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다단계판매 사업문화 바뀌어야 한다
테헤란로에 풍기는 시큼한 은행나무의 냄새가 가을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올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토주오비(兎走烏飛)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올해의 다단계판매, 방문판매, 후원방문판매업계는 그야말로 급전직하의 모습을 보였다. 미국 경제가 악화하면서 소비와 투자 심리가 위축됐고, 한국의 경우 금리가 높아지면서 이자 부담이 커졌으며, 소비의 원천이 되는 가처분소득이 감소해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았다.
그럼에도 불법 업체는 극성을 부리고 있다. 가상화폐의 대장주 비트코인은 한때 1억 원을 돌파했지만, 9월 10일 현재 7,000만 원대로 급락했다. 그런데도 테헤란로 일대에는 여전히 코인이나 FX마진거래 등을 매개로 한 불법 업체의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또, 인크루즈, DDM, 동업자클럽 등 불법, 합법이라기에도 애매한, 그야말로 무법지대에서 수익을 올리는 사업자들도 다수 포착되고 있다. 이들 업체로 인해 다단계판매 사업자들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게 업체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유사수신 방식으로 400억 원의 돈을 끌어모은 것으로 알려진 오픽스테크에서 한 A사 출신의 사업자는 이런 말을 했다. 그는 “A사에서 처음 다단계사업을 시작했다. 올해 초부터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에 소속된 다단계업체에서도 일했다. 그런데 오픽스테크 대표사업자에게 연락이 오더라, 똑같이 일했는데 나는 수천만 원을 벌고 있었고, 대표사업자는 수십억 원을 벌고 있었다”며 불법 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물론 그가 이야기한 액수에는 분명히 과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MBI, 휴스템코리아, 아도인터내셔널, 브이글로벌 등등의 업체들을 보면 불법 업체나 무법지대 업체들의 경우 하루아침에 거액의 피해액만 남긴 채 폐업하는 사례가 부지기수고, 사업자들에게 중형의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 뒤늦게 투자한 사람들은 MBI 사건처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법원만 들락날락하면서 돈과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불법 업체들은 다단계판매와 비교해보면 납득되지 않는 수익구조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허망한 약속이 난무한다. 치고 빠지면 그만이라는 한탕주의 심리가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이들에 대한 피해는 정부에서도, 공제조합에서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불법 업체들로 인해 다단계판매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분석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궁색하다. 지금의 다단계판매 현주소는 고가의 묶음판매와 사재기가 비일비재하다. 이로 인해 온라인 재판매 문제가 대두되고 있고, 판매원들이 대규모 반품을 하는 바람에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로 위태로운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제 다단계판매는 사업 위주가 아니라 유통 중심으로 가야 한다. 1명의 사업자가 10개의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10명의 소비자가 각각 물건 1개씩을 구매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보상과 제품 둘 중에 어느 것에 방점을 찍느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제품에 방점을 찍는 기업들은 매일 사용하는 비누, 치약과 같은 생필품 위주의 제품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으면서 강력한 팬덤의 소비자군단을 형성하고 있다. 그동안의 기업들은 보상플랜, 그러니까 사업자 위주의 사업 방식을 펼쳐와 ‘제품은 좋은데 비싸다’는 인식이 형성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제품에 방점을 찍는 기업들의 경우 제품을 한 개만 구입하더라도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과 견주어 봐도 품질도 웬만하고, 값도 저렴하다. 이것이 다단계판매의 근본원리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들은 소비자들의 끊임없는 재구매로 가상화폐와 같은 외부의 영향에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반면 소비자층의 저변이 견고하지 못한 기업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부환경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근거로 결국, 불법 업체가 다단계판매업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다단계판매의 기본원칙이 갖는 경쟁력을 우리 스스로 축소해 왔기 때문에 벌어졌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문득 한 판매원의 일침이 생각난다. 200만 원어치의 제품을 10만 원어치 쓰게 되면 제품이 형편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나머지 190만 원어치는 ‘똥’이 되는 게 다단계판매의 현실이라고 했다. 이제 다단계판매는 바뀌어야 한다.
※ 저작권자 ⓒ 한국마케팅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TOP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