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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대로의 여행 ‘우포늪’ 산책 (2019-06-07)

권 걸리버의 오빠 어디가?

우포늪은 ‘물새 서식지로서 중요한 습지보호에 관한 협약’인 람사르 협약에 가입돼 있다. 람사르는 이란의 카스피해에 접한 휴양지로 습지보호에 관한 협약이 체결된 곳이다. 경남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에 접해 있다.  


누구라도 쉬어 가는 ‘생명의 여인숙’
우포늪은 생명의 숲이라는 수식어를 함께 갖고 있다. 뭇 생명들이 편안히 기거하면서 일부는 늪의 주인으로 살고, 일부는 잠시 깃들어 지친 날개를 쉬었다 간다.

우포늪으로 들어가는 가장 보편적인 길은 구마고속도로 창녕IC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유어면 쪽의 길과, 대구시 달성군 현퐁IC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이방면 쪽의 길이다. 유어면 길은 많이 알려져 있어 평일에도 제법 많은 인파가 붐빈다. 규모를 갖춘 전망대가 있고 따오기 복원센터, 그리고 생태관까지 갖춰 현장학습을 위해 찾아오는 학생들로 북적일 때가 많다.

반면 유어면 길 외에는 평일은 말할 것도 없고 휴일에도 비교적 한가한 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포에는 4개의 늪이 있다. 유어면의 우포와 이방면의 목포, 대합면의 사지포. 그리고 쪽지벌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우포라는 명칭 속에는 이들 늪이 모두 포함된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이방면 쪽의 우포, 그러니까 목포는 인파가 그다지 많지 않아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시멘트로 포장한 길이 끝나는 ‘형설의 전당’ 입구부터는 늪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흙길이 이어진다. 6월로 막 접어드는 늪길에는 아름드리로 자란 뽕나무가 검붉은 오디를 촘촘하게 매달고 있다. 뽕나무에 맺는 열매가 아니라 나무 자체가 오디나무로 여겨질 만큼 풍작이다. 이제는 누에를 치지도 않고 아이들도 없으니 오디는 누구의 입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고 떨어져 썩어 간다. 가끔씩 새들이 날아와서 맛만 보고 갈 뿐이다. 

느릿느릿 걷는 동안 맑고 높고 경쾌한 새소리가 숲길을 따라 들려왔다가 내쳐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그 아래로는 튜바를 부는 듯 황소개구리는 굵고 낮은 소리로 무료한 늦은 봄날 오후를 노래한다. 공중의 새들은 고음으로 물가의 개구리는 저음으로, 물속에서는 장단이라도 맞추겠다는 것인지 어른 허벅다리만한 잉어는 한바탕 몸을 솟구친 다음 첨벙 내려앉는다. 함께 살아있다는 사실을 귓바퀴에다 각인시킨다.

이 모든 소리들을 덮으며 바람이 불어온다. 왕버들 나뭇잎이 팔랑거리는 소리, 갈대와 물억새가 함께 어우러지며 몸을 부비는 소리. 갈대숲을 비집고 들어가 둥지라도 트는지 신분 미상의 소리들도 끊임없이 들려온다. 우포의 한낮은 자연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들로 가득하다.

우포의 면적은 약 231만 4,060제곱미터, 평수로 치면 약 70만 평이다. 7.5km의 둘레길이 나 있어 내로라는 ‘걷기 왕’들이 많이 찾는다. 산길처럼 박진감이 넘치거나 난이도가 높지는 않지만 하루 온종일 쉬엄쉬엄 걷다말다  그만이다.

우포는 그저 널찍하게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승냥이의 눈’ 같은 도시에 지친 사람들, 도시에 다친 사람들, 도시에서 망친 사람들을 위로한다. 아스팔트만 딛고 살았던 발바닥을 흙길이 부드럽게 감싸주고, 한 걸음 더 내려서면 알맞게 질척거리는 질감이 이곳이 늪이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목가(牧歌)의 현장
풋 개복숭아는 약이라며 가지를 붙들고 씨름하는 아낙들과 본격적인 불볕이 쏟아지기 전에 양파수확을 서두르는 농부들의 머리 위를 지나 시름시름 서산으로 옮겨 서는 해. 굳이 목가적이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그 소박함과 평화로움과 서정적인 느낌들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까지 은근하게 전해져 온다.   

우포는 늪이기도 하지만 길이기도 하다. 물이기도 하지만 흙이기도 하고 나무이기도 하면서 가장 왕성한 식물성 활동으로 더 분주한 동물들을 불러 모은다. 우포에 이끌리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어서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을 거라는 말이 빈말은 아니다. 

우포를 걷는 일은 트레킹이라는 세련된 말보다는 그저 산책이라는 말로도 충분하다. 굳이 워킹화를 사 신을 필요도 없고,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 가끔씩 쭈그리고 앉아 최후까지 버텨보는 자운영 앙증맞은 보랏빛도 보고, 배추흰나비 날아드는 지칭개, 꼬리명주나비가 유독 이끌리는 꽃분홍 낮달맞이꽃밭에도 잠시 앉았다 가는 일. 그렇게 앉아 있다 보면 늪의 반대쪽, 야산에서 늦은 잠에서 깨어나는 고라니의 콧바람소리까지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혼자서 걸어가는 긴 오솔길
쪽지벌 사초숲 사이를 따라 꼬불꼬불 길게 이어진 오솔길을 걷노라면 결국 삶이라는 것도 인생이라는 것도 긴긴 외줄기 길을 혼자서 걸어가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 길을 걷는 동안에는 인맥관리라는 이름으로 안부를 묻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이모티콘을 날렸던 것이 결국은 예리한 미늘을 숨긴 미끼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길은 다시 넘치는 물을 막기 위해 쌓은 둑길로 이어진다. 둑길에는 좀 더 올이 굵은 바람이 오간다. 군락을 이루어 핀 노란코스모스가 허리를 꺾으며 출렁거리고 어느덧 우포는 커튼을 내리듯 물안개를 피워 올린다. 우포를 찍은 유명한 사진들에 등장하는 그 안개가 바로 이 안개다. 이제 안개 속에서는 더 많은 생명을 만드는 몸짓들로 분주할 것이고, 한 밤 한 밤 지날 때마다 늪 속의 생명들도 한 접 두 접 풍성해질 것이다.

물은 부드러움이다. 물가의 민족들이 부드러운 성정을 가진 반면 사막의 민족들은 전투적이며 투쟁적이라고 한다. 지금도 사막에서는 무수한 전투가 벌어지고, 그러잖아도 빈약한 생태계를 궤멸시키는 포탄이 쏟아지는 현실만 보더라도 물이 지닌 평화의 기운을 알 수가 있다.

음이온이니 뭐니 거론하지 않더라도 물은, 그리고 숲은 자체적으로 치유의 은사를 베푼다. 우포늪 둘레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주는 신의 손길을 느끼게 된다. 신은 결코 멀리 있지 않고, 우리가 찾아가면 언제라도 알현할 수 있는 거리에서 숲을 흔들고, 수면 위에 파문을 만들고, 우리의 이마를 간질이는 바람의 형상으로 산재한다. 우포에는 치유의 은사로 충만한 신들로 가득하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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