찾은 그는 젊은 날의 여행을 바탕으로 진화론을 완성했고, 세상의 핍박을 받기는 했지만 인류의 생각과 의식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가혹해서 더 아름다운 곳
파타고니아는 가혹하다. 사계절이 1년을 두고 바뀌는 풍경과 기후를 말한다면 파타고니아에서는 하루에 사계절을 겪을 수 있다. 아침이 봄이라면 낮 동안 짧은 여름이 지나가고, 이내 해가 기울면서 가을과 겨울이 이어진다. 지금까지 이곳이 미지의 땅, 여전히 야생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도 가혹하다 못해 참혹한 기후 때문이다. 특화된 동물만이 이 거친 대륙의 칼바람을 피해 겨우 적응했고, 심지어는 식물도 특화된 품종만이 터전을 잡았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끝자락에 펼쳐진 파타고니아는 황량하다는 이유로 더 아름답게 느껴지고
, 세계의 여행자들을 매료시킨다. 깎아지른 산과 눈앞을 막아선 우뚝한 빙하는 뜻하지 않게 인간의 내면을 깊이 성찰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지각이 움직이는 대로 솟은 땅은 산이 되고, 비바람에 팬 그대로의 땅에 물이 담기면 호수가 되며, 씨앗이 담기면 험준한 관목지대가 되고, 아무것도 담지 않은 땅은 잔뜩 바위를 품은 바람의 길이 된다.

채도 낮은 태양 아래에 펼쳐진 거대한 대지 파타고니아에 열광하는 여행자들은 마치 갓 받은 선물꾸러미를 풀 듯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다
.


한반도의 다섯 배
파타고니아는 특정 도시나 행정구역이 아니라 시베리아처럼 국적에 상관없이 통칭되는 지역을 말한다. 칠레의 푸에르토몬트와 아르헨티나의 콜로라도 강을 잇는 선의 남쪽 지역을 광활하게 일러 파타고니아라고 한다. 전체 면적이 한반도의 5배 가량으로 100에 이른다. 파타고니아라는 이름은 1520년 마젤란이 이 지역에 도착했을 때 인디오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큰 몸집에 주눅이 들어 거인(patag.n)이라고 이름 붙인데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서쪽으로는 안데스산맥이 있고, 동쪽으로는 파타고니아 고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안데스산맥의 서쪽이 칠레 파타고니아, 동쪽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다.

칠레 파타고니아는 강수량이 많고
, 안데스 빙하의 침식 작용이 더해져 복잡한 해안선과 산악 지형을 갖게 됐다. 반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는 건조하다. 칠레나 아르헨티나의 영토 모두 핵심 지역과 거리가 멀어 전반적으로 인구가 드물며, 인구가 드문 만큼 큰 도시도 거의 없다. 옛날에는 밀 재배와 목축업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석유와 천연가스의 채굴 등이 주요 산업으로 발돋움했으며, 최근 들어서는 관광 산업이 주력으로 자리 잡았다.
 

세상의 끝이자 시작
칠레의 토라스 델 파인과 아르헨티나의 엘 칼라프ATE 국립공원은 파타고니아의 핵심이다. 산과 산 사이를 누비며 휘몰아치는 바람과 눈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특히 토라스 델 파인의 파나마운트와 푸에르토 네드레의 그란데 갈레리아는 풍경에 빨려 들어가 다시는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게 만든다.

워낙 혹독한 기후인지라 집단 군락을 이룬 곳은 거의 없다
. 적게는 두세 집, 많아도 채 열 가구가 안 되는 작은 마을들이 마치 야생동물의 서식지처럼 자리 잡고 있다. 공짜로 줘도 못 살 것 같은 집에서도 아기는 태어나고 파타고니아의 거대한 자연과 함께 뒹굴고 맞서 싸우기도 하면서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어간다.


푸에르토 니탈레스와 엘 칼라프테는 마을 자체가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더 변할 것도 더 바랄 것도 없이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은 반은 자신들이 원해서, 나머지 반은 파타고니아가 원해서 그들만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가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지구 상에는 수많은 세상의 끝이 있고, 땅이 있지만 파타고니아야 말로 이 세상의 끝이며 지구를 떠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바꾸어 말하면 세상의 끝이란 이 세상이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말이며, 이 땅의 끝이란 이 땅이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진게티이미지프로>


거친 들판에 흐린 하늘 몇 개만 떠 있었어
내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믿어보라고 했지?
그래도 굶주린 콘도르는 칼바람같이
살아 있는 양들의 눈을 빼먹고, 나는
장님이 된 양을 통째로 구워 며칠째 먹었다.
어금니 두 개뿐, 양들은 아예 윗니가 없다.
열 살이 넘으면 아랫니마저 차츰 닳아 없어지고
가시보다 드센 파타고니아 들풀을 먹을 수 없어
잇몸으로 피 흘리다 먹기를 포기하고 죽는 양들.
사랑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고 믿으면, 혹시
파타고니아의 하늘은 하루쯤 환한 몸을 열어줄까?
짐승 타는 냄새로 추운 벌판은 침묵보다 살벌해지고
올려다볼 별 하나 없어 아픈 상처만 덧나고 있다.
남미의 남쪽 변경에서 만난 양들은 계속 죽기만 해서
나는 아직 숨겨운 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파타고니아의 양> 전문: 마종기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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