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뢰라는 오래된 약속에 대하여
믿음을 뜻하는 ‘信(신)’ 자를 해부하면 사람(人)과 말(言)로 이뤄져 있다. 문자라는 것이 처음 형성되던 시절, 가장 먼저 기록하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사람의 말이 지닌 무게였을 것이다. 지배계급과 지식인만이 사용하던 문자의 세계에서 ‘사람의 말이 곧 믿음’이라는 뜻을 부여한 것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규범이 결국 약속을 지키는 것, 말이 행동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에 이들이 합의했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이 오랜 상식을 무색하게 만든다. 말을 믿지 못해 계약서를 쓰고, 계약서도 믿지 못해 합의서를 작성한다. 그럼에도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으니 분쟁과 파국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심지어 국정 최고책임자나 관료들조차 자신들이 서명한 문서를 “꼭 지키자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하는 시대다. 국제무대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변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본 정부 간의 관세 협상에서 드러난 촌극은, 말의 가치와 신뢰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다단계판매업은 ‘대면사업’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말과 말,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이루어지는 산업이기에 신뢰는 생존의 전제이자 기업과 판매원 모두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요즘 업계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한 약속도 믿지 못하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졌다. 약속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불신, 그리고 그 불신이 초래한 혼란이다. 회사는 회원을 믿지 못해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회원은 회사를 믿지 못해 매출을 넣지 않는다. 그 결과 배는 산으로, 자동차는 바다로 향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반복된다.
무지에서 시작된 오판도 업계를 어지럽힌다. 경험이 부족한 경영자는 매출만 바라보다 지켜야 할 규범과 도리를 훼손하고, 경험이 부족한 판매원은 일도 하기 전에 돈만 요구하다가 배워야 할 때를 놓치고 만다. 말의 성(城)을 쌓고 허무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급기야 “돈을 주면 매출을 넣겠다”는 판매원과 “매출을 넣으면 돈을 주겠다”는 회사가 팽팽히 맞서다가 함께 몰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불신의 악순환이 낳는 전형적 파국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신뢰라는 토대가 사라진 산업의 초상화이다. 믿음이 충분하지 않으면(信不足焉), 반드시 불신이 자라고(有不信焉), 불신은 언제나 무너짐으로 귀결된다. 작은 기업의 작은 사건이지만 산업 전반을 관통하는 위험신호이기도 하다.
신뢰란 거창한 이념이 아니다.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 한번 약속을 했으면 반드시 지키는 사람들의 평범한 행동이 모여 신용사회는 완성된다.
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약속을 지키는 일은 더욱 어렵다. 굶주림이 담을 넘게 만드는 법이지만, 법과 규정을 가볍게 넘나드는 순간 기업은 스스로 미래를 잃는다. 업계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화려한 언변보다도, 대단한 전략보다도, 그저 한 사람의 말이 다시 신뢰가 되는 오래된 질서를 회복하는 일이다.
최근 제기된 메사얼라이언스 논란은 이러한 신뢰의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돈 앞에서 법과 규정과 도리마저 무위로 돌릴 때, 다른 사람 역시 그의 앞에서 모든 도리를 부정하게 된다. 영업 부진이 불신과 탈선을 초래한 것으로 변명하고 싶다면, 불신과 탈선으로 말미암아 부진하게 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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