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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에 발목 잡힌 맞춤형 화장품

‘맞춤형’ 성장세 더딘 이유는? (上)

  • (2023-06-15 17:43)
▷ 일러스트: 노현호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 받았던 ‘맞춤형’ 시장이 예상보다 더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형성된 시장도 당초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다. 소분·혼합이 자유로워 지면서 오프라인, 대면 판매에서 강점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예상과는 다른 형태의 시장이 나타나고 있다. 

 

고성장을 위한 성장통?

지난 2020년 3월 14일 우리나라는 맞춤형 화장품 판매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2016년 3월 시범 사업을 시작하고 4년 만에 전 세계 최초로 화장품을 소분·혼합해서 판매하는 새로운 방식을 법제화한 것이다. 
 

맞춤형 화장품은 2010년대 K-뷰티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자 정부가 화장품을 신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준비해온 야심작이다. 2020년 맞춤형 화장품 판매업이 본격 시행되자 보건복지부도 피부·유전체 분석센터 구축 계획을 발표하며 신규 예산을 25억 원가량 증액했다. 정부가 유전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업체들에 필수적인 인프라를 제공하려 한 것이다.
 

식약처는 ‘2022년 맞춤형 화장품 세계 시장 동향 조사·분석 자료집’을 통해 세계 맞춤형 화장품 시장이 2020년 7억 5,300만 달러(약 9,580억 원)에서 2025년에는 40억 500만 달러(약 5조 955억 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장밋빛 기대 속에 맞춤형 화장품은 새로운 형태의 체험형 오프라인 매장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였다. 이런 이유로 방문판매, 다단계판매 업체들의 관심도 높았다. 맞춤형 화장품 제조관리사는 일명 ‘아모레 아줌마’라 불리던 방문판매 종사자들을 자격증을 갖춘 어엿한 전문 직업인으로 탈바꿈시켜 소비자 신뢰를 높여줄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 맞춤형 화장품 시장은 예상과 달리 침체된 분위기다. 식약처는 국내 맞춤형 화장품 시장이 2021년 약 450억 원대의 시장을 형성했다는 자료를 내놨지만, 막상 업체들은 50~60억 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시범사업부터 운영했던 맞춤형 화장품 매장 이니스프리 강남, 명동점과 아이오페 랩 명동점을 지난해 정리했다. 이로써 현재 아모레퍼시픽이 오프라인으로 운영 중인 맞춤형 화장품 매장은 8곳에 불과하다.  
 

LG생활건강은 2017년부터 운영하던 맞춤형 화장품 매장 CNP Rx 2곳을 이미 정리했으며, 현재 샴푸 등을 맞춤형으로 판매하는 엘 헤리티지 1974 매장 2곳만 운영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맞춤형 화장품 사업과 관련해 “앞으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다단계 업체의 경우 뉴스킨이 지난 2015년 출시한 뷰티 디바이스 ‘에이지(age)락(loc) 미(me)’를 2021년 리뉴얼 출시하며 맞춤형 화장품 시장에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반면 DTC 유전자 검사를 통한 맞춤형 화장품 ‘제너두 커스터마이징 에센스’를 선보이며 시장에 뛰어들었던 아미코젠퍼시픽은 사실상 사업을 접었다. 

 

예상 경로 벗어난 제품 트렌드

맞춤형 화장품 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우선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업체들이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맞춤형 화장품의 경우 소비자 개개인의 피부를 분석하고 요구에 따라 다양한 제품을 소량 생산해야 한다. 정부는 화장품 소분·혼합을 자유롭게 허가하면 기존의 화장품을 활용한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우리나라 여성 소비자들을 너무 얕본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었음이 드러났다. 
 

맞춤형 화장품 시장이 열리자 소비자들은 자신만을 위한 새로운 트렌드를 요구했고, 여기에 SNS를 통해 미디어커머스들도 시장에 뛰어들며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 맞춤형 화장품은 말 그대로 제품을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선택한다. 결국 고객의 주문에 따라 생산량, 규격, 납품일 등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제품 생산의 계획과 관리가 복잡하고 업체는 매출, 영업이익 등에 불확실성이 커진다. 그나마 대기업에서는 기존의 인력과 생산설비를 동원해 이를 극복할 수 있지만 중소업체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실제로 맞춤형 화장품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보다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제품을 주문·생산하는 방식으로 사업 노선을 변경했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이 출시한 맞춤형 화장품 브랜드 ‘커스텀미’는 모바일 피부 분석 서비스, 피부 밸런스 맞춤 제품, 1대 1 전담 매니저 서비스를 제공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비스포크 에센스’를 선보였다. 커스텀미의 앱과 웹사이트에서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얼굴 사진을 올리면 인공지능(AI) 기술이 즉각적으로 주름, 색소 침착, 모공, 홍반(민감도) 등 피부 상태를 분석하고 피부 고민이나 생활 습관에 관한 설문에 응답을 마치면, 피부 상태를 고려한 두 가지 효능 성분과 피부 타입 및 라이프 스타일에 적합한 제형을 조합해 주문 후 조제되는 방식이다. 
 

여기에 오프라인 매장에서 화장품 소분·혼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 자격증도 예상을 뛰어넘는 난이도를 보여주며 응시자들을 좌절하게 했다.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 자격증은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획득해야 한다. 자격증이 없으면 매장을 오픈해도 사장이 소분·혼합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기존의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던 사람들과 방문판매 종사자들이 대거 시험에 응시했지만,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합격하기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2020년부터 일년에 두 번 실시하는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 국가자격시험의 경우 실제로 1회 시험은 33.1%의 합격률을 기록했지만, 2회 시험 10.1%, 3회 시험 7.2%로 급락했다. 
 

이후 응시자들의 불만이 폭주하자 식약처는 부랴부랴 난이도 조정에 나섰고 지난해부터 합격률이 20%대로 올라섰다.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 자격시험은 지난해까지 코로나19로 인한 특별시험까지 모두 7번 치러졌으며, 총 5,627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하지만 합격자 대다수는 브랜드 매장 직원이나 기존에 네일숍, 피부관리 등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맞춤형 화장품 사업을 추진했던 업체 관계자는 “맞춤형 화장품 판매업이 본격 시행됐을 당시 사업자뿐만 아니라 회사 직원들까지 시험에 응시했지만, 한 명도 합격하지 못해 당황스러웠다”며 “자격증 소지자를 고용하려 했지만 이미 매장에서 일하고 있거나 대기업에 입사하겠다고 해서 인력 충원도 이뤄지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최민호 기자fmnews@f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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