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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좋은날 (2018-08-31 10:44)

111년 만에 들이닥친 불볕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시원한 날씨 덕분인지 일상에 여유가 더해진 기분입니다. 사업하기에도 딱 좋은 날씨겠네요. 이번 목요일 오후에서는 가을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한담을 늘어놓아볼까 합니다. 먼저 20년 전의 기억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저는 한때 강원도 산골짜기에 살던 촌놈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배산임수의 터에 위치해 있었는데, 뒤로는 철원평야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고대산이 솟아있었고, 앞으로는 맑은 벽계수가 흘렀습니다. 철제로 된 대문은 우체통보다 더 새빨갛게 칠해져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강아지 두 마리가 뛰어놀던 꽤 널찍한 마당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여름이 되면 등목을 할 수 있는 작은 수돗가가 있어서 동네를 휘젓듯이 한창 뛰어놀고 들어와서 열기를 씻어내곤 했습니다. 또 담벼락을 금방이라도 뛰어 넘을 것처럼 꽤 크게 자란 감나무 근처에는 수박을 썰어 먹으면서 온 가족이 왁자지껄 이야기했던 원목평상도 있었습니다. 이 평상에서 감나무를 지붕삼아 낮잠을 자는 것도 행복한 일 중의 하나였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또래에 비해 군것질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슈퍼마켓에 가기 위해서는 읍내로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간판이 없는 한 가정집에서 백발의 할아버지가 과자 몇 봉지와 두부나 콩나물 따위를 진열해 놓고 동네 사람들에게 파시곤 했지요. 물건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 거리 곳곳에 깨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어서 달콤한 속꽃잎을 뽑아 쪽쪽 빨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집 뒤편에는 울창한 소나무로 가득한 오솔길이 있었는데, 호젓한 분위기가 좋아서 놀이터처럼 자주 갔었던 기억도 나네요.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보는 건 꽤 값진 일입니다. 지금 당장 그때 그곳에서 똑같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같은 기분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살던 강원도에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느꼈지요. 이제 그곳엔 깨꽃도 없고, 뛰어노는 어린 아이들도 없습니다. 동네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추억을 가리기라도 하듯 곳곳에 아파트와 고층빌딩이 들어섰고, 유명 햄버거집과 편의점도 제법 많이 생겼습니다. 고색창연한 옛 모습은 오롯이 제 기억 속에만 남게 됐네요. 

가을만 되면 마치 어제 고향에 있었던 것처럼 선명한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지독한 더위를 신경 썼던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 것일까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옛날 생각을 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추억하는 일은 실제로도 정신적인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네요.

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긍정적으로 추억한다면,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특별히 불행한 일을 더 많이 겪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 과거의 기억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추억이 되기도 하고, 트라우마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개의 남자들이 지겹게 들려주는 군대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군 생활을 하면서 화장실에서 먹었던 눈물 젖은 초코파이나 여자친구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는 이야기는 당시에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소소한 농담거리로 바뀝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까닭은 사람이 나쁜 일을 겪게 되면, 그 순간 속에서 있었던 좋은 기억들도 함께 저장되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나쁜 감정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좋았던 기억을 추억으로 남기는 반면,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슬프고 힘들었던 순간만 떠올린다고 합니다.

추억하는 일에는 또 다른 힘도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한 요양원에서는 추억하는 일을 치매요법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치매는 추억을 도둑질 당하는 병입니다. 그래서 이 요양원에서는 치매에 걸린 노인들과 추억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눕니다. 또 인지력을 자극하기 위해 유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영상을 보여주고, 자주 들었던 음악도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 요법은 투약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감소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네덜란드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저에게 추억은 오르골 같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꺼내보면 늘 같은 선율로 그때를 연주해주니까요. 잠자리에 들기 전 차분하게 들려주는 어머니의 동화 같기도 하네요. 여러분들도 애잔한 향수가 남아 추억이 되고 계신가요? 아니면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만 가득하신가요?

길은 미래를 향해 뻗어 있지만 그 길을 만드는 건 추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추억은 보물이고, 이 세상에서 추억이 없는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부터라도 내일의 추억을 남기시는 건 어떨까요? 


 
두영준 기자endudwns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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