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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여왕 피노 누아 (2020-11-26 18:23)


피노 누아라는 품종은 부르고뉴라는 지명과 이음동의어로 쓰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한 맛과 향의 균형미는 다른 품종과의 비교를 거부한다. 갓 코르크를 뽑은 피노 누아에는 딸기향을 비롯한 크렌베리, 라즈베리 등의 베리류의 향과 체리향이 피어오른다. 그 뒤를 따라 버섯과 시가향이 뒤따르면서 더없이 풍성한 향연을 연출한다.


서리와 햇빛 등 온갖 시련 이겨내야 
피노 누아의 이러한 명성 덕분에 원산지라고 해도 좋을 부르고뉴를 떠나 캘리포니아의 소노마 카운티와 칠레의 카사블랑카를 비롯 신세계로도 널리 퍼져 나갔다. 신세계로 달려간 피노 누아 역시 특유의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르고뉴 피노 누아에 필적할 만한 걸작은 탄생하지 않았다.

피노 누아가 최상의 우아함을 간직하기까지는 많은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더구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렇듯이 병충해에 취약해 새순이 나올 때부터 수확이 끝날 때까지 한시도 주의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조생종인 만큼 일찍 나온 새순이 뒤늦게 찾아온 한파의 습격을 받는 일도 잦다. 거기에다 껍질이 얇아 강력한 햇빛에 노출될 경우 포도가 화상을 입는 일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야 피노 노아는 피노 누아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 

기온이 낮은 해에 빚은 와인은 묽고 연한 빛을 띠고, 기온이 높은 해에는 더 짙어진다고. 지나치게 묽을 경우에는 상품성이 떨어지므로 수확할 때까지 완전하게 익히기 위해서 부르고뉴 와이너리들은 최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피노 누아의 최고봉 ‘로마네콩티’
부르고뉴에서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는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다. DRC라는 약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42년에 설립됐다. 그랑 크뤼(부르고뉴 와인 중 최고 등급) 포도원만 일곱 개 갖고 있으며 와이너리 설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와인이라는 찬사를 놓친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탁월한 테루아(땅과 기후)에 농부들의 정성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일곱 개 포도원을 모두 합친 면적이라고 해봐야 고작 2,000평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고를 때면 늘 첫 손에 꼽히는 로마네 콩티는 1년에 6,000병이 채 안 되는 양이 생산될 뿐이다.

12세기에 이미 피노 누아의 가치를 알아본 생 비방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혼재돼 있던 가메를 내쫓고 가메 품종을 많이 재배하던 보졸레 지역을 부르고뉴에서 제외했다. 와인 전문가들은 로마네 콩티에서 빚은 피노 누아에 대해 ‘비단과 벨벳이 결합한 것’ 같은 빼어난 맛이라고 평가한다고. 


하늘(기후)과 땅(토양)이 만든 신의 선물
로마네 콩티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도 전인 1512년부터다. 『그랑 라루스 와인백과』에 따르면 부르고뉴 태생의 루이 15세(Louis XV)의 고문이던 콩티(Conti) 왕자는 1760년 엄청난 가격으로 이 밭을 매입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을 겪으면서 콩티 왕자는 자신의 영토와 이 밭을 박탈당했고, 1792년 국유재산으로 매각되었다. 로마네 콩티라는 이름은 이 시기에 확정됐다는 것이 와인사가들의 통설이다.

그렇다면 로마테 콩티는 어쩌다 세계 최고의 와인으로 자리 잡게 됐을까? 모든 농산물이 그렇듯이 포도농사 역시 토질과 기후가 품질의 90% 이상을 좌우한다. 이러한 풍토를 프랑스어로 ‘테루아’라고 한다. 특히 토질은 기후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져 똑 같은 기후를 겪는 주변의 포도밭에서는 결코 로마네 콩티가 나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1946년부터 1951년까지 로마네 콩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필록세라라는 진딧물의 공격을 받아 포도나무를 모두 뽑아냈기 때문이다.


화학비료 사용하지 않아 건강한 포도
현재 로마네 콩티 포도밭에는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사람의 일손을 훨씬 덜 빌리고도 농사를 지을 수가 있지만 땅과 포도나무를 함께 피로하게 만듦으로 건강한 포도를 수확할 수 없다.

수확할 때도 한 송이 한 송이씩 엄격한 통제 하에 일일이 손으로 포도송이를 딴다. 조금이라도 덜 익거나 완벽하지 않은 포도는 폐기된다. 로마네 콩티는 새 오크통에서 18개월 간 숙성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른 와이너리의 경우 오크통을 재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로마네 콩티는 새 오크통에서 숙성된다. 

새 오크통에서 18개월 간 긴 잠에서 깨어나면 드디어 각자의 병으로 찾아들어가 새로운 침실로 들어간다. 병입 후 1년 간 추가로 숙성하는 것이다. 이후에는 와인상이나 소비자들의 손에 들어가 그들이 보관하는 상태에 따라 더 좋은 와인으로 숙성되거나 조금 덜 좋지만 여전히 로마네 콩티라는 이름표를 달고 소비된다. 괜찮은 빈티지라면 길게는 20년 넘게 보관이 가능하고 최상의 빈티지라면 40년 이상의 시간도 거뜬히 이겨낸다. 가장 최근의 빈티지 중에는 2012년 빈티지가 최장 기간 보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병당 가격은 5,000만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네 콩티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16℃에서 마시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와인 전문가들은 말한다. 누워서 보관하던 병은 마시기 이틀 전부터 아주 느리게 세워줘야 한다. 디켄팅은 필요 없으나 와인과 관련된 모든 동작은 슬로우 모션이어야 한다. 아주 얇은 튤립 모양의 크리스털 잔을 사용해야 기막힌 부케를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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