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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강력한 폭풍이라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 권영오 기자
  • 기사 입력 : 2026-08-06 15:10:03
  • 수정 시간 : 2026-08-06 15: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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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대하여…>

▷ AI로 생성한 이미지

『도덕경』 제23장 (第二十三章)


希言自然(희언자연)
도가 말이 없는 것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故飄風不終朝(고표풍부종조)
회오리바람도 아침 내내 불지 못하고,

驟雨不終日(취우부종일)
소나기도 하루 종일 내리지 못한다.

孰為此者(숙위차자)
누가 그렇게 하는가?

天地(천지)
하늘과 땅이다.

天地尚不能久(천지상불능구)
하늘과 땅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데,

而況於人乎(이황어인호)
하물며 사람임에랴. 

故從事於道者 同於道(고종사어도자 동어도)
그러므로 도를 따르는 사람은 도와 같아지고

德者 同於德(덕자 동어덕)
덕을 따르는 사람은 덕과 같아지며

失者 同於失(실자 동어실)
잃음을 따르는 사람은 잃음과 같아진다. 

同於道者 道亦樂得之(동어도자 도역락득지)
도와 같아지는 사람은 도 또한 즐거이 그를 받아들이고,

同於德者 德亦樂得之(동어덕자 덕역락득지)
덕과 하나가 된 사람은 덕 또한 즐거이 받아들이며,

同於失者 失亦樂得之(동어실자 실역락득지)
잃음과 하나가 된 사람은 잃음 또한 그를 즐거이 받아들인다. 

信不足焉 有不信焉(신부족언 유불신언)
믿음이 부족한 곳에는 불신이 생기게 마련이다.


폭풍우가 불지 않는 인생은 없다. 오죽했으면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했겠는가. 아무리 사소한 고통이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재앙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고통은 개별적이며 지극히 주관적이다.


물극필반(物極必反)…모든 것은 다시 반대로 되돌아간다 
사업이 무너질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수도 있으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반대로 큰 성공을 거두고 세상의 박수를 받는 날도 찾아온다. 그러므로 인생은 또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로 엄청난 위로를 건넨다. 

길흉화복, 생로병사와 상관없이 노자는 담담하게 말한다.

아무리 거센 폭풍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천지를 삼킬 것 같은 회오리바람도 아침을 넘기지 못하고, 노아의 방주를 소환할 것 같은 소나기도 하루 종일 내리지 못한다. 자연은 극단을 오래 유지하지 않는다. 세상은 언제나 균형을 향해 움직인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극에 달한 후에는 반대로 되돌아간다는 말이다. 지금 40도를 넘는 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것은 가을이 가까이 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바닥을 쳐야 더 높이 오를 수 있고, 상종가를 쳐야 다시 내려갈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인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우리는 영원한 성공을 꿈꾸고, 지금의 실패도 영원할 것처럼 두려워한다. 그러나 자연은 그런 법칙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며, 겨울 끝에는 다시 새싹이 돋는다. 꽃은 피면 지고, 낙엽은 떨어져도 뿌리는 다시 생명을 틔운다. 이 거대한 순환이 바로 도(道)이다.

성경도 같은 진리를 말한다. 전도서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한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

널리 알려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고통은 지나간다. 그러나 영광도 지나간다. 실패는 지나가고 성공도 지나간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절망하지도 않고 교만하지도 않는다.


도의 실천 방안이 덕(德)
道者同於道(도자동어도) 도를 따르는 사람은 도와 하나가 된다는 이 한 문장은 『도덕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철학적인 문장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도는 단순한 길이 아니다. 인간이 끝내 닮아가야 할 삶의 원리이며 근본 가치다.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면 가치관이고 철학이다.

그렇다면 덕은 무엇인가.

덕은 도가 삶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가치관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며, 습관이 인격이 된 상태다. 정직을 반복하면 정직한 사람이 되고, 배려를 반복하면 배려하는 사람이 된다. 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것이다. 거듭거듭 중첩되는 행위가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나 자신을 잃는 게 실(失)
반대로 실(失)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길을 잃는 것이다. 중심을 잃고, 원칙을 잃고, 신뢰를 잃는 상태다. 사람은 한 번의 실패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을 반복해서 따라가느냐에 따라 결국 그 사람이 된다. 실도 거듭되다 보면 결국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말한다.

도를 따르면 도를 닮고, 덕을 따르면 덕을 닮으며, 잃음을 따르면 결국 잃음 그 자체가 된다.

성경도 같은 원리를 말한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다. 불교도 다르지 않다. 부처는 법(法)을 따르라고 말한다. 법은 우주의 진리이며, 수행은 그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는 과정이다. 진리를 잃으면 무명에 빠지고, 무명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낳는다.

노자는 도라고 했고, 성경은 말씀이라고 했으며, 불교는 법이라고 했다. 이름은 다르지만 공통된 메시지는 하나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따르는 것을 닮는다.


방향을 잃은 속도는 표류일 뿐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따른다. 돈을 따르고, 유행을 따르며, 조회 수와 ‘좋아요’를 따른다. 타인의 성공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쉼 없이 달린다. 그러나 무엇을 향해 달리는지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자는 먼저 방향을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따라 살고 있는가?’

방향을 잃은 속도는 질주가 아니라 표류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목적지가 잘못되었다면 그 노력은 삶을 더 멀리 떠내려가게 할 뿐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이익만 좇는 기업은 결국 신뢰를 잃는다. 원칙을 지키는 기업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신뢰를 얻는다. 단기 실적만 바라보는 리더는 사람을 소모품으로 여기지만, 사람을 키우는 리더는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을 얻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구절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믿음이 부족하면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신뢰는 요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직함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리더가 먼저 사람을 믿어야 사람도 리더를 믿는다. 부모가 자녀를 신뢰할 때 자녀도 부모를 신뢰한다. 회사가 고객을 존중할 때 고객도 회사를 선택한다. 신뢰는 언제나 먼저 내어주는 사람에게 돌아온다.

23장은 말을 경계하는 장이 아니다. 조용히 살라는 장도 아니다. 자연의 리듬을 배우라는 장이다. 자연의 리듬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나면 저절로 조용해진다. 폭풍이 지나갈 줄을 알고, 성공도 지나갈 줄을 알며, 실패 또한 지나갈 줄 아는 사람은 조급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무엇을 따라 살아야 하는지 분명히 안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빨리 성공하라고 말한다. 더 많이 소유하라고 부추기고, 더 높이 올라가라고 등을 떠민다. 그러나 노자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닮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면 이미 도 위에 서 있는 사람이다.

폭풍은 지나간다. 명예도 지나간다. 재물도 지나간다. 그러나 평생 품어 온 가치관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 사람과 함께한다. 그리하여 인생은 무엇을 얻었느냐보다 무엇을 닮았느냐가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가장 오래 바라본 것을 닮고, 가장 오랫동안 실천한 행위가 그 사람을 만든다. 

노자는 그 진리를 단 세 글자로 남겼다.

동어도(同於道). 도와 하나가 되는 삶. 이것이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가 가장 깊이 숙고하는 질문이 되는 것이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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