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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역사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 (2019-11-29 10:27)

권 걸리버의 오빠 어디가 ?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은 겉보기에는 그다지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다. 저 속에 보관하고 있는 것이 소중한 것이긴 할 테지만 제대로 보관하고 있을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왕들의 계곡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체의 촬영도구를 맡기고 박물관으로 들어갈 때까지는 위의 생각이 유효하다. 

제대로 보자면 일주일은 봐야
그러나 일단 박물관 내부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게 된다. 엄청난 인파도 그렇지만 각각의 유물이 지닌 화려함과 그에 얽힌 하나하나의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하필이면 이 모래투성이인 나라를 택해 문명을 일구고, 유물과 유적을 남긴 선인들이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산 좋고 물 맑은 한반도를 그들은 왜 찾지 못한 것일까? 한반도에는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돌이 없었기 때문일까? 나일강에 필적하는 긴 강이 없었기 때문일까?

박물관은 반나절의 일정으로는 겉도 핥을 수 없을 만큼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엄청난 유물을 품고 있다. 그나마 박물관의 전시실이 협소한 관계로 다닥다닥 붙여서 전시해둔 걸 고마워해야 할 정도이다. 신화와 역사가 교묘하게 엮여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무시무시하게 전승돼 온 이 나라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박물관을 제대로, 마음껏 양껏 둘러보자면 시간적으로도 한 보름은 걸릴 것이고, 체력적으로도 육군 상병 정도의 체력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우와~, 으아~, 세상에~ 감탄만 한 것뿐인데도 다리가 뻐근하고 허리가 결리고 어깨가 무지근해진다.

수천 년을 썩지도 않고 꼿꼿이 누운 채로 견뎌온 사람은 물론 조류, 파충류, 어류, 곤충을 망라하는 미이라며 소년 왕 투탕카문의 황금마스크는 우리의 상상력을 저 아득한 고대의 나일강 유역으로 이끌어 간다. 황금 마스크와 황금 지팡이와 황금의자 등은 열 살에 왕위에 올라 열여덟 또는 열아홉의 나이에 비명횡사했다는 소년 왕의 역사를 더욱 극적으로 재구성해 낸다.

아쉽게도 박물관에서 보낼 수 있는 체력은 금방 고갈되고 만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박물관을 만만하게 보고 오후에 짧게 일정을 잡아놓은 터라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박물관을 나선다. 


여행 매너도 국력에 비례
박물관 앞마당으로 나오니 마당에 버티고 있는 스핑크스에 올라가 장난에 열중하는 아이들이 서너 명 보인다. 다행히도 한국아이들은 아니다. 머리카락 색깔이 노랗고 얼굴은 백색이다. 우리나라 애들은 별나고 가정교육이 문제라는 둥 그동안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한국인의 자해성 발언이 늘 마음에 걸렸던 것인데 서양 아이들의 막 돼 먹은 장난질이 반갑기만 하다.

아이들이 나대는 것은 결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조물주께서 아이 적에는 그렇게 해도 좋다고 허락했기 때문이다. 내 새끼는 얌전하게 보이고 남의 새끼는 별나게 보이는 눈에, 왜 내 나라의 새끼들은 다 별나게 보이고 외국의 새끼들은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은 걸로 보이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 각인된 서양 사대주의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1990년대까지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요즘의 젊은 부모들은 그렇게 함부로 키우지는 않는다. 사실 한국인 관광객의 몰상식한 행동도 옛날 말이지 요즘 말은 아니지 않은가. 이것은 꼭 우리의 부모님을 비롯한 선배 세대가 막 돼 먹었다는 게 아니라, 국가의 소득과 전반적인 수준의 문제라는 말이다.

요즘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가장 골치 아픈 관광객은 중국인일 것이다. 앞 뒤 재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고,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 떼도 되는지 대중을 잡지 못하는 것이 중국인 관광객들의 특성이다. 이런 특성은 우리의 선배 세대의 해외관광객들이 외국의 매스컴으로부터 집중적인 성토를 받은 것과 꼭 같은 대목이기도 하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중국에서도 지금의 한국처럼 해외여행이 보편화 된다면 그들의 여행문화도 예절도 국제 표준에 맞춰질 것이 틀림없다.

흔히 일본의 아이들이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어려서부터 남에게 피해 주지 말라는 취지의 가정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게 남을 배려하고 피해도 끼치지 않는다는 일본 사람들이 왜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싸가지 없고 염치없고 막무가내인지도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다. 그 얌전하고 정숙한 그 나라의 아이들이 자라서 파렴치한이 되어가는 걸 보노라면 얌전한 것이 아니라 음흉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국적을 불문하고 아이들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은 공통이다. 가만히 있는 건 아이가 아니라 노인이라는 사실.


영광의 시대를 뒤로 하고 나일강은 흐르고
나일강의 밤바람은 제법 맵게 불어온다. 유람선에서의 나름대로 근사한 식사가 끝나자 전통 춤 공연이 이어진다. 한강크루즈는 타 본 적이 없지만 이것과 그다지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치마를 두른 청년이 끝없이 빙글빙글 돌면서 머리위로 옷감들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춤인데 생전 처음 보는 눈에는 저런 것도 춤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저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춤에 비하면 우리의 부채춤은 정말 말 할 수 없이 아름다운 예술이다. 그런데 이 생각은 예쁘장하게 생긴 청년의 긴 긴 춤사위가 끝나고 밸리 댄스가 시작되지 전까지만 유효하다.

가슴이 큰 것인지 브라자가 작은 것인지 브라자에 다 들어가지도 않는 빵빵한 가슴을 출렁거리며 등장한 여인은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하늘색 천을 밀었다 당겼다 하면서 전통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든다. 맨 앞자리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내 눈치도 보이고 아들 눈치도 보인다. 아들 녀석도 좀 쑥스러운지 재미없다면서 갑판으로 나가잔다.

강변의 현대식 건물에서는 네온사인이 명멸하고 낮보다도 더 밝은 등을 달아놓고 있지만 나일강은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흐른다. 영광의 파라오 시대에서 알렉산더와 카이사르, 나폴레옹에 굴복했던 치욕의 시기를 겪었고, 특히나 로마의 장군 카이사르의 아내가 되었으며 카이사르가 죽자 그의 부장이었던 안토니우스를 유혹한데이어 카이사르의 조카 옥타비아누스를 집적거렸으나 끝내 독사에 물려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클레오파트라의 씁쓸한 역사. 독재자의 통치아래 세계사의 변두리로 밀려난 현재까지 말없이 지켜봤을 나일강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지중해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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