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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널리 알린 ‘산 페르민’ 축제

속 터지는 코로나 어디로든 가보자㉝

  • (2022-05-19 16:29)
산 페르민 축제는 스페인의 나바라의 수호성인이자 3세기 말 주교였던 산 페르민을 기리기 위해 매년 76일에 주도인 팜플로나에서 개최된다. 76일 정오에 시작하여 714일 자정에 끝난다. 코로나 이전에는 100만 명 이상의 여행자들이 방문하는 세계 최대의 축제 중의 하나다.


소몰이 투우 등 격렬한
액티비티
헤밍웨이는 자신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산 페르민 축제를 등장시키면서 세계의 독서가들을 스페인으로 불러들였다. 17, 18세기에는 종교적 색채가 두드러졌으나 19세기에는 여자를 대포 속에 넣고 쏘는 오락성 경기와 가면을 쓰고 분장을 한 형태의 행렬이 추가되는 등 오락적 성격이 강한 축제로 변모하였다. 현재 축제 기간 동안에는 소몰이, 투우, 행진, 폭죽 터트리기 등의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소몰이와 같은 행사는 빈번한 사고를 동반하기 때문에 팜플로나 시에서는 매번 안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빵사의 수호신
구전에 의하면, 3세기 경에 산 사투르니노가 기독교를 전도하기 위해 오네스토라는 이름의 신부를 당시 로마의 관할권에 있는 도시였던 팜플로나에 보냈다고 한다.

팜플로나의 원로원이었던 피르모
(Firmo)는 산 사투르니노를 따라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의 아들인 페르민은 어렸을 적 오네스토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페르민이 17살이 되던 해부터 주변 지역에서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24세에 오네스토에 의해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31세의 나이에 기독교를 공부하고 복음을 설교하고자 프랑스로 떠났다. 처음에는 프랑스의 아키텐, 오베르뉴와 앙주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후에 아르메니아로 가서 많은 사람들이 개종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 지역의 권력자들과 마찰이 생기면서 결국 그는 303925일 프랑스 북부 아미앵에서 참수당하여 순교했다. 이 지역을 세르닌 성인의 작은 우물(Pocico de San Cernin)’이라고 부른다.


몇몇 기독교인에게 비밀리에 묻힌 그의 시신은 몇 세기가 지난 615713일에 주교 산 살비오의 관할권에서 발견되었고 후에 근처의 다른 도시로 옮겨져 15세기 고딕 양식의 성당 제단 뒤에 보존되어 있다. 산 페르민은 현재 산 프란시스 사비에르와 함께 나바라 주의 공동 수호성인이며 제화공, 와인 무역업자, 그리고 제빵사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소 축제에 성인의 탄생일 더해
이 축제의 기원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13~14세기이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는 각 지역마다 수호성인이 있고 그 성인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종교적 축제가 있었다. 산 페르민 축제는 이런 종교적 축제에 14세기경부터 시작된 장날의 축제적 성격과 15세기경부터 프랑스와 스페인 접경 지역에서 유행하던 소 축제가 융합되어 발전한 것이다. 본래 산 페르민 성축일은 924일이었으나 이 시기는 우기로 축제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1591년 팜플로나 시는 팜플로나 주교에게 공식적으로 행사 변경을 요청했고 그 의견이 승인되어 현재의 날짜로 옮겨졌다.

1591년에는 76일부터 다음 날인 7일까지 열렸고 이 기간 동안 퍼레이드, 음악, 연극 등의 행사를 하였다. 그 다음해인 1592년부터는 6일부터 10일까지 열렸으며 춤과 불꽃놀이 등의 행사가 추가되었다. 현재는 714일까지 9일간 열린다. 산 페르민 축제는 17, 18세기까지 종교적 성격이 강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는 점차 사라지고 대신 퍼레이드와 같은 행사가 추가되며 유희적 색채가 짙어지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산 페르민 축제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데는 헤밍웨이의 공이 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미국의 노벨상 수상 작가로 1923년을 시작으로 1924, 1925, 1926, 1927, 1929, 1931년에 이곳을 방문했고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3, 그리고 1959년을 마지막으로 이곳에 총 아홉 차례 방문하여 이 축제에 참가하였다. 헤밍웨이는 당시 그가 참여했던 산 페르민 축제에 큰 감명을 받고 그의 소설 <해는 다시 떠오른다>에 산 페르민 축제의 열기, 특히 소몰이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했다.

팜플로나 시는 헤밍웨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196876일 헤밍웨이 동상을 건립하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 및 공원을 만들었다. 또한 그가 자주 다녔던 카페와 레스토랑, 호텔의 대다수가 현재도 존재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아가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실제로 미국인들의 산 페르민 축제에 관한 관심은 미국인의 산 페르민 관련 사이트 접속률이 스페인 현지인의 약 3배가량 되는 것으로 보아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참조: 위키백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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