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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친구 생각 (2018-08-10 10:10)

오래 전의 일입니다. 어느 다단계판매업체에서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친구가 먼저 알아봤고 같은 반이었다고 확인해줬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더듬어 봐도 그 친구의 얼굴은 기억 속에 없었습니다. 그 역시 그럴 거라고 인정했습니다.

같은 반이기는 했지만 그 친구는 수시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등교를 하더라도 잠만 잤다고 했습니다. 농땡이여서가 아니라 밤에 공장에서 일을 하느라고 그랬다고 했습니다.

먼저 알아보지 못한 것도 미안했지만 열여섯 까까머리가 밤을 밝혀가며 공장에서 일을 하는 동안 어떻게든 놀 궁리, 용돈 타낼 궁리에 골몰했던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에 병을 얻었던 그의 아버지는 18년이라는 세월을 고스란히 병원에서 보내고 난 후에야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열여섯 짜리가 서른넷의 가장이 되고서야 그 참혹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어려운 중에서도 예쁜 아내를 얻어 결혼을 했고, 비록 힘에 겨웠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축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가 다단계판매를 알게 된 것은 공공주차장에서 주차원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소개를 받았고, 듣고 보니 잘만하면 인생역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겁니다. 친구와 그의 예쁜 아내는 휴일도 없이 매일매일 센터에 나와 청소도 하고 고객도 맞으면서 천재일우의 기회를 성공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가끔씩 그는 1만 원짜리 돈다발을 흔들며 ‘좋은 데’ 술 먹으러 가자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몇 번을 사양했고, 몇 번인가는 지나가는 말로 나중에 소주나 한 잔 하자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렀고, 모든 인연이 그러하듯이 어느 지점에선가 소원해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다시 생각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며 페이스북에 사진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고, 다행스럽게도 전화번호는 그대로였습니다. 무뚝뚝하지만 씩씩한 친구의 목소리가 반갑게 들려왔습니다.

그는 이제 다단계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절대로 그런 데 얼쩡거리지 말라고 충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꽤 높은 직급까지 올랐던 친구는 적지 않은 빚을 졌다고 했습니다. 무슨 빚이냐고 묻지는 않았습니다. 묻지 않더라도 스폰서가 직급을 달성하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해, 혹은 파트너가 직급 가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적잖이 사재기를 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잖아도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다단계를 알았다는 죄로 빚까지 지면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노라고 전해왔습니다.

친구는 지금 ‘노가다 판’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111년 만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도 부지런히 비계를 타고 꼭대기와 바닥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리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는 “비록 몇 푼 되지는 않지만 이렇게 속 편한 돈도 없다”며 껄껄 웃었습니다. 다단계는 그런 게 아니라고, 회사와 스폰서를 잘못 만난 것뿐이라고 이야기해주려다 입을 닫았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겪은 만큼만 세상을 이해하게 마련이니까요.

그의 페이스북에는 신혼시절이었거나 결혼을 앞뒀을 무렵에 찍었을, 예쁜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뿌듯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남루한 ‘이장님 점퍼’를 입고도 그렇게 환하게 웃었던 그가 다단계판매를 했다는 사실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도 그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가난한 부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친구네 부부와 마찬가지로 땀 흘린 돈이 진짜라고 너털웃음을 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업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경제활동은 사행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자본의 논리라는 것은 가장 적게 투자하여 가장 많은 부(富)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사행성의 최고봉이라면 로또를 비롯한 복권과 카지노입니다. 그리고 주식과 가상화폐와 부동산 또한 대표적인 사행성 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다단계판매는 사행성 산업에 속할까요?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해나가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습니다만 다단계판매는 결코 사행성 산업이라고 말 할 수가 없습니다. 들인 공에 비한다면 소출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찡해옵니다. 열여섯 까까머리, 학교를 마치면 공장으로 달려가 야근을 해야 했던, 18년 동안 아버지의 병수발로 인생이 꼬여버린 그 친구를 생각합니다. 그가 더 좋은 회사를 만났더라면, 더 좋은 스폰서를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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