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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바이옴에 인공지능을 더하다

  • 최민호 기자
  • 기사 입력 : 2025-06-0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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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있는 식약정보>


▷ 사진: 게티이미지프로

인체 속 미생물의 집합체인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은 최근 생명과학계의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의 장(腸), 피부, 구강 등에서 서식하는 수조 개의 미생물은 단순한 공존자가 아닌, 건강과 질병을 결정짓는 중요한 동반자다. 하지만 이 복잡하고 방대한 생물 정보를 해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여기서 인공지능(AI)이 등장한다. AI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생명체 언어 해독하고 질병 예측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 동물, 식물, 심지어 토양이나 바닷속까지, 거의 모든 생태계에 존재한다. 특히 인간의 장내 미생물은 건강과 질병을 가르는 핵심 요소로 주목받는다. 예를 들어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은 염증성 장질환, 대사질환, 심혈관 질환, 정신질환 등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구조적으로 복잡하다. 수많은 미생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환경에 따라 구성과 기능이 수시로 달라진다. 또 개인차가 극심해서, 같은 질병을 가진 사람이라도 미생물 군집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여기서 AI가 큰 역할을 한다. AI는 유전체 데이터를 입력으로 받아 미생물 간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질병과의 연관성을 예측하거나 주요 바이오마커를 도출하는 데 사용된다. 특히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은 지도학습, 비지도학습, 강화학습 등 다양한 방식으로 데이터에서 규칙을 스스로 학습할 수 있어 생물정보학 분야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AI의 대표적 응용 분야는 질병 예측이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를 분석해 염증성 장질환(IBD) 환자와 건강인을 구별하거나, 대장암, 제2형 당뇨병, 아토피성 피부염 등 다양한 질환의 조기 진단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지도학습 기반 모델은 질병 유무라는 라벨이 붙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생물 조성과 질병 사이의 패턴을 학습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이오마커(Biomarker), 즉 질병과 강한 연관을 보이는 미생물군이다. AI는 이러한 바이오마커를 자동으로 찾아내고, 진단 정확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의료 AI 응용 중 하나로, 최근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GMWI2’라는 예측 모델이 있다. 이는 장내 미생물 구성만으로 개인의 건강 수준을 수치화하는 알고리즘이다. 기존에는 임상정보나 혈액검사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건강 지표를, 이제는 대변 하나로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AI는 약물 반응 예측과 맞춤형 치료 설계에도 쓰인다. 사람마다 미생물 조성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약물이라도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AI는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를 분석해 약물 대사경로를 예측하고, 부작용 가능성을 미리 감지해 개인화된 의료를 가능하게 한다.


농장과 공장, 
식탁과 생태계까지 응용 범위 확장

마이크로바이옴과 AI의 결합은 의료에만 머물지 않고 활용 범위가 농업, 축산업, 식품산업, 환경 과학 등으로 폭넓게 확장되고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 농업에서는 토양 미생물 군집을 분석해 작물에 맞는 최적의 비료 조합을 설계하고, 병해충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한다. 이는 생산성 향상은 물론, 농약 사용량을 줄여 환경에도 이로운 결과를 낳는다.

축산업에서도 가축의 장내 미생물 정보를 분석해 질병 위험을 낮추고, 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다. AI는 수많은 사료 성분과 미생물 상호작용을 분석하여 개별 가축에 맞는 ‘맞춤형 사료’를 설계해 주는 도구로 활용된다.

식품산업은 특히 발효 식품에서 AI 기술의 잠재력을 주목하고 있다. 김치, 치즈, 요거트 등 발효 과정에서 활동하는 미생물들의 대사경로를 시뮬레이션하고, 맛과 영양, 기능성을 제어할 수 있다. 앞으로는 AI가 만든 ‘스마트 발효식품’도 일상에서 접하게 될 것이다.

환경 분야에서는 오염된 지역의 미생물 군집을 분석해 생태 복원 전략을 수립하거나,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새로운 미생물 종을 발굴하는 데 AI가 쓰이고 있다. 심지어 극한 환경(예: 심해, 사막, 남극)에서 생존 가능한 생물을 예측하고 탐색하는 도구로도 활용되고 있다.


생명의 언어 해독할 열쇠로 주목
최근에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개념이 도입되고 있다. 실제 인간의 미생물 환경을 가상으로 복제하여 다양한 조건에서 어떻게 변화할지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이는 임상시험 전 예측 모델로 활용되거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최적 조건을 탐색하는 데 쓰일 수 있다.

또한, AI는 신규 항생제 탐색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2024년에는 AI가 86만 개가 넘는 후보 물질 중 유망한 항균 성분을 추려내 화제가 되었다. 기존에는 수년이 걸리던 신약 후보 발굴이 몇 주 만에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대표적인 문제는 데이터의 일반화 한계다. 지역, 식습관, 생활양식에 따라 마이크로바이옴은 다르게 형성되기 때문에, 특정 환경에서 훈련된 AI 모델이 다른 환경에서도 유효할지는 보장할 수 없다.

또한, AI 모델의 ‘설명력 부족’도 문제다. AI가 어떤 예측 결과를 내놓았는지 알 수는 있지만,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해석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생명과학에서는 예측만큼이나 ‘이해’와 ‘설명’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의 건강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의 균형과도 맞닿아 있는 복잡한 생명의 언어를 해독할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질병 예측에서 맞춤형 치료,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식품 생산, 그리고 환경 보존까지. 마이크로바이옴과 AI는 단순한 연구 도구가 아닌, 미래 사회를 설계하는 기술로 거듭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들의 세계에 수학과 알고리즘이라는 렌즈를 들이댐으로써, 우리는 생명의 미스터리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기술을 넘어 어떻게 사회에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협력이다. 그러나 유전정보와 임상 메타데이터 처리과정에서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제기된다.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는 개인을 식별할 가능성이 있는 민감한 정보로 간주되며, 유럽 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GDPR)에 의해 규제된다. GDPR은 연구 프로젝트에 대해 일부 예외를 허용하지만, 병원 등 협력 기관 간에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은 특히 국제 협력에서 쉽지 않은 문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연합학습 기법이다. 연합학습을 사용하면 여러 기관이 민감한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고도 모델 학습에 기여할 수 있다. 현재까지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를 활용한 연합학습의 구체적인 적용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일반적인 연합학습 플랫폼인 ‘FeatureCloud.ai’ 또는 ‘PADME’를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 분석에 적용할 수는 있다.

<자료 참조 : 한국바이오협회 >

 


최민호 기자fmnews@f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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