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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21-10-15 08:5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코맥 매카시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 제목을 보고 처음에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다룬 영화일 것이란 생각에 보기 시작했는데 우연히 엄청난 돈을 손에 넣은 남자와 살인마 그리고 보안관이 얽히는 스릴러 영화더군요. 아카데미 상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영화이며, 평론가들의 수많은 극찬이 쏟아졌지만, 강렬하게 남는 제목을 빼면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21세기의 약 100년의 변화 속도가 인류가 문명을 만들고 변화해온 수천 년의 변화 속도보다 더 빠를 것이라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20세기 후반 인터넷 혁명이 시작되고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리면서 사회는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장기화로 식당, 카페 등 사람들이 일상에서 이용하는 시설들에 키오스크(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 단말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디지털 시대는 고용주에게는 인건비 절감을, 소비자에게는 시간 절약과 편리함이라는 분명한 이점을 제공해줍니다. 하지만 노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입니다. 인류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AI 기술이 정작 ‘사람’ 중심이 아닌 ‘편리함’에 치중해 노인이나 장애인 등 정보 취약계층을 소외시켜 버리고 있습니다.

올해 초 키오스크에 익숙하지 않은 어머니가 음식 주문에 실패한 사연이 온라인에서 공유되며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한국소비자원이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없는 70세 이상 고령 이용자 5명을 대상으로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이용 모습을 관찰했는데, 대상자 5명 모두 주문을 완료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복잡한 화면 구성, 영문 메뉴명, 버거·세트·디저트 등 메뉴 분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조사한 노인 등 정보 취약계층의 키오스크 접근성 조사결과, 접근성 수준은 평균 59.8점에 불과했습니다. 일반 국민의 평균 접근성(100점)을 기준으로 볼 때 노인들은 키오스크 이용을 두 배 가까이 어렵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저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합니다. 몇 년 전부터 터미널 매표소 직원들도 점점 줄더니 최근에는 이마저도 대부분 키오스크로 전환됐습니다. 이 때문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도착해도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지난 10월 8일 국회 과학기술방송 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키오스크 증가로 인한 노인 등 정보 취약계층의 디지털 소외 현상이 더 심화할 것이라며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김상희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년 반 사이 민간분야에 설치된 키오스크가 8,587대에서 2만 6,574대로 3배가량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요식업 등 생활편의 분야에서는 4.1배로 증가 폭이 더 컸습니다. 이에 참석 의원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관련 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무인 매장의 운영 현황을 파악하고, 신고 의무화나 신규 업종 분류 등 무인 매장을 관리 감독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노인들의 디지털 소외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년보다 46만 명 증가한 820만 6,000명입니다. 우리나라 고령층 인구가 처음으로 800만 명을 넘어선 것입니다. 전체 인구에서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5.5%에서 16.4%로 0.9%포인트 높아졌으며, 10년 전인 2010년 11.3%에 비해서는 5.1%p 증가했습니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17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2%를 기록해 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문제는 매년 고령 인구 비중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8년 0.6%포인트 증가한 고령 인구 비중은 2019년 0.7%포인트, 지난해 0.9%포인트 등으로 증가 폭이 커졌으며,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기술의 진보에 따른 사회적 변화로 인한 노인들의 퇴보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현상이지만, 최근의 변화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빠릅니다. 솔직히 중년인 저 자신도 변화 속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기술의 진보는 분명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 진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이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습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자신이 늙기 전까지는 남의 일이라 생각하죠. 영화 은교에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대사처럼 육체적, 정신적 노화로 인한 퇴보가 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에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기술의 혁신은 이런 ‘당연한 불편’을 개선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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