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범인은 우리 뇌의 게으름이다
‘다단계’, ‘직접판매’ 이 단어들을 듣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마 열에 아홉은 인상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직업이자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수단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단어는 오랫동안 ‘사기’, ‘욕심’, ‘쫄딱 망하는 길’ 같은 무서운 말들과 함께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아 왔다. 업계는 꽤 오랫동안 억울하다고 외쳐왔지만,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은 좀처럼 변할 기미가 없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부정적으로만 보게 된 걸까? 단순히 과거의 나쁜 사건들 때문일까?
이러한 편견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 정확히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노벨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그의 유명한 책 <생각, 빠르고 느리게>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뇌에는 두 가지 생각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시스템 1’이다. 이것은 느낌대로 빠르게 반응한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척 보면 딱 아는’ 식이다. 다른 하나는 ‘시스템 2’다. 이것은 논리적이고 꼼꼼하게 따져보는 느린 생각이다.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 때처럼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한다. 문제는 우리 뇌가 에너지를 쓰는 걸 정말 싫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골치 아프게 따지기보다, 빠르고 편한 ‘시스템 1’에게 결정을 맡기려 한다.
우리가 다단계판매를 보자마자 거부감을 느끼는 건 바로 이 ‘시스템 1’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봤던 불법 사건이나 주변의 실패담 같은 자극적인 기억 몇 조각을 뇌가 순식간에 꺼내 이건 위험한 일이니 피해야 한다고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뇌가 게으름을 피우며 ‘다단계=나쁜 것’이라는 꼬리표를 순식간에 붙여버린 결과, 우리는 색안경을 낀 줄도 모른 채 세상을 보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나쁜 이미지만 믿고, 그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이나 변화된 현실은 아예 보려 하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이제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법을 잘 지키며 좋은 제품을 파는 회사와, 사람을 속여 돈을 뜯어내는 불법 업체는 확실히 다르다. 그런데도 뇌가 시키는 대로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본다면, 우리는 변화하는 유통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조차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 된다.
그렇다면 이 지긋지긋한 편견을 벗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우리 뇌의 게으른 본능을 잠재우고, 이성적인 생각을 깨우는 것이다.
소비자인 우리는 귀찮더라도 한 번쯤 의심해 봐야 한다. ‘내가 그냥 기분 탓에 싫어하는 건가, 아니면 진짜 문제 때문인가?’라고 말이다. 소비자 피해를 보상해 주는 공제조합에는 가입되어 있는지, 억지로 물건을 사게 하지는 않는지 따져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조건 싫어하기보다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을 가질 때, 우리는 더 똑똑한 소비를 할 수 있다.
물론, 색안경을 벗기는 일은 업계의 책임이 더 크다. 소비자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업계가 여전히 수상한 모습을 보인다면 편견은 더 심해질 뿐이다. 그동안 업계는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 말하기보다 “누가 얼마를 벌었다더라” 하는 식의 돈 자랑을 더 많이 해왔던 게 사실이다. 이건 사람들의 욕심을 자극해 잠깐 돈은 벌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사람 장사 한다’는 비난을 사는 지름길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일확천금의 환상’을 파는 게 아니라 ‘진짜 좋은 물건’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이 제품을 쓰면 생활이 얼마나 좋아지는지를 증명하는 데 온 힘을 쏟다 보면 제품이 좋아서 쓰는 사람이 늘어나 진정한 유통 시장의 모습을 뽐낼 수 있다. 물건은 뒷전이고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영업을 한다면 그건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다단계의 나쁜 모습 그대로다.
또한, 조금이라도 법을 어기거나 소비자를 속이는 행동이 있다면 업계가 먼저 나서서 엄격하게 내쳐야 한다. 투명하게 운영하고, 지역 사회를 돕고, 상식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도 “어? 내가 알던 예전 그 다단계가 아니네?” 하며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색안경은 참 무섭다. 쓰고 있는 사람조차 자신이 색안경을 썼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경을 벗으면 세상은 훨씬 선명하고 다양하게 보인다. 다단계판매 역시 편견을 걷어내고 보면, 유통 과정을 줄여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주는 괜찮은 시스템일 수 있다.
이제 우리 뇌의 게으른 본능을 벗어내고 조금 더 차분하게 바라볼 때이다. 업계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신뢰를 쌓고, 대중은 무작정 비난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려 노력할 때, 견고한 오해의 벽은 무너질 것이다. 색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마주 보는 것, 그것이 건강한 유통 문화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 저작권자 ⓒ 한국마케팅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TOP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