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사설> 다단계 산업, 지형 바뀐다

  • 기사 입력 : 2026-05-15 09:40:05
  • 수정 시간 : 2026-05-15 10:00:58
  • x

다단계판매업계의 ‘탈(脫)서울’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2016년 82.6%에 달했던 서울 본사 비중은 올해 62.2%까지 낮아졌고, 반대로 경기도와 인천·충청권 등 지방 거점의 존재감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한때 삼성역에서 서초역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다단계 밸리’는 업계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대형 세미나실과 화려한 사무실은 곧 기업의 규모와 신뢰를 의미했고, 강남 입지는 사업 경쟁력의 일부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 업계는 더 이상 ‘서울 주소’ 자체를 경쟁력으로 여기지 않는다.

과거 다단계판매업은 오프라인 세미나와 대규모 집합 교육 중심으로 움직였다. 판매원 모집과 조직 관리, 교육과 동기부여가 모두 현장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교통과 접근성이 뛰어난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은 사실상 필수 거점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세미나와 모바일 기반 커뮤니케이션, 비대면 리크루팅이 일상화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굳이 비싼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수하며 강남 한복판에 대형 센터를 유지할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특히 중견·중소업체들에게 서울의 본사를 유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 사무실 임대료뿐 아니라 직원들의 주거 비용과 운영비까지 고려하면 기업 입장에서 서울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경기·충청권은 수도권 접근성과 물류 인프라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으면서도 비용 부담은 훨씬 낮다. 절감된 비용을 제품 개발과 마케팅, 물류 시스템 강화에 재투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방 이전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경영 전략의 변화로 봐야 한다.

물류 환경의 변화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과거에는 서울 외 지역에서 제품을 배송할 경우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불리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현재는 비수도권의 물류망과 고속 교통망이 크게 발전하면서 지역 간 차이가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또한 지방 이전은 기업 운영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본사는 지방에 두고 서울에는 최소 규모의 영업 사무실이나 세미나 공간만 유지하는 형태를 취한다. 과거처럼 ‘강남 본사’를 과시하기보다는 실질적인 운영 효율성과 기능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있다. 물류센터와 교육장, 제조시설, 고객지원 조직 등이 지방에 자리 잡으면 자연스럽게 일자리와 소비 역시 함께 이동하게 되고, 이를 통해 지방 경제가 활성화되는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방 이전이 곧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단계판매업은 소비자 보호와 판매원 권익 보장을 위해 일정 수준의 관리와 감독이 반드시 필요한 산업이다. 지방정부가 다단계판매기업을 제대로 관리 감독하기 위해서는 서울시에 준하는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서울시 소재 다단계판매기업들의 사고율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것도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도 되는 것을 분명하게 정리해주는 담당 공무원이 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의 인사 원칙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직 순환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지속적으로 업계를 지켜보며 전문성을 키워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다단계판매는 유통 산업이면서 컨벤션 산업이기도 하다. 공주시의 사례를 보면 잘 키운 다단계판매기업 하나가 지방정부 살림살이 자체를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이라는 것이 꼭 규제와 제재를 위한 것일 필요는 없다. 규제를 위한 전문성보다는 적재적소를 적시에 지원할 줄 아는 능력이 오히려 기업을 키우고 지방을 키우는데 더 보탬이 된다. 다단계판매업의 지방 시대가 좀 더 폭넓게 열리기를 기대한다. 

 

※ 저작권자 ⓒ 한국마케팅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