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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지는 계단식 피라미드 (2019-12-05 17:55)

권 걸리버의 오빠 어디가?


조세르의 피라미드라고도 불리는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는 아침 햇살을 통째로 받으며 허물어져 가고 있다. 공사 중이라 피라미드의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지만 부속 사원에 새겨놓은 각종 상형문자와 갖가지 그림만으로도 모든 관광객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조세르 왕조 최고의 건축가, 임호테프
탐방객 중의 몇 사람이 벽마다 새겨진 부조에 감탄해 벽에다 손을 대는 순간 짙은 선그라스를 끼고 부조를 감상하던 멀대 같이 키가 큰 백인이 한 마디 한다. “모두가 손을 대면 후세의 사람들은 이 아름다움을 못 보게 된다”는 것이 요지인 것 같은데, 꽤 오랫동안 훈시를 하는 폼이 아마도 고고학과 관련된 사람인 듯하다. 그의 일갈에 손댈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나까지 무안해진다. 어쩌면 그 고고학자로 보이는 멀대같은 서양인도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슬쩍 만져 볼 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보고 있으면 절로 손이 가도록 장치해놓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세르의 피라미드는 현재 20%만 발굴됐을 뿐 나머지 80%는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땅 밑에 누워 모래를 걷어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계단식 피라미드를 건축한 사람은 조세르 왕조 최고의 건축가인 임호테프이다. 그는 조세르 왕조의 재상이면서 왕비의 애인이기도 했다는데 최고의 남자와 최고의 여자에게 동시에 총애를 받은 것은 오로지 그의 건축 실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남모르게 숨겨 두었던 개인기라도 있었던 것일까?

하늘은 새파랗게 빛나지만 여전히 한기는 남아 있다. 우리보다 훨씬 가죽이 두껍다는 이 나라 사람들도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감고 있을 정도다. 거의 허물어져 가는 피라미드이지만 아래쪽에서 꼭짓점을 올려보면 현기증이 날만큼 아찔하다. 기자의 피라미드에 비해 조악하다는 평가를 받기는 해도 어찌됐든 거의 5천년을 뛰어넘어, 이집트인이 아닌 이방인조차 그들의 손길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한 솜씨에는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피라미드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과거의 손길을 상상하고 있는 동안 당나귀를 탄 원주민이 지나간다. 그 모습이 너무나 순박해 보여 얼른 카메라를 꺼내들었더니 그 역시 손가락 두개를 내밀어 승리의 V자를 그리며 포즈를 잡아 준다. 치아가 약간 앞으로 튀어나온 그에게서 느끼는 동질감과 함께 태초에 인류를 만드신 조물주께서 이가 튀어나온 사람 중에는 악인이 없게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집요하고 강력하게 머릿속에 맴돈다.


그의 인상이 하도 선해 불러 세워 함께 사진을 찍고 1달러를 건네주니 기본적으로 선한 바탕에 몇 백 배는 더 착해 보이는 웃음을 짓는다. 직각에서 약 15~20도 정도 외부를 향해 돌출해 있는 그의 누런 윗니가 순박함의 원천인 듯하다.

그와의 기분 좋은 촬영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이번에는 2인 1조의 당나귀 꾼이 나를 멈춰 세우고는 재빨리 머리에다 터번을 대충 감아준다. 기왕에 쏘는 것 시원하게 쏘자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또 한 사람이 터번을 내게 덮어씌운다. 그렇게 사진을 몇 장 찍고 나니 10달러를 내놓으라고 한다. 두 사람인데다가 사진을 찍은 횟수도 많으니 인심 팍 써서 한 5달러 정도는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10달러라니 기가 막힌다. 내놔라, 못 내놓겠다며 몇 번이나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오가는 전 세계의 관광객들은 무슨 볼거리라도 된다는 듯이 발길을 멈추고 우리의 언쟁을 지켜본다.

알아먹지도 못할 저희들 말로 점점 언성을 높이는 꼴이 적당히 해서는 끝이 날 것 같지가 않다. 일단 1인당 1달러씩을 쥐어 주고 나서 최대한 눈알을 부라리며 소리를 꽥 질렀더니 기세등등하던 키 큰 녀석들이 단 번에 기가 팍 꺾인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것은 세계 공통이다. 어쩌면 관광지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규칙이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켜보던 만국의 여행자들이 우리 가족의 승리를 축하하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인다. 장난이든 실전이든 이기는 것은 좋은 것이다.


얼짱 파라오 ‘람세스2세’
멤피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 쯤 되는 곳이다. 땅만 파면 유물이 쏟아져 나와 단층 건물 한 채 짓는데도 몇 년씩 걸리는 경주와 이집트 최후의 파라오 클레오파트라7세의 무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멤피스와는 옛 왕국의 수도였다는 점도 똑 같다. 현재 멤피스는 중하층 주민들이 집단으로 몰려있어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유적지로 추정되는 범위가 워낙 넓다보니 곡괭이질이라도 한 번 하려면 이들 주민을 이주시켜야 하지만 이집트 정부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유적과 유물로 벌어들이는 엄청난 수입은 대부분 군비확충이나 정권유지를 위한 업무에 쓰이므로 새로운 발굴이나 유적 보호를 위해서는 선진국들의 선의만 바라는 형편이라고 한다.

멤피스의 박물관에는 잘 생긴 얼굴에 미끈하게 빠진 몸매의 람세스 2세가 누워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사찰마다 세계 최대의 청동불이니, 석불이니 하면서 크기에 집착하고 있지만 멤피스에 누워 있는 람세스 2세는 크기도 크기려니와 콧날과 턱선 등 유려하게 휘어지는 곡선이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아름답다. 깎아 놓은 듯하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일 게다.

그가 누워있는 이유는 발굴 과정에서 다리가 유실됐기 때문인데, 람세스 2세 본인은 기분이 나쁘겠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세워 놓고 우러러 보는 것 보다 뉘여 놓고 내려다보는 것이 몸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더 낫다. 악티움 전투라는 초대형 전쟁에서 승리하고, 아부심벨이라는 엄청난 신전을 건설한 파라오를 짝다리 짚고 서서 눈 아래로 보는 기분 또한 제법이다.

만약에 이 어마어마한 석상이 서 있는 거라고 가정을 한다면 람세스 2세가 이렇게 잘 생기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미이라를 조사한 결과 165cm 정도의 키에 메부리 코를 하고 있어서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박물관의 마당에는 그다지 크지 않은 스핑크스가 앉아 있는데 이집트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스핑크스라고는 기자의 카프레의 피라미드 앞에 버티고 있는 것만이 스핑크스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가는 곳마다, 유적지 마다 스핑크스가 없는 곳이 없을 만큼 흔하다. 마치 우리나라의 웬만한 갈비집이면 돌부처나 하루방을 세워놓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쩌면 실제로 고대 이집트의 식당에도 스핑크스 하나 쯤 세워놓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이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나라를 여행할 때 느끼는 뿌듯함은 일종의 쾌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든다. 우리 돈 1,000원이 여행지의 화폐를 압도하는 느낌은 사람과의 관계 또한 그와 마찬가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인도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게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이러한 느낌은 우리나라를 방문하거나 여행하는 선진국 사람들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똑 같은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백인이 아닌 인종에 대한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각국의 경제력이 살벌하게 피부에 와 닿는 화폐에는 금액으로 정해지는 차별이 분명하게, 아주 선명하게 존재한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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