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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만나는 ‘놀라운 사랑’

  • (2019-03-08 10:25)

아무리 감정조절에 능숙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찾아온 사랑을 돌려보내지는 못한다. 사랑은 결코 설득할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는 감정이다. 불타는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등 돌린 사랑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들조차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권택영 옮김 | 문학동네

상식적인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저자인 나보코프를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부을 수도 있다. 어쩌면 반도 읽지 못하고 던져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도전하다보면 마침내 나보코프가 이야기하려 했던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된다. 충격과 역겨움까지도 문학적으로는 신선한 것이고, 새로운 시도였으며 영원히 살아남을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까지도.

롤리타는 열두 살 소녀. 험버트는 서른다섯 또는 서른일곱 먹은 남자. 이 황당한 설정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롤리타를 사랑하게 된 험버트는 그녀를 갖기 위해 그녀의 엄마와 결혼을 감행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느날 그녀의 엄마는 죽고 험버트는 롤리타를 데리고 긴 여행에 나선다.

감금하고 유린하고 협박하고 때로는 아양을 떨고, 선물과 돈으로 환심을 사려하지만 호두껍데기처럼 단단한 롤리타의 마음은 열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롤리타는 험버트로부터 도망을 치고 그는 끈질길 수소문 끝에 그녀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녀를 유린한 퀼티라는 남자의 가슴팍에 총알을 꽂아 넣는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이 사랑의 뒷면에 들러붙은 질투라는 감정도 선명하다. 



바다여, 바다여  아이리스 머독 | 최옥영 옮김 | 민음사

찰스 애로비라는 늙은 연극배우가 북극에서 가까운 바닷가로 이사를 온 후 쓰기 시작한 자서전 형식을 띠고 있다. 찰스는 이 바닷가 마을에서 소년 시절의 첫사랑이었던 하틀리를 우연히 만나고, 폭력적이고 의처증이 있는 그녀의 남편 벤저민 피치로부터 하틀리를 구출해내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한다. 운 좋게 하틀리를 구해낸 그는 자신의 집 2층에 감금하고 그녀가 마음을 돌리기를 고대하지만 하틀리는 끝까지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 결국 자신을 방문한 사촌 제임스의 제안으로 그녀를 돌려보내기로 한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누구나 찰스 이외의 모든 인간은 문제를 가진 것 같다. 그러나 실은 찰스를 제외한 등장인물 모두가 정상인 반면 찰스는 과대망상증 환자라는 반전.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등장인물의 심리를 정확하고 깊이 포착해내고 있다. 특히 찰스와 제임스의 심리 대결은 흥미진진하다. 전쟁이라는 현실을 거친 제임스가 보다 정신적인 반면, 연극이라는 환상을 거친 찰스는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설정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사랑과 질투와 권력과 종교 등 인간사의 온갖 분야를 다루면서도 어느 특정 지점이 삐져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평가 받을 만하다.



둔황  이노우에 야스시 |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월아천이라는 아름다운 오아시스가 있고, 위구르라든가 타클라마칸, 우루무치 등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그려보았을 지명들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일본군 군의관을 아버지로 뒀던 작가의 어린 시절이 반영돼 껄끄럽기는 하지만 문학은 다만 문학일 뿐이니까.

소설은 짧지만 강렬한 장면을 군데군데 품고 있어서 박진감 있게 읽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전쟁소설 같고, 한편으로는 역사소설 같지만 결국은 한 여자에 대한 세 남자의 사랑을 그린 아름다운 연애소설이다.

둔황 위구르 타클라마칸 등의 지명에 알 수 없는 애잔함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소설의 사랑이야기가 더해지면서 그 애잔함의 이유를 찾게 된다.

눈에서 멀어졌으므로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사랑과, 돈과 권력을 가진 수집가의 욕정이 반영된 사랑과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걸고 반란을 일으키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둔황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점점이 수놓아져 있다.

둔황이 아름다운 것은 멀고 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터벅터벅 낙타를 타고 그들의 길을 좇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정일근 시인의 「우루무치에서의 사랑」을 찾아서 읽어볼 것.



포르노그라피아   비톨트 곰브로비치 | 임미경 옮김 | 민음사

이만큼 입맛이 확 당기는 책도 별로 없을 것이다. 서른 살이 넘은 비톨트와 프레데릭이라는 두 변태가 열여섯 살 먹은 소녀 헤니아와 소년 카롤을 대상으로 벌이는 엽기적인 행동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도둑일기」의 장 주네처럼 거침없고 아름다운 글로 표현되는 각각의 행위들은, 그 미려함으로 인해 엽기적인 이야기조차 큰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서른 살이라는 나이는 결코 제대로 된 어른 대접조차 받을 수 없는 나이에 지나지 않지만 이 소설이 쓰여졌던 과거의 통념으로 미루어본다면 평균 수명에 육박해 가는 나이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좀처럼 예상하기 힘들어서 더 매력적이다. 비톨트 곰브로비치라는 작가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 죽이고 죽는 걸로 결론을 낸다. 중첩되는 죽음이 주는 메시지는 젊은이와 나이 든 사람 사이의 치명적인 영향을 뜻한다. 서서히 젊음을 잃어가는 세대들의 젊음에 대한 집착이거나, 십대 청소년들에게는 역겨운 나이로 치부되기 십상인 서른을 넘긴 어른들 간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하는 게 목적일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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