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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불황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

  • 기사 입력 : 2025-01-0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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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가성비를 따지기 시작했다. 원자재가 인상을 빌미로 오를 대로 오른 물가에, 불안정한 국내 정세가 더해지면서 환율마저 폭등하는 바람에 서민들의 가용 가계소득이 현저하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파로 20대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던 올리브영이나 다이소에 30대는 물론 40대까지 화장품과 건강식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선다고 한다. 이제는 국가기간산업이 됐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쿠팡을 비롯해 편의점마저 가세하면서 다단계판매업체의 화장품과 건강식품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다단계판매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은 ‘비싸지만 품질은 좋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유통하는 채널들이 급속히 늘어남에 따라 비싸고 품질 좋은 제품은 그 존재감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됐다. 

심지어 이 비싸고 품질이 좋은 다단계판매업체의 제품들마저 각종 인터넷 쇼핑몰에 헐값으로 풀리는 바람에 자사의 사이트에서 구매하는 것이 가장 비싸게 사는 방법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마저 유행한다. 

가성비로 무장한 브랜드들이 파상공세를 펴는 가운데 다단계판매업계에서는 이참에 불필요한 규제 등을 철폐하고,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특징적인 목소리는 후원수당 관련 규정을 삭제하더라도 시장이 저절로 균형을 찾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요체는 35%로 수당을 묶어 놓은 지금도 일반 유통과 경쟁이 안 되는 판이니, 판매원들이 줄곧 요구해 온 60% 이상의 수당을 염두에 두고 책정한 가격으로는 아예 게임이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후원수당 지급률을 기업의 자율에 맡겨도 기업이 살기 위해서는 가장 합리적인 가격선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일각에서는 냉정해지고 똑똑해진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으로 봐서는 오히려 35% 상한선마저 채우지 못하는 사례도 많아질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내놓는 정보공개 상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수당 상한선인 35%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상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기업들이 많다는 게 정설이다. 

지극히 불합리한 사례이지만 만약 올리브영이나 다이소에서 유통하는 수준의 제품을 다단계 방식으로 판매한다면 어떤 보상으로 얼마나 지급해야 할까? 해당 가격을 유지하면서 판매원 수당까지 지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억지로 수당을 지급한다고 해도 판매가의 3~5% 정도밖에는 지급할 수가 없다. 여기에 pv까지 적용한다면 생계를 건 직업으로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시장의 화두가 가성비라면 다단계판매업체 또한 소비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굳이 수당 상한선이나 제품가격 상한선을 두지 않아도 시장은 자정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작금의 유례없는 불황은 안타까운 현상이지만 변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오히려 호기라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기업과 판매원이 과연 수당 지급률을 낮춰가면서까지 가격 경쟁에 나서고 싶어 할 것인지의 여부이고, 정부 당국 또한 규제의 달콤함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아무려나 지금은 심각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고, 이 변화를 걸림돌로 인식할지 디딤돌로 승화할지는 각각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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