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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위기일 때 실력이 드러난다

  • 최민호 기자
  • 기사 입력 : 2025-04-0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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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위기와 탄핵 정국 장기화로 인해 국내 다단계판매업계가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지속적인 매출 하락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으며, 신규 업체의 등장은 이제 화젯거리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2023년 다단계판매업계 매출은 전년 대비 8.4% 감소한 4조 9,606억 원입니다. 지난 2020년 이후 3년 만에 5조 원 아래로 떨어졌으며, 같은 기간 후원수당 총액도 전년 대비 10%가량 감소했습니다. 2024년에는 10% 정도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후원방문판매업계 매출액도 6년 연속 내림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단 이것은 다단계판매업계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월 발간한 ‘2025 유통산업 백서’에 따르면, 국내 소매 시장 성장률은 2021년 7.5%를 정점으로 2022년 3.7%, 2023년 3.1%, 2024년 0.8%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는 더욱 심각합니다.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와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 고조로 인해 소매 시장 성장률이 0.4%에 그칠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도 나왔습니다. 

2025년도 석 달이 지났지만 대부분 다단계판매업체 관계자들은 “올해도 매우 어려울 것 같다”라고 입을 모읍니다. 올해 일부 후원방문판매업체들이 다단계판매로 전환하면서 전체 시장 규모는 조금 성장할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체 시장이 제 살 깎아 먹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업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제품 개발이나 장기적인 비전을 미루고 사업자에게 몇 푼이라도 더 쥐여주려고 보상에만 초점을 맞추면 근시안적인 출혈경쟁이 벌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사업을 하면 성공의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러므로 너도, 나도 투자를 하고 돈을 벌려 합니다. 다단계판매업계도 불과 몇 년 전까지는 호황기였습니다. 외국계 업체든, 국내 업체든 새로운 곳이 등장하면 사람들이 앞 순번을 차지하고 최고 직급에 오르기 위해 경쟁적으로 물건을 사들였습니다. 이처럼 돈이 돈을 벌어다 주는 순환이 일어나다 보니 경영자들은 지휘와 통제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공의 기반이 된 기존 강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것을 ‘성공의 덫’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성공한 업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망하게 되는 경우는 조직의 약점이나 단점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전에 성공의 기반이 됐던 강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한번 성공을 경험한 업체의 경영자는 상황이 변해도 이전에 습득한 전략, 기술, 시스템, 문화 등 기존 역량을 계속 활용하려 합니다. 상황이 변했으면 새로운 지식이나 역량을 찾는 탐구 활동을 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리스크도 높고 바로 수익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현실에 안주하고 이전 성공에 도취해 기존에 수익이 발생하던 활동만 치중하게 되면 시장 환경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업체도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현재 다단계판매업계는 중대한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호황기는 지났고 국내외 경제는 장기적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전에는 동종업체들과 경쟁을 벌였다면, 지금은 제품으로는 이커머스 등의 오픈 마켓과 수익형 부업으로는 유튜브, 배달업체, 온라인 중고 거래 등으로 경쟁 전선이 확대됐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경영자가 과거의 성공에 의존하고, 그 성공의 잿더미 속에 안주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과 사업자들에게 돌아갑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경영자들이 ‘운’으로 인한 성공을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투자 전략가 마이클 모부신은 그의 저서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한 운과 실력이 실제로 우리의 인생을 좌우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운과 실력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한 업체를 이끌어가는 경영자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운의 영역과 실력의 영역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확률이 필요한 곳에서 실력을 쌓으려고 시도하거나, 정작 실력이 필요한 곳에서 확률 타령을 하게 됩니다. 사업의 시작과 함께 엉뚱한 곳에 한정된 자원을 투자하고 나중에 정작 써야 할 곳에 쓰지 못하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죠.  

그동안 다단계판매업계에서는 대표나 지사장을 뽑을 때 경험이 많은 사람을 선호했습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전문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실제 전문가들은 경제 지표, 시장 동향, 정책 변화 등을 깊이 있게 분석해 미래에 대한 예측 모형이 있지만, 경험만 많은 사람에게는 그런 예측 모형이 없습니다. 오직 경험만 있을 뿐이죠. 이렇기 때문에 경험과 실력은 반드시 구별돼야 합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업체의 실적은 늘 운의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전 업체에서의 실적과 성과가 훌륭하다고 해서 다음번에도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뛰어난 경영 능력을 갖춘 전문가의 전략이 운이 나빠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위기일 때 그 사람의 진정한 실력이 드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다단계판매업계는 지속적인 매출 하락과 급변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겪으며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다단계판매업계의 진짜 실력자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진짜 실력 있는 리더는 위기라는 상황을 탓하지 않고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를 사업자들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고난의 시기에 영웅이 나오고 옥석이 가려집니다. 

 
최민호 기자fmnews@f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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