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현대판 ‘호부호형’ 체험기 규제의 역설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합니다. 혈연이라는 명백한 관계가 있음에도 제도와 신분의 벽 앞에서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직접판매업계가 제품을 홍보하는 현실 또한 이와 닮아 있습니다. 자신이 써보고 좋았던 제품을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은 현대판 ‘호부호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직접판매는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산업입니다. 특히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은 판매자가 직접 사용해 보고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추천하는 구조가 핵심 경쟁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식약처와 공정위가 체험기를 기반으로 한 홍보를 부당광고로 엄격히 규제하면서 현장 사업자들의 혼란과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체험기를 악용한 허위·과대광고 사례는 분명 존재합니다. 줄기세포 화장품을 눈에 넣어도 된다는 주장이나 건강기능식품을 암 치료제처럼 홍보하는 행위는 소비자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준이며, 이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 규제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문제는 규제의 범위와 방식입니다. 현재 제도는 허위·과대광고와 정상적인 체험 공유를 충분히 구분하지 못한 채 체험기 자체를 위험 요소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먹고 나서 컨디션이 좋아졌다”, “피부가 촉촉해진 느낌이었다”라는 표현조차 위법 소지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사업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표현의 과잉 억제가 산업 구조 자체를 흔드는 요인이 된 현실입니다.
형평성 문제도 큽니다. 같은 성분, 같은 기능성 원료를 사용한 제품임에도 기업마다, 시기마다, 심지어 담당자마다 허용되는 표현이 달라진다는 불만이 업계 전반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미 허용된 문구를 근거로 제시해도 신규 제품에는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규제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은 크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현장 사업자들의 반발은 단순한 불만을 넘어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냅니다. 이들은 “내 경험을 말하는 것이 왜 불법이냐”고 묻습니다. 거짓도 아니고, 질병 치료를 단정하지도 않았으며, 기업 차원의 광고도 아닌 개인적 체험 공유인데 이를 일괄적으로 부당광고로 규정하는 것은 상식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SNS와 후기 중심 소비 환경 속에서 직접판매업 종사자만 침묵을 강요받는 구조는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홍길동의 ‘호부호형’과 닮아 있습니다. 관계와 경험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제도적 장벽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자신이 사용한 제품이 좋았다는 사실조차 표현할 수 없다면, 직접판매업의 존재 기반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체험기를 무제한 허용하자는 주장은 아닙니다. 질병 치료·예방을 암시하거나, 의약품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표현은 명백히 금지되어야 합니다. 업계 역시 자정 노력을 강화해야 하며, 허위·과대광고를 반복하는 사업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현재처럼 체험기라는 형식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방식은 과잉 규제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다 합리적인 방향은 ‘금지’가 아니라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 사용 소감과 체감 변화 수준의 표현은 일정 부분 허용하되 일반화 가능성을 차단하는 명확한 고지와 가이드라인을 통해 관리하는 방식이 검토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이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효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라는 한계를 분명히 한다면 체험기와 허위·과대광고를 구분할 제도적 공간은 충분히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규제 당국 역시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합니다. 같은 성분, 같은 기능성 원료에 대해 기업마다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구조는 행정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기업들이 한국의 표시·광고 규제를 ‘어나더 월드’라고 부르는 현실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입니다.
법은 현실을 외면한 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체험을 체험으로 말하지 못하는 사회, 좋은 제품을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산업은 건강할 수 없습니다. 소비자 보호와 산업 발전은 상충 개념이 아니라 균형과 정교함 속에서 함께 달성되어야 할 목표입니다.
이제는 ‘말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가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규제로 전환할 시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금지’의 언어가 아니라 ‘기준’의 언어입니다. 체험기와 광고, 정보와 선전, 개인 경험과 효능 주장을 명확히 구분하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정교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소비자 보호와 산업 발전이라는 두 목표가 동시에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야 직접판매업 종사자들도 비로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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