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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한없이 게으른 여행 (2020-09-11 11:42)


코로나19로 인해 삶의 모습이 너무도 많이 바뀌었다. 더 이상 자유로이 외출을 할 수도, 친구를 만날 수도, 모임을 가질 수도 없다. 외국으로 떠나는 여행은 그야말로 기약 없이 멀어진 꿈이 되었다. 급격한 변화로 인해 우울감이나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자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우리의 몸과 마음, 정말 이대로도 괜찮을까? 극복할 수 없다면 적어도 적응하는 방법은 없을까?


들어는 봤나? 세익스피어 베케이션
책 좋아하기로 유명한 임금 세종은 ‘사가독서(賜暇讀書)’라고 하여 젊은 선비들에게 긴 휴가를 주어 집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게 했다. 또 빅토리아 여왕은 ‘세익스피어 베케이션(Shakesprare Vacation)’이라 하여 3년에 한 번 꼴로 공직자들에게 한 달 남짓의 유급 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피서랍시고 번거롭게 짐을 싸고, 고생스럽게 떠나고, 번잡스러운 사람들 틈에 끼어  휘둘리는 대신 편안하고, 익숙한 내 집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보내는 것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나 오래된 피서법이다. 뭐 새로울 것도 없는 이 휴가법이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주목 받고 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고된 작업이다. <안네 카레니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레미제라블>과 같이 너무 많이 들어 이미 읽은 것처럼 느껴지는 책들, 모든 페이지를 합치면 수천, 수만 페이지를 읽어내야 하는 책들을 읽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어쩌면 바로 지금일 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옷차림으로 내 몸을 가장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해방시켜 두고, 적당히 내 몸에 맞춰진 쇼파에 기대어 팔랑팔랑 책장을 넘겨보면 어떨까. 그러다가 잠들어도 좋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내 집에 낯선 이가 함께 살고 있다고?   
나가사키/에릭 파이/밝은세상
언젠가부터 냉장고의 음식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먹다 남은 주스의 양이 분명 손잡이까지는 닿았던 것 같은데, 퇴근 후 다시 확인하니 확실히 눈금이 줄었다. 누군가 분명히 마신 것 같은데, 나는 혼자 산다. 언젠가는 생선 한 마리가 통째로 사라진 적도 있다. 소설 <나가사키>는 나 혼자 사는 집에 누군가 있다고 느끼는 한 남자의 불안한 시선으로 시작된다. 나 홀로 가구가 6,000만을 넘는 시대에 이 같은 불안은 비단 이 남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남자는 웹캠을 설치하고 자신의 집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엌을 찍는 웹캠에 한 중년 여자의 모습이 찍힌다. 그는 경찰에게 전화해 자신의 집으로 가 달라고 말한다. 경찰이 도착하고, 여자는 문간방의 미닫이 옷장 속에 숨어 있다 발견된다. 그를 해치지도, 엄청난 도둑질도 하지 않고, 다만 남자의 음식을 조금씩 축내던 여자는 경찰에 연행된다. 남자는 혼란스럽다. 오랫동안 실직자로 지내다 남자가 문을 잠그지 않는 광경을 보고 그 집에 들어와 살았다던 여자는 일 년 동안이나 그와 동거 아닌 동거를 했던 것이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 졌다. 2008년 5월 <아사히신문>을 비롯해 일본의 여러 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소설을 쓴 에릭 파이는 프랑스 작가다. 우리에게는 도시 괴담쯤으로 들리는 이 이야기가 그에게는 무서운 이야기라기보다 도시인의 소외라는 이슈로 다가왔다. 각자의 집 안에 있는 각자의 소외와 외로움. 사회적 거리 두기로 개인과 개인의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먼 시기에 예사롭게 읽히지 않는 대목이다. 


스티븐 킹 다시읽기
샤이닝.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스티븐 킹/황금가지  
스릴러의 대가 스티븐 킹의 소설은 세계적으로 3억 5,000만 부 이상 팔렸을 정도로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현재까지 60여 편의 장편소설과 200여 편의 단편 소설을 썼으며, 영화화 되어 성공한 작품들도 수두룩하다. 어느 것을 집어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하지만 특히 <샤이닝>은 가히 압권이다.

교사였던 ‘잭 토렌스’는 퇴직 후 작가로 전향하지만 뚜렷한 작품을 발표하지는 못한다. 작품 활동이 필요했던 그는 겨울에는 폭설 탓에 외부와 왕래가 끊겨 몇 달 동안 완전히 비워 놓는 ‘오버록 호텔’의 관리인 자리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겨울이 되어 호텔로 거처를 옮긴 그는 아내 ‘웬디’, 아들 ‘대니’와 이곳에 머무르며 작품을 집필하기로 한다. 넒은 호텔에 세 명만 머무르는 시간이 계속 되던 어느 날, 아들 대니가 이 호텔에서 살해되었다는 어린 자매의 원혼을 보게 되고, 잭 역시 서서히 무언가에 홀려가며 광기를 내보이게 된다. 고립이 주는 공포와 인간의 광기를 소름끼치는 문장으로 풀어낸 솜씨가 일품이다.

스티븐 킹을 스릴러 작가로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가 순수문학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작가임을 말해주고 싶다. 바로 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작으로 더 유명해진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라는 명작이 바로 그의 손끝에서 시작되었다.

아내와 그 애인을 죽인 혐의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힌 앤디. 자유를 향한 앤디의 갈망과 자신의 삶을 망치지 않겠다는 그의 품격은 그를 자유의 길로 이끈다. 삶의 두려움은 우리를 어둠으로 안내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한 갈망이 있다면 자유라는 선물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 소설은 그가 쓴 어떤 작품보다 삶을 향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들의 일하는 이야기
코리안 티처/서수진/한겨례출판사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은 가게 문을 닫고, 방문 판매, 방문 교사, 프리랜서 강사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본인의 잘못은 당연히 아니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여기,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고학력의 비정규직 여성 네 명의 이야기가 있다. 체계적인 프로그램도 없이 그저 돈벌이를 위해 외국 유학생을 마구 잡이로 끌어들이는 한국어학당의 현장을 너무도 현실감 있게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성들의 불안한 미래 또한 마음에 와 닿는다.

작가 서수진은 작가의 말을 통해 ‘살아남는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것,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것, 버텨내는 것, 끝내 살아남는 것에 대해서도 쓰고 싶다고 했다. 소설을 쓰는 도중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고, 호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작가 역시 모든 수업이 취소되거나 연장되면서 실직 상태가 되었으며, 그 끝에 간신히 살아남은 소설이 <코리안 티처>라고 했다. 그리고 이 살아남은 소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을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닿아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작가의 말대로, 이 소설이 우리 모두에게 조금 더 버텨낼,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최민호 기자fmnews@f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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