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돋보기

<목요일 오후> 코이 물고기와 ‘35% 규제 어항’

  • 두영준 기자
  • 기사 입력 : 2025-01-17 08:12
  • x

코이라는 물고기는 자신이 자라는 환경의 크기에 따라 성장의 한계가 달라진다. 작은 어항에서는 5~8cm에 불과한 크기로 자라지만, 더 큰 수족관이나 연못에서는 15~25cm까지 자란다. 만약 강물에 방류된다면, 90~120cm까지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을 ‘코이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단순히 성장의 크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특정 개체의 잠재력을 제한하거나 확장하는 강력한 요인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개념은 다단계판매에도 적용될 수 있다. 다단계판매는 방문판매법에 의해 규제받고 있는 업종으로, 30년 전 제정된 법률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방문판매법이 변화하는 시대적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법적 제약은 마치 작은 어항에 갇혀 더 성장할 수 없는 코이와 같다. 

업계에서 거론되는 가장 대표적인 독소 조항은 후원수당 지급률을 ‘35%’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원수당 지급 한도 규제는 기업과 판매원의 경제활동을 제한한다는 비판이 있으며, 특히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에서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과거보다 다단계판매 시장이 안정화됐고, 온라인 활성화 등으로 대면·연고판매에 의존하던 사업의 속성도 바뀌는 추세이며, 공제조합이라는 안전장치까지 있어 과도한 사전규제보다는 사후규제와 책임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더군다나 인센티브 트립, 교육비 등 명칭, 지급 형태 등과 관계없이 경제적 이익을 모두 후원수당에 포함하면서 현행 지급률인 35%조차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100만 원의 물건을 팔아서 35만 원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그 35만 원조차 기름값, 밥값, 찻값 등등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제외하면 날고 기는 리더들조차 수중에 남는 돈이 없다는 하소연이 업계에 만연하다.

그렇다면 후원수당 지급률을 제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하필 ‘35%’일까? 공정위는 “후원수당을 과다하게 주는 기업은 후원수당 원천이 되는 재원을 결국 판매원에게 마련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판매원들은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재화를 비싸게 구매할 수 있다. 그 대가로 받는 고액의 후원수당 재원은 결국 자기 주머니에서 만들어지거나 새로 가입한 하위판매원에게서 그 금액이 마련될 것”이라며 “후원수당이 판매원에게 인센티브로 작용될 수 있는 반면에 피라미드 조직으로 변질될 수 있는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밝히면서도 그 기준이 ‘35%’인 것에 대해서는 “따로 근거는 없다”고 부연했다. 

공정위조차 후원수당 35%라는 기준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는 법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1월에 열린 한국경제법학회 공동 추계학술행사에서는 “후원수당 지급률 35%, 38%라는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다단계판매와 후원방문판매를 합법적 사업으로 인정한 것은 이미 사행성과 거리를 두었다는 입법적 판단”이라며 “합법적 사업을 사행성 우려만으로,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현대 입법에 적합한지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법률은 합리적이고 공평해야 하며, 사회 변화에 맞게 꾸준히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방문판매법은 이러한 원칙을 충족하지 못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제약으로 업계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1990~2000년대만 하더라도 다단계판매산업은 학벌이 좋지 않아도, 몸이 불편해도,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 실업자, 부업을 원하는 사람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사업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실업 급여 제도 강화, 직업 훈련 등 실업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법적 제도와 프로그램이 도입됐고, 부업을 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불경기 안전구역’이라고 불리던 다단계판매산업은 점차 외면받는 추세다. 

왜냐하면 다른 산업에서는 영업 활동이나 인센티브 지급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거나 느슨한 편인 반면 다단계판매는 후원수당 지급률을 법적으로 제한하면서 과도한 제약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원수당 지급률 35%’ 규정이 30년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은 ‘다단계는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만들어 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의 방문판매법은 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법이 30년간 변화하지 않은 상태로 유지되면서, 새로운 방식의 판매와 유통 모델이 등장한 오늘날의 시장 환경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다단계판매업계가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성장의 한계를 느끼게 만드는 주된 원인 중 하나다.

다단계판매업계는 지난 10년간 비슷한 매출 추이를 보이며 현재의 제한된 규제 환경 속에서 성장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적절한 환경 변화와 정책적 지원이 주어진다면, 다단계판매업계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성장 모두를 실현할 잠재력을 지닌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코이는 넓은 강물에서 대어로 성장한다. 다단계판매도 시대 변화에 맞는 유연한 규제로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환경이 변하면 성장도 가능하다. 이제 다단계판매업계가 정체된 규제의 어항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때다.

 

두영준 기자 mknews@mknews.co.kr

※ 저작권자 ⓒ 한국마케팅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