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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규제 완화가 능사는 아니다

  • (2023-09-01 10:01)

지난 8월 4일부터 10일까지 국무조정실 홈페이지에서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 규제개선’ 관련 온라인 공개 토론이 진행됐습니다. 현행법상 건강기능식품은 개인 간 재판매가 불법입니다. 이에 정부는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위한 규제 혁신 차원에서 개인 간 재판매를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막상 온라인 공개 토론을 진행하자 의견을 제시한 1,155건 가운데 반대가 1,093건으로 찬성 62건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온라인 공개 토론을 진행하면 당연히 찬성 비율이 높게 나올 것이라 생각했던 국무조정실도 당혹스러운 입장입니다. 여기에 주무 부처인 식약처도 반대한다며 반기를 들었습니다. 법안을 추진하는데 가장 중요한 여론도 부정적입니다.

보통 우리 사회에 큰 사건·사고가 터질 때나 어떤 시장을 활성화할 때 가장 앞세우는 말이 규제의 완화 또는 철폐입니다. 하지만 규제의 완화나 철폐가 발생한 사건·사고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나 시장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규제를 최소화할 수 있게 시장을 올바르게 구성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정부가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를 추진하는 것을 보고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를 금지하는 규정을 없애는 것이 시장의 올바른 방향성과 부합되는가? 정부는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를 추진하는 근거로 해외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EU, 일본 등 해외의 경우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건강기능식품 판매에 대해 국가에 신고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건강기능식품법 6조 2항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 판매업을 하려는 사람은 일정 시설을 갖추고 영업소 소재지를 담당하는 지자체장에게 신고해야 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정부의 주장처럼 단순히 개인이 자신에게 불필요한 건강기능식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판매하는 것만 생각하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2002년 건강기능식품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우리나라는 소비자 보호와 영업자 관리를 법률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조업은 허가제, 판매업은 신고제로 규정하고 있으며, 표시·광고도 사전에 의무적으로 심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 허용은 20년 넘도록 지켜온 건강기능식품의 엄격한 관리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필자도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건강기능식품법이 외국보다 너무 많은 규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비판하는 글도 수차례 써왔습니다. 하지만 규제 완화에도 우선순위가 있으며, 얼마나 다수의 사람이 원하는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정부가 진정으로 건강기능식품 활성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진정 기업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좀 더 세심하고 꼼꼼하게 들여다봤어야 합니다. 

현재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거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중고거래 플랫폼 소비자 문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거래금지 품목인 건강기능식품의 거래 건수는 5,039건으로 전체 적발 건수의 90%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일반 소비자들은 건강기능식품의 중고거래가 불법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무엇보다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가 논의되려면 구입한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소비자 피해를 보상해줄 명확한 책임 소재가 먼저 마련되어야 합니다. 현재 건강기능식품 판매업은 신고제로 운영돼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면 처벌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개인 간 재판매가 가능해지면 책임 소재도 문제가 되고 처벌도 힘들어집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일대 경제학과 로버트 실러 교수는 “우리에게는 착한 행동을 강요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선의를 가진 게 아니며 모두가 관대하고 공익 정신을 갖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을 제한할 규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가 허용된다면 정부의 주장처럼 단순히 개인이 자신에게 불필요한 건강기능식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판매하는 것은 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재판매하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기술 혁신이나 시장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는 당연히 없애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규제 완화를 추진할 때는 과연 이것이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최민호 기자fmnews@f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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