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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우리는 합법 업체입니다”

  • (2019-06-07 09:37)

다단계판매업체의 사업설명회나 컨벤션과 같은 큰 행사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들어서는 SNS에서도 자주 볼 수 있지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영업을 하는 곳이라면 굳이 합법적인 업체라는 사실을 자랑거리로 내세우진 않습니다. 마트에 가더라도 “우리는 합법 마트입니다”라고 말하진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오로지 다단계판매에서만 볼 수 있는 괴상한 풍경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우선 다단계판매를 규제하는 방문판매법에 대해 거론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이 법은 1992년 제정됐고, 3년이 지난 1995년 법의 전면개정을 통해 다단계판매가 제도권 안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당초에는 다단계판매를 허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를 금지하기 위해 법이 만들어졌지요.

우리나라에 다단계판매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70년대 후반, 외국 여행객들에 의해 다단계판매와 유사한 형태의 판매방식이 국내에 소개되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문제는 다단계판매 방식이 처음 도입됐을 당시 이것으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불법 피라미드 조직들이 조악한 영업방식을 취해왔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300만 원 시스템, 500만 원 시스템 등으로 금액의 단위가 커져 사실상 도박행위에까지 이르게 됐고, 심지어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몇 사람이 자살하는 등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비화됐지요. 피라미드 기업들이 판치는 와중에 국내 시장에 건전한 다단계판매가 뿌리를 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결국 다단계판매를 금지하게 된 건 언론과 대중들의 차가운 시선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유통개방 압력과 주변국인 일본, 미국 등 선진국에서 선전하는 다단계판매를 무조건 규제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두됐고, 법이 제정된 지 3년 만에 전면개정을 통해 다단계판매가 허용됐습니다. 당시 발표된 개정안은 판매원의 단계가 3단계 이상이면 다단계판매, 2단계까지는 방문판매로 규정했습니다.

특히 다단계판매에는 사행성을 우려해 100만 원이라는 제품의 가격 상한선이 생겼고, 후원수당을 총매출에서 35% 이상 주지 못하도록 했으며, 자본금의 100분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자체에 환불보증급으로 공탁해 소비자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현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합법 업체이다”라고 홍보하는 건 어쩌면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단계판매에 덕지덕지 발라져 있는 촘촘한 규제를 생각해보면 말이지요. 그동안 업계를 들여다보면서 방문판매법의 규제가 업계 발전을 막는 족쇄가 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많기 때문에 더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공존했지요.

몇몇 이들이 다단계판매를 더욱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개 이들은 다단계판매나 불법 피라미드를 구별하는 것에 크게 공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유사수신, 불법 피라미드 모두 다단계판매로 호도한 언론의 역할이 컸겠지요. 그러니 다단계판매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렇게 고착화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다단계판매에 무차별적인 규제가 덧씌워지게 됐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법 조항이 들끓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방문판매보다 다단계판매의 처벌 수위가 더 높다는 점을 악용해 방문판매로 등록한 채 다단계판매방식으로 영업을 하는 불법 업체들이 난립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문제는 정작 규제해야 할 미등록 다단계업체, 불법 피라미드, 유사수신 등에 대한 처벌은 흐지부지된 바람에 오히려 이곳에 발을 들이는 판매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거기서 그치면 다행이겠지만, 불법 업체에 몸담고 있는 몇몇 악질 판매원들이 다단계판매업체의 조직을 통째로 빼앗아가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테헤란로에는 “코인에 한 번 빠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속설이 떠돌고 있을까요.

이미 다단계판매는 공제조합을 통해 소비자 피해보상에 대한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고, 실제로도 다단계판매로 인한 피해접수는 다른 유통방식에 비해 미미한 편입니다. 다단계판매에 대한 방문판매법의 규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소 희망적인 건 많은 언론사에서는 방문판매법의 고질적인 문제점에 대해 꼬집는 기사를 여러 번 보도하면서 인식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고, 공정위나 협회, 조합, 학회 등에서도 방문판매법의 개정방향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것 역시 고무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녹음이 한창인 계절입니다. 곳곳에서 장미를 볼 수 있는 여름이 찾아왔네요. 문득 나무와 꽃들이 겪었을 겨울의 고귀한 희생이 떠오릅니다. 지금의 황홀경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두영준 기자endudwns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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