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상품 경계 넓어지는 다단계, 제도도 따라와야
다단계판매 시장에서 ‘상품’의 경계가 넓어지고 있다.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생활용품 등 손에 잡히는 재화가 대부분이었던 시장에 교육과 여행 같은 무형의 서비스가 새로운 상품군으로 등장하고 있다. 상품을 직접 제조하거나 물류망을 갖추지 않더라도 콘텐츠와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다.
대표적인 무형의 상품인 교육상품은 이미 공제조합의 심사를 거쳐 다단계판매를 통해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여행상품도 마찬가지로 출발일과 서비스 내용이 명확하고, 청약 철회에 따른 환급이 가능한 구조라면 취급할 수 있는 것이 공제조합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여행상품은 교육상품보다는 넘어야 할 문턱이 훨씬 더 많다. 우선 여행사의 취소 수수료와 방문판매법이 정한 환급기준이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방문판매법을 적용할 경우 출발일이 임박해 여행사가 상당한 취소수수료를 부과하더라도 다단계판매업체는 판매원에게 방문판매법이 정한 일정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환급해줘야 한다.
적립형 여행은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매월 일정액을 납부하고 포인트 등을 쌓아두었다가 원하는 시기에 여행하는 방식은 서비스 제공 시기가 확정되지 않은 선불식 거래의 성격을 갖는다. 선불식 할부거래의 경우 원천적으로 다단계판매 방식을 적용할 수가 없다.
이는 해외에서 성행하는 여행 다단계의 사업모델을 국내에 그대로 들여오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적립형 여행상품이 지향하는 목적지가 크루즈나 장거리 여행처럼 상대적으로 고가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실적인 제약은 더 커진다.
출발일을 미리 확정하면 선불식 할부거래 적용 대상에서는 벗어날 여지가 있지만 이번에는 다단계판매의 개별 재화 등의 가격상한이라는 또 다른 문턱을 만나게 된다. 결국 국내에서 현실적으로 취급하기 쉬운 상품은 출발일이 정해져 있고 법정 가격상한 이내이면서 청약 철회에도 대응할 수 있는 단기·중저가 여행으로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가 굳이 매달 돈을 적립하면서까지 기대하는 여행은 비용 부담 때문에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여행일 가능성이 크다. 크루즈와 장거리 여행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적립하면 선불식 할부거래 규제와 충돌할 수 있고, 출발일을 확정해 단일 여행상품으로 만들면 가격상한과 환불 문제가 뒤따른다.
교육과 여행상품의 등장은 다단계판매산업에도 상품 다양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기존 제도가 새로운 상품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다단계판매 시장은 오랫동안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중심의 20세기형 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최근 들어 오랜 숙원이기도 했던 교육과 여행 등 새로운 상품군으로의 확장이 미세하게나마 감지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금지냐, 허용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상품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는 제도로의 개선이다. 새로운 상품을 과거의 실물 상품과 똑같은 방식으로만 바라봐서는 시장의 변화도, 소비자보호도 제대로 구현하기 어렵다. 법 개정을 포함한 모든 정책은 절대적으로 수요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전향적인 정책 개선이 아니고서는 시장을 전향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이것은 일개 기업과 관련 당국의 문제가 아니라 700만 명에 이르는 판매원의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다. 다단계판매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한 판매원의 소득도 증가하는 일이라는 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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