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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읽으면 더 좋은 책 (2018-10-12 10:15)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계절을 가려서 책을 읽을 이유는 없지만 쾌적한 날씨는 책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조금 더 선명하게 보여줄 수는 있다. 좋은 책은 계절을 심하게 타는 사람의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는 힘이 있다.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이윤정 번역
하루키 상이 찾아간 위스키 성지는 아일랜드다. 아일랜드 역시 제주도처럼 심한 바람이 불고, 사람들도 약간 무뚝뚝하다. 우리가 제주도를 폄하할 때 주로 거론하는 것이 비와 바람인 것처럼 아일랜드는 비와 바람으로 인해 외면 받는 여행지 중의 하나다.

작가가 되기 전에 ‘물장사’를 했던 하루키답게 술에 대한 지식과 애정은 상상 이상이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위스키 관련 상식 하나. ‘스카치 위스키에는 얼음을 넣어도 되지만 싱글몰트 위스키에는 절대로 얼음을 넣어서는 안 된다. 귀중한 향이 달아나버리기 때문에. 마시기 전에 먼저 술잔 위에 코를 대고 그 향을 맡아 보아야 한다’

‘말아 먹는’ 문화에 절여진 한국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좀 어색한 감이 있지만 ‘짬뽕’ 싫어하는 진정한 주당에게는 권할 만하다.

‘증류소마다 나름대로 증류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레시피란 요컨대 삶의 방식이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가치 기준과도 같은 것이다. 무언가를 버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말은 하루키이기 때문에 들려줄 수 있는 것이다.

조금씩 기온이 떨어지는 요즘 같은 날, 조개탄을 피운 난로 앞에서 싱글몰트 위스키 한 잔?


리스본의 겨울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민음사/나송주 번역
재즈가 흐르는 마당, 하다못해 베란다에서 무릎담요 덮고 읽으면 좋은 책이다. 등장인물들이 재즈를 연주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렇기도 했고, 소설속의 풍경들이 또한 그랬다. 비가 내리고, 빛보다는 어둠이, 큰길보다는 골목길이, 유쾌한 장면보다는 어딘지 음울한 분위기가 압도하는 영화를 보듯이 이 책은 어둡고 탁하다.

많이 보아온 유럽의 영화처럼 소설은 뻔하지만 저자인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의 언어는 독특한 매력으로 빛난다. 소설을 읽기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스페인어를 알았더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소설은 가장 마지막 장면을 1장에다 배치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모든 곡절을 겪고 사랑마저도 다 겪은 다음 메트로폴리타노의 바에서 연주하는 비랄보가 2년 만에 만난 ‘나’에게 “난 행복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났네”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마치 이 책을, 그리고 모든 주인공들의 삶을 한 줄로 요약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책을 읽는 모두를 향해 지나치게 행복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뜨인돌/김지선 번역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대목은 ‘濫讀(남독)은 결코 문학에 영예가 아닌 부당한 대접…… 책은 오직 삶으로 이끌어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p10)는 대목이다.

자세히 읽기보다는 많이 읽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주의처럼 읽히기도 한다. 새 책을 사서 서재를 채워나가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신간을 꿰고 있다는 평가는 물리치기 힘든 유혹이기도 하다. 이 책에도 나와 있지만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은 새로 나온 책을 고르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가장 오래된 책이 가장 좋은 책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는 가장 좋은 책은 오래 살아남은 문학이라고 단언한다. 그 자신이 소설가이자 시인이었으므로 하는 말일 수도 있으나 가장 견고한 독서는 고전문학이다.

처세, 자기계발, 리더십 등등의 책들을 수도 없이 읽었어도 그런 것이 생기지 않거나 향상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일독하길. 고전문학 속에는 이미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부지불식간에 체득되기도 한다. 사실 그런 것들은 글 한 줄 읽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마음을 닦아야 하는 부분.


인생
위화/푸른숲/백원담
망설임도 거칠 것도 없이 전진해 나가는 그의 글 솜씨는 과연 위화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중국의 마을 풍경이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고, 시대적인 배경에 대해서도 어려서부터 듣고 배워온 대로여서 읽기에 어렵지 않다. 번역도 매끄러워서 마치 우리나라 작가의 책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인생>은 마치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를 길게 풀어놓은 듯 다행과 불행이 잇따라 자리를 바꾸면서 진행된다. ‘푸구이’라는 노인이 소를 데리고 밭을 갈면서 털어놓은 회고담, 그러니까 푸구이의 인생에 빗대 과거 중국의 시대상과 그 시대에 끼어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인민들이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를 가졌던 푸구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노름에 미쳐서 재산을 다 잃는다. 땟거리가 없을 만큼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와 아들과 딸과 아내를 차례차례 잃으면서 늙어간다.

재산을 모두 잃은 후 푸구이의 모친이 그에게 들려줬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이 즐겁게 살 수 있으면 가난도 두렵지 않은 법”


전쟁의 슬픔
바오닌/아시아/하재홍
전쟁 소설이면서 또 연애 소설이다. 풋풋한 사랑을 키워가던 소년 끼엔과 소녀 프엉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겪는 정신적 육체적 공황 상태가 어지러이 펼쳐져 있다. 마치 조준하지 않고 미친 듯이 쏟아 붓는 총알처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는 전개된다. 

전쟁처럼 어느 한 부분도 명료하지 않다. 아니 전쟁이 발발했다는 그 사실만이 명료할 뿐이다. 책을 읽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이 베트남 전쟁에 대한민국 또한 깊숙이 연루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총격전 장면을 읽노라면 끼엔의 반대편에 내가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끼엔도 프엉도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피폐한 삶을 이어가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베트남 전쟁에 관한 소설이라고 읽었는데, 그 소설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한국과 한국인의 모습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전쟁을 뒤로 하고 한국과 베트남은 가장 많은 인적교류를 하는 나라들이다.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중국인이 가장 많지만 베트남에서만은 중국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다. 베트남 가기 전에 필독.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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