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자애로운 공정위
참여연대가 ‘전광훈 애국폰’으로 불리는 ‘퍼스트모바일’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 이하 공정위)로부터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참여연대는 이들이 알뜰폰이라는 정책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높은 요금으로 폭리를 취하고 가입자 1,000만 명 달성 시 매월 100만 원의 연금을 주겠다는 거짓·과장광고를 통해 가입자를 모집하고 있다며, 지난 4월 15일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진숙, 이하 방통위)에 신고하고 사업자등록 취소를 촉구하는 기자브리핑을 진행한 바 있다.
이후 5월 12일 공정위는 ‘1,000만 명이 가입하면 매월 100만 원의 연금을 주겠다’는 퍼스트모바일 광고가 표시광고법상 거짓·과장의 표시광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의 공문을 참여연대 측에 회신했다. 이틀 뒤인 5월 14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퍼스트모바일을 운영하는 더피엔엘에 과태료 1,200만 원을 부과했다. 더피엔엘은 퍼스트모바일 가입신청서를 받을 때 마케팅 광고사항을 필수동의 항목으로 기재하고, 개인정보 수집·이용 및 개인정보 제3자 제공 항목을 구분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동의받았다. 또 가입자 주민등록번호를 암호화해 보관하지 않는 등 개인정보의 안전 관리가 미흡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방통위가 판단 책임을 떠넘기면서 참여연대에 답변을 준 곳이 공정위라는 점이다. 참여연대는 “이진숙 위원장과 방통위는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를 규제해야 할 책임자이면서도 이 건에 대해 방통위의 소관이 아니라는 억지를 부리면서 과기부와 공정위로 책임을 떠넘겼다”며 “그 결과 공정위가 ‘표시광고법’ 위반에 대한 검토의견을 보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통위든 밥통이든 사정이 어쨌든 공정위가 참여연대에 보낸 회신공문은 공식답변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공정위는 이 공문을 통해 퍼스트모바일의 표시광고 내용이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허위여서 소비자 오인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1,000만 명이라는 조건이 아직 달성되지 않아 객관적인 참·거짓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광고내용이 명백히 거짓이지만 거짓임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건데, 이 무슨 만고의 궤변이란 말인가?
참여연대는 “공정위의 답변은 명백한 모순이다. 스스로 밝힌 대로 1,000만 명의 조건과 월 100만 원의 연금이 명백하게 실현 가능성이 없다. 조건 자체가 비현실적인 이상 애초에 해당 광고는 거짓광고로 판단되어야 마땅하며, 공정위는 이에 대해 임시중지명령, 과징금 부과, 형사고발 등 법에 따른 조치를 즉각 취했어야 했다”며 “이미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전광훈 일당의 사기 광고를 앞에 두고도 이런 ‘조건 미충족’이라는 궤변으로 국민 보호 의무를 포기한 공정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꼬집었다.
또 “공정위가 이미 공문을 통해 ‘1,000만 명 조건 및 금전적인 부분이 명백하게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소비자 오인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힌 만큼, 그 조건이 달성될 때까지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거짓광고 행위에 대한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다시 한번 촉구했다.
참여연대의 지적이 선뜻 수긍이 가는 것은 그동안 공정위가 다른 기업들에 보여온 기조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이토록 관대하고 자애로운 기관이었는지 착각마저 들기도 한다. 다단계판매업체가, 다단계판매원이 “1,000만 명이 우리 회사에 가입하면 판매원 모두에게 1억 원씩 주겠다”, “이 제품을 먹으면 잘린 손가락이 다시 자라고, 반쯤 죽은 사람도 되살려낸다”고 광고했다면 공정위는 과연 똑같은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까?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허위이므로 이 역시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행정기관에는 기준이라는 게 있을 것이다. 맡은 업무에 관한 상위 법령이 있고, 행정규칙과 지침을 통해 이것을 매우 상세하게 성문화하고 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굳게 믿지만, 이러한 기준을 행정기관에서 자신들의 잇속에 맞게,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적용한다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처사일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 5월 21일 온라인상 허위·과장광고의 효율적인 감시와 시정을 위해 소비자원과 협업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소비자원의 실태조사 과정에서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가 발견되는 경우 소비자원이 개선을 권고하는 방식으로 자진시정을 유도하고, 소비자원의 개선 권고에 응하지 않은 건이나 파급효과가 큰 중대한 위반 건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직권조사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문득 ‘전광훈 애국폰’ 사건에서 보여준 공정위의 잣대가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허위·과장광고에 대해서는 어떻게 적용이 될지 궁금해지는 목요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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