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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에 읽기 좋은 책 (2019-01-11)


혹독했던 지난여름. 기상 전문가들은 올겨울이 추울 거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여름에 더웠으니까 겨울은 추운 게 당연한데 마치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그게 다 지구 온난화 탓이라며 수년 전부터 해왔던 말을 되풀이 했다.

(당연한)추운 겨울밤 어깨 위에 스웨터 한 장 걸치고 앉아 읽으면 딱 좋을 책들을 골랐다. 책 속에서는 눈보라가 치고 호랑이가 뛰어 오르고, 또 나비도 한 마리 날아간다. 책 읽기 좋은 겨울밤.



<밀림 무정> 김탁환/ 다산책방


소설은 흥미진진하다. 겨울에 읽는 남자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무협만화의 표지처럼 화려한 그림도 독특하다.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김탁환은 카이스트 교수직을 버릴 즈음 이 책을 썼다

사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이 책이 아니더라도 각종 만화나 무협지, 소설 등의 형식으로 꽤 출간 됐던 것 같다. 특히 백두산 포수와 백두산 호랑이의 이야기는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소재이므로 이야기 꽤나 한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뤄보고 싶을 것이다.

책의 맨 앞장에는 주인공 ‘산’이 호랑이 ‘흰머리’를 쫓아 백두산까지 가는 여정을 지도로 표시해 놓아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개마고원을 덮으며 자라는 온갖 나무와 꽃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름을 들으면서 꽃을 상상하는 일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한자로 된 이름이라면 몰라도 우리말도 된 꽃 이름들은 정겨우면서도 상상이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하다.

두 권짜리 책을 한달음에 다 읽을 만큼 대단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 한 장면 한 장면 마치 영화로 만들 것을 염두에 둔 것처럼 선명하게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소설 속의 백호 흰머리는 표지의 그림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신령스럽고 의젓하게 느껴진다.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박수용/ 김영사

대체로 열정이라는 것은 어떠한 대상에 대한 열망이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기운을 말한다. 그러나 한겨울의 시베리아 땅속으로 숨어들어 겨우내 숨죽이고 있는 것도 밖으로 분출되는 열정 못 않게 뜨거울 수도 있다. 

이 책은 박수용이라는 다큐멘터리 작가가 20년이 넘게 러시아의 우수리 일대를 누비며 시베리아 호랑이를 추적한 과정을 그려 놓은 것이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통해 시청하는 짧은 다큐멘터리 작품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안방으로 전송되는 것인지 잘 보여준다. 편안하게 앉아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하쟈인이라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왕대(짱)와 그의 짝인 블러디 메리 그리고 그들의 자식인 월백과 설백, 천지백의 성장기가 담겨 있다. 모든 동물의 왕인 호랑이가 인간의 탐욕 앞에서 멸종해가는 과정을 그려놓았다.

현명한 데다 경계심도 남달랐던 블러디 메리조차 밀렵꾼이 설치해 놓은 무인총에 맞아 목숨을 잃고, 블러디 메리의 아들인 천지백은 올무에 목이 걸려 숨지고 만다. 대체 인간은 왜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호랑이의 가죽과 고기와 뼈를 탐하는 것인지.

반면에 저자와 산지기가 바위에 앉아 쉬는 동안 하쟈인은 그들 앞을 지나가면서도 지켜보기만 한다. 하쟈인에게 인간은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일까?



<닥터 지바고> 보리스 빠스쩨르냐크/ 박형구 역/ 열린책들

닥터 지바고는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더 유명한 책 중의 하나다. 소설은 유리 안드레예프 지바고라는 의사가 격랑기의 러시아를 통과해가는 모습을 유년 시절부터 따라가고 있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전쟁에 참전하게 되고, 잠시 동안의 휴지기를 거친 후에는 적군(赤軍)에 의해 납치돼 군의관으로 복무한다. 그리고 탈출과 도피가 이어지다 결국 모스크바의 전차에서 숨지는 것으로 대단원을 맞이한다.

작가의 성향 탓인지 충분히 긴박하고 드라마틱하게 그릴 수 있는 납치 장면이나 탈출 장면도 덤덤하게 그리고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가장 용맹스러운 적군 병사 중의 한 사람인 빰삘 빨리흐가 가족을 살해하는 장면은 세밀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공포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이에게 닥칠 백군(白軍)의 고문이 두려워 목각 인형을 깎아주던 도끼로 세 사람을 살해하고 자신 역시 홀연히 사라지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이 좀 지루하고 산만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오래도록 읽히는 것은 액센트처럼 곳곳에 숨어있는 몇 몇 챕터 덕분이었을 것 같다. 지바고는 두 번의 전쟁을 겪고 세 번의 결혼을 한다. 결국 인생이라는 것은 전쟁과 사랑으로 압축할 수 있겠다.



<나비의 무게> 에리데 루카/ 윤병언 역/ 문예중앙

제목만 본다면  '장자의 나비'를 떠올릴 만큼 철학적이다. 소설은 '산양 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산양 사냥에 이골이 난 산양 왕과, 죽는 순간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도전을 허락하지 않았던 산양 왕이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소설은 긴박감이 넘치거나  숨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두 산양 왕은 각자의 자리에서 왕의 길을 간다.

자세한 정황이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사냥꾼은 젊은 날 이념의 분쟁에 휘말렸던 것 같다. 마치 '조르바'가 그랬던 것처럼. 동양이나 서양이나 운동권이 갖는 매력은 공통적인 모양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 산양 왕이 사냥꾼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었지만 그냥 위협하는 것에 그친 반면 사냥꾼은 위협에서 벗어나자마자 총을 들어 산양 왕의 생에 탄환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내장을 들어내고 산양을 지고 내려오다 나비 한 마리의 무게에 무릎이 꺾이고 끝내 두 산양 왕은 한자리에서 얼어붙는다.

'한 남자는 결국 그가 저질러온 일들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 '인간들은 무수히 많은 규율을 만들어냈지만 기회만 있으면 규율들을 무시하고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다' 등의 말을 잠언인 듯 풀어놓으면서 소설의 무게를 더한다. 설산과 오두막과 바위절벽. 그리고 끝내 만나지 못한 여성. 남자들의 모든 로망이 어우러져 있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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