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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의 사랑

  • (2016-06-03 00:00)

누구나 사랑을 한다. 뜨거운 사랑이든 그것에서 발전한 애증의 관계든, 어떻게든 사랑을 나눈다. 사랑의 주체가 반드시 사람이었던 적은 없었다. 어렸을 때에는 더욱 그랬다. 베개 맡에서 잠자리에 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나체의 음흉한 곰 인형도, 궂은 날씨에도 함께 흙탕물을 나뒹굴었던 축구공도 그들에게는 사랑이었다. 시간이 흘러 사랑의 대상도 점차 변해가고 다양해진다. 어쩌면 아무리 어루만져도 대답 없는 일방적인 짝사랑에 지쳐 갈증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언제부터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싯적의 사랑은 소꿉장난에 불과하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혹자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진정한 사랑을 알 수 있다며 육체적인 사랑에 도달해야만 진정한 사랑이라고 입이 닳도록 강조한다. 그러나 꼭 육체적인 사랑에 다다라야 진정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의 일부일 뿐, 진정한 사랑의 시발점도, 전부도 아니다. 그러기에 일곱 살배기의 사랑을 단순히 어린아이의 치기로 단정 짓기는 힘들다. 사랑을 오롯이 나이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가령 “스무 살 때 만난 영희가 끝내줬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스무 살 때 만난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희를 사랑했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진정한 사랑이란 것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랑이 진심을 다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말은 아니다. 대상이 어떤 것이든 사랑한다는 그 자체가 진정한 것이고 진실 된 것이다. 그래서 너의 사랑이, 내 사랑이 “진정하다”, “못하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사랑하는 순간,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많은 사람들을 사랑해본다. 또 사랑을 하다보면 한 사람만을 위한 영원한 사랑은 힘들다고 깨닫는다. 다만 자신이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만은 영원하다. 그것이 행주가 닳도록 닦던 우승 트로피든, 눈망울에 호수를 담은 가녀린 그녀이든 사랑은 가랑잎에 불붙듯 활활 타오르다가 불길이 옮겨가기도 한다. 그렇게 홀로, 아니면 서로가 새까맣게 태우다보면 우직했던 그것도 작은 입김에 날아 가버릴 만큼 나약해진다. 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누구는 젖 떨어진 강아지 마냥 사랑을 달라 보채기도 한다.


결국 사랑도 오래 묵다보면 짜장과 짬뽕이라는 기로에서 정체된다. 질척한 사랑이냐 얼큰하고 뜨끈한 사랑이냐. 전자는 성화에 시달리다가 결국 정으로 만나는 애증의 관계이고, 후자는 어찌됐든 당장에는 뜨끈하고 얼큰하지만 언젠가는 퉁퉁 붇는 사랑이다. 사실 짜장이든 짬뽕이든 네 그릇 정도는 시켜봐야 군만두도 먹어본다. 오직 한 가지, 혹은 한 사람만을 오래도록 사랑하다보면 진저리가 날 때가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짜장과 짬뽕의 사이에서 짬짜면이라는 편법을 선택하는 이른바 카사노바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의 질타를 면치 못한다.

그들의 행동은 대개 옳지 못한 일로 여겨진다. 사회적인 통념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무조건 잘못한 것만은 아니다. 사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중에, 은연히 또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기도 한다. 표면적으로는 극히 일부일지도 모르지만 이들을 봤다는 목격담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성이라는 허울로 자신의 감정을 숨긴 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직 타인의 눈초리가 신경 쓰이고, 또 그렇게 했을 때 받는 뭇매질이 두려워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마음을 억누르게 된다. 물론 옳고 그르다고 딱 부러지게 정의 내릴 수도 없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천차만별에, 도무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이 그렇다. “너는 애인이 있지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행동은 머저리 같은 짓이야”라고 단언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탁상공론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이 그렇다. 애인과 길을 걷다가도 자연스레 눈을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제로 두 집 살림을 하다가 들통 나 매스컴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간통법이 폐지되면서 세간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그저 자신의 즉흥적인 감정에 충실하던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사람만을 염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이 되었으리라.

무엇이 옳은지는 애매모호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가지 모두 사랑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비록 유통기한이 짧은 사랑이 될지라도 어쨌든 마음이 가는 것을 마냥 붙잡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문제는 사랑을 떠나 타인이 갈망하는 도덕적인 문제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판단은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다. 개인의 선택에 따라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도덕적인 책임을 짊어지거나, 평소 희원하던 동반자를 비로소 찾게 될 수 있다. 우려했던 선택의 시간이 닥치게 되더라도, 또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 없는 사랑을 하면 그만이다.

 

두영준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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