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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걸리버의 오빠 어디가? - 야간열차 ‘키타르엘눔’

아스완에서 카이로까지 나일강 따라 900km

  • (2019-11-08 09:52)

야간열차 키타르엘눔은 오후 다섯 시에 아스완역을 출발해 다음날 아침 다섯 시에 카이로의기차역에 도착한다. 아스완은 룩소르보다 훨씬 남쪽지방으로 거의 수단과 맞붙어 있다. 특급열차를 타고도 12시간을 달려야 이집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기자의 피라미드와 만나게 된다.


기차시간이 아직 2시간 정도 남았는데도 역사는 만원이다. 이집트 사람들보다는 백인 관광객들이 훨씬 더 많아 역사 안의 풍경만으로는 이집트가 아니라 유럽의 어느 생소한 나라라고 해도 모를 지경이다.


느릿느릿 아스완 시장구경
아스완역 앞에는 아스완 시장이 있다. 시장이라고는 하지만 구매욕을 자극하는 제품은 보이지 않는다. 향신료가게와 소규모 식당이 즐비한데 마침 에이시를 굽는 시간이라 빵집 앞에는 부르카를 두르고 히잡을 쓴 여인들로 장사진이다. 여인들 틈에는 터번을 두른 남자들도 간간이 줄을 서 있다.

이 시장에서는 공식적으로는 판매가 금지된 맥주를 살 수 있다. 정식 점포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게 마련인 암거래상을 통해서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젊은이 한 무리가 손으로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하며 손님을 유인한다.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던 그들은 하이네캔 한 캔에 3달러를 달란다. 한국의 맥주 값과 비교해 싼 가격은 아니지만 주류 판매가  금지된 나라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결코 비싼 값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차분으로 가져온 한 박스가 5초도 안 돼 동이 나자 한 젊은이가 이마에 착 달라붙은 곱슬머리가 휘날리도록 달려가서 또 몇 캔을 가져온다. 몇 차례의 맥주 장사가 끝나자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샛골목으로 빠져들어 가 순식간에 두툼해진 돈 다발을 한 장 한 장 세기 시작한다.   

그들의 전능하신 알라께서 엄격하게 금지해놓은 술을 판매하면서 행복에 겨워하는 그들의 모습이 어쩐지 안쓰럽게 느껴진다. 잘은 모르지만 알라께서도 술을 마시지 말라고만 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술을 마시는 것은 계를 어기는 것이지만 파는 것은 마시는 것과는 좀 다른 문제가 아닐까?


깔끔하고 쾌적한 침대칸

키타르엘눔은 정각 다섯 시에 출발한다. 그 옛날 학교에서 종을 치듯 역무원이 손수 타종하는 종소리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 열차는 아스완에서 카이로까지 흘러가는 나일강과 같은 궤적으로 구불구불 이집트의 밤을 꼴딱 새며 달려 갈 것이다. 

저녁 8시가 되자 멋지게 정돈된 콧수염 사이로 친절한 웃음을 매단 차장이 저녁 식사를 가지고 온다. 식사 역시 예상과는 달리 정갈하다. 푸짐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항공기의 기내식보다 양에서는 좀 앞선다. 빵과 요구르트와 사모사, 그리고 굴라쉬에다 후식으로는 오렌지를 곁들였다.


꾸역꾸역 제공된 식사를 해치우고 앉아 있자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나일강이 어떻게 어두워지는지,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사막의 밤은 그 한가운데서 천막을 치고 잠들던 밤과는 어떻게 다른지, 별은 마찬가지로 하늘을 가득 채우며 떠오르는지 지켜볼 것이 많은데 도무지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다. 일정하게 흔들리는 기차는 마치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얼러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인 듯 느껴진다. 기차소리는 국적을 가리지 않아 아랍어가 아닌 칙칙폭폭 칙칙폭폭 한국말로 들려온다.

몇 시나 됐을까? 아침 식사를 가지고 온 차장의 노크소리가 잠을 깨운다. 아직 어두운 것으로 봐서는 카이로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지만,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걸로 봐서는 1시간 남짓 남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시계를 호텔에 두고 나오면서도 무슨 큰일이야 있으랴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아침 식사로 제공받은 빵과 요구르트 따위를 잠시 미뤄놓고 펴놓았던 침낭을 개는 동안 차창으로 카이로 시내 풍경이 지나가는 듯하다. 뒤이어 잠시 후에 카이로의 기자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열어놓았던 여행가방에 황급히 침낭을 쑤셔 넣고 옷매무새를 만지고 있자니 본격적으로 속력을 늦추며 역사로 접어든다. 잠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는 못했어도 ‘기자’라는 말이 주는 감동에 몸이 떨린다. ‘기자의 대피라미드’ ‘기자의 대피라미드’ 얼마나 많이 듣고 또 읽었던 이름인가. 이제 기자에 도착했으니 대피라미드까지만 가면 기자의 대피라미드라는 고유명사가 진정으로 완성되는 셈이다.


유쾌하지 않은 정시 도착
정시에 도착했다고 해서 유쾌한 일이 일어나는 대신에 골칫거리가 생기고 말았다. 이집트의 모든 유적지는 아침 9시는 돼야 문을 여는데 정각에 도착하는 바람에 무려 4시간여의 시간이 비는 것이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역 앞 호텔로 들어갔더니 이미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기차 안에서라면 느긋하게 씻을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밀려오지만 어쩔 수가 없다.

세수도 세수지만 가장 시급한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한다. 화장실은 이미 아스완에서 함께 기차를 탔던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세수는 할 수 있겠지만 볼 일을 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천성이 민감한 데다 일을 보는 동안 각종 소음도 많은 체질인지라 밖에서 누군가가 기다리거나 서성거리면 마음껏 소리를 낼 수가 없어 제대로 볼일을 볼 수가 없다.

이 난국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 궁리를 거듭하면서 오락가락하고 있자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대체로 호텔을 포함한 대형 건물들은 층마다 화장실을 설치해둔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오랜 근심이 풀어지듯이 마음이 개운해진다. 행여나 사람들이 눈치라도 챌까 슬며시 지하로 내려가니 과연 한쪽 모퉁이에 화장실이 입을 쩍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아무래도 이 나라의 화장실은 비상식적이다. 무슨 놈의 소변기를 그렇게 높이 달아놨는지 뒤꿈치를 들고서야 겨우 변기를 조준할 수가 있다. 까딱하다가는 남의 오줌에 거시기를 담그기 십상이다. 큰 집도 마찬가지여서 변기와 화장실 문과의 거리가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멀다. 누가 와서 노크를 하면 최대한 팔을 뻗는다고 해도 대답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거리다. 명색이 호텔인데 이런 식으로 설계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호텔을 설계한 사람의 수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서 일을 보고 있는 동안 옆방에도 한 사람이 들어온다. 나보다 더 급했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리고 바지를 벗는 동작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나 싶더니 이내 와장창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고 사방팔방으로 파편이 튀는 소리도 뒤섞인다. 1초라도 늦었더라면 큰 봉변을 봤을 게 틀림없다.

이런 분위기라면 기죽어 있을 이유가 없다. 온 몸의 힘을 모아 한 바탕 쏟아내고 나니 비로소 사물이 제대로 보인다. 새벽 2시에 잠에서 깨느라 하룻밤 묵히는 바람에 냄새가 좀 그렇긴 하지만 옆방의 그도 자신의 그것에 취해 피아를 정확히 구분하지는 못할 것이다. 연속으로 힘을 주면서 화장실 바닥을 내려다보니 옆방 사람의 신발이 칸막이의 들려진 부분을 통해 엿보인다.

신발이 아니라 길쭉하게 생긴 세숫대야에다 발을 담가놓은 것 같다. 더 이상한 것은 그의 발이 놓인 위치다. 내 발은 분명 변기 바로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 옆방의 신발은 변기 앞이 아닌 화장실 문 앞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엉덩이와 발이 분리돼 있는 듯하다.   

갑자기 기가 죽어 변기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자니 그가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커다랗게 물을 틀어놓고 철퍽철퍽 세수를 하고 듣는 것만으로 온 몸이 다 뚫어지도록 코를 풀고 나서는 사라져 간다. 여전히 변기 위에 앉아 그의 발이 놓였던 자리와 내 발이 놓인 자리를 가늠해보니 적어도 30cm 이상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세상에...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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