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상자산 입법 공백이 키운 ‘사기꾼의 나라’
가상자산을 매개로 한 다단계 금융 사기가 임계점을 넘어섰다. 매일같이 수천억 원대의 피해가 발생하고 수만 명의 서민이 절망에 빠지고 있지만, 이들을 단죄해야 할 법정에서는 피해자의 한숨은 커져 가는 반면 범죄자들의 웃음소리는 법정 밖으로까지 흘러나오는 실정이다.
코인 다단계 모집책들이 “가상자산은 방문판매법상 ‘재화’가 아니기에 처벌할 수 없다”는 법문의 맹점을 악용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사기 수법임에도 어느 재판부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복불복 판결’은 대한민국 사법 정의에 대한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이러한 사법 혼란의 근본 원인은 명백하다.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국회의 무능과 금융당국의 무책임이 결합한 입법과 행정의 총체적 직무유기다. 우리나라는 법에 명시된 것만 금지하는 ‘포괄주의’가 아닌 법에 명시된 것만 허용하는 ‘열거주의’ 체계를 고수하고 있다.
가상자산이 현행법상 재화나 증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국이 제도화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사기꾼들은 그 법적 진공 상태를 놀이터 삼아 활개치고 있다. 민생을 외치던 정치권이 내란과 그에 이어지는 정쟁에 매몰되어 가상자산 기본법 제정을 미루는 동안, 선량한 국민은 범죄의 사냥감이 되고 사법 체계는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 역시 그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가상자산을 제도권 밖의 투기 수단으로만 치부하며 방치해 온 결과 사기꾼들만 혜택을 보는 결과를 만들었다. 당국이 책임 소재를 우려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는 사이, 가상자산 시장은 사기와 자금세탁의 온상으로 변질된 것이다.
산업으로의 육성은 차치하고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을 위해서라도 가상자산의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규제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세계 금융계는 이미 가상자산과 디지털 통화를 우호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현물 ETF를 승인하며 가상자산을 정식 자산으로 편입시켰다. 이는 단순히 투자를 장려하는 차원을 넘어, 엄격한 감시와 제도적 틀 안에서 자산의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 패권을 선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유연한 법제화와 민간의 창의성을 수용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은 주식시장의 불합리한 규제를 타파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가상자산이 제도권 금융으로 조속히 편입되어야만 실체 없는 가짜 코인과 스캠 세력을 뿌리 뽑을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넘어, 가상자산의 재산적 가치와 재화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는 입법 보완에 즉각 나서야 한다.
언제까지 90년대식 방문판매법에 기대어 21세기형 신종 범죄를 단죄하려 할 것인가. 낡은 법문에 갇혀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태는 이제 끝나야 한다. 가상자산 제도의 정상화는 단순히 투자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회복하고 ‘K-금융’이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한 절박한 생존 전략이다. 국회는 더 이상 ‘검토 중’이라는 해명 뒤에 숨지 말고, 사기꾼들의 나라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입법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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