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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업계의 흑백사진<3> (2018-06-08)

IMF라는 해괴한 성탄 선물

1997년의 다단계판매업계는 큰 희망과 깊은 절망이 공존했던 한 해였다. 몇몇 업체는 된서리를 맞고, 불경기라는 악재까지 겹쳐 업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렸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업계 관계자들은 각종 모임, 세미나, 강의를 가지면서 업계의 완전한 정착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경영진, 판매원 현안 해결 위해 모였다
1997년 1월 10일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에서 23개 다단계 업체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가 열렸다. 다단계 대표자 협의회를 이끌어갈 임원을 선출한 이번 총회에서는 세모의 박상복 사장이 초대회장으로 선출됐다. 한국암웨이, 뉴스킨코리아, 풀무원생활, N.H.B.인터내셔날이 부회장사로, 삼왕인터내셔날(현 앨트웰)이 감사로 선임됐다.

여기에 다단계판매업계의 보다 빠른 정착을 위한 대국민 홍보와 공익사업을 위해 허벌라이프, 썬웨이브인터내셔날이 학술 지원을, 한국암웨이, 렉솔코리아, N.H.B.인터내셔널이 홍보업무를, 대등산업, 풀무원생활, 세비앙몽드가 공익사업부문을 담당하기로 했다.

이처럼 이 시기에는 각 업체 대표자 등 관계자들이 한 데 모여 수차례 단합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앞서 <다이렉트셀링>이 주관한 조찬 모임을 시작으로 통상산업부와 서울시청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불법 피라미드 대처방안 ▲대정부 창구 단일화를 위한 방문판매업협회 등록 ▲한국적 다단계판매 정착을 위한 학술적 지원 ▲판매원 수준향상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에 관한 안건 등이 토의되는 과정을 거쳤다.

▷ 한국방문판매업협회 제5차 정기총회에는 86 개 회원사 중 77개 회원사가 참석했다

1997년 2월 27일에는 한국방문판매업협회 제5차 정기총회가 열렸다. 각 회원사들의 깊은 관심도를 반영하듯 당시 86개 회원사 중 77개사가 참석했다. 이날 정기총회의 중요 안건으로 협회 산하에 다단계위원회와 방문판매위원회를 두고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 향후 협회 활동에 많은 기대를 불러 모았다.

업계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은 판매원들 사이에서도 감지됐다. 1997년 9월에는 40여 명의 다단계판매업체 리더들이 한 자리에 모여 ‘리더스클럽’이라는 모임을 창설했다. 한국의 다단계판매산업을 올바로 정착시키기 위한 활동을 경영진에 모두 위임하기보다는 사업자들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 모임이 발족했을 당시 다단계업계와 관련된 학술관련 활동과 교육 프로그램 지원, 건전한 다단계판매 산업의 대외홍보를 위한 캠페인 등을 근간으로 하는 회칙안이 통과됐다.
▷ 한국의 다단계판매업계를 올바로 정착시키고 자 판매원들이 나서서 모임을 창설했다


대기업 진로그룹의 부도
1997년 6월부터 다단계판매원의 후원수당에 대한 사업 소득세가 부과됐다. 앞서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부가가치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확정하여 5월 3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개정안에는 다단계판매원의 경우 하위판매원의 판매실적에 따라 다단계판매업체로부터 지급받는 후원수당에 대해 부가세는 계속 면제하되 소득세를 1% 원천징수한 후 매년 5월 사업소득 신고 때 과세표준금액에 대해 10∼40%의 사업소득세를 매기기로 했다. 이 같은 결정은 후원수당이 하위판매원을 교육하고 판매조직을 관리하는 대가로 받는 것이므로 판매장려금이 아니라 인적용역에 대한 자유직업소득으로 봐야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편, 1997년은 외환위기로 불경기를 맞으면서 다단계판매업계도 주춤했던 시기다. 1997년 5월 진로하이리빙의 모그룹인 진로그룹이 부도처리 됐고, 같은 해 7월에는 세모 에스엘의 모그룹인 세모가 부도처리 됐다.
▷ 진로하이리빙은 진로그룹의 부도 이후 애경, 온누리 내추럴웨 이 등 대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모기업의 부도 후 법적으로 분리된 진로하이리빙은 1997년 12월 상호를 하이리빙 코리아로 변경했고, 신동방의 사업본부장을 지낸 백승혁 씨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영입했다. 이듬해 1월 하이리빙의 경영권은 EBN코리아로 넘어갔다. EBN코리아는 하이리빙 코리아에 대한 신규출자를 통해 58% 지분을 확보, 경영권을 인수했다.

1979년 세모의 전신격인 삼우트레이딩을 인수합병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든 세모는 1996년 말 4개의 계열사와 10개의 사업본부, 9개의 해외법인을 거느린 국내 중견기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 세모 에스엘은 모그룹의 부도에도 불구하고 회생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결의대회를 가졌다


실업자들 다단계에 우르르 
정경유착, 한국경제의 뿌리 깊은 고질병이 마침내 곪아 터진 1997년 1월 한보그룹이 빚은 10조 원이나 지고 무너졌다. 한보의 침몰은 제일은행 등 금융기관을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갔고, 곧이어 삼미, 진로, 대농, 한산공영 등 굴지의 기업도 부도를 맞았다. 여기에 한국 경제를 일거에 휘청거리게 만든 재벌 순위 8위의 기아도 부도 위기에 몰렸다. 우리나라 경제가 위험해지자 한국에 돈을 빌려준 국제 금융기관들은 자금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했고, 외국 은행들은 한국을 투자 위험국으로 지목했다.

1997년 11월 16일 IMF 캉드쉬 총제가 극비리 방한해 부총리와 만났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도 이즈음 외환위기의 급박성을 인지했다. 이후 임창렬 신임 경제부총리는 11월 21일 오후 10시 IMF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IMF는 자금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우리 기업의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평생직장의 개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제는 위기를 맞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단계판매업계에는 실업자들이 대거 몰렸다. IMF의 여파로 실업 공포증이 확산되면서 다단계판매 시장에 주부, 자영업자, 직장인 등이 몰려들었다. 다단계판매산업이 난관을 극복할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로 인해 하이리빙과 노이폼하우스 등 중저가 생활용품 판매를 지향하는 업체들은 실업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잇따른 회원가입으로 영업활성화의 호기를 맞았다. 여기에 외국업체의 디스트리뷰터들이 속속 옮겨와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반면 한국암웨이나 뉴스킨코리아와 같은 외국계 기업들은 사면초가와 같은 상황이었다. 한국암웨이의 경우 세제파동 이후 떨어진 매출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와중에 IMF로 인한 국산품 애용 바람이 불면서 매출액이 급락했다. 매출하락과 디스트리뷰터의 이탈 등 이중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국계 기업들은 국내 제조업체들과의 제휴 등을 통한 현지화 전략에 나섰다.


롤러코스터 다단계시장
1997년 다단계판매 시장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할 수 있다. 1996년에는 뉴스킨, 렉솔 등 외국계 대형 다단계 업체들의 본격 진출이 시작됐고, 후반에는 진로그룹 등 대기업의 진출로 다단계 시장이 급속히 팽창했다. 연말에는 잠시 거품이 빠지며 재조정기를 지나더니 1997년 870억 원에서 시작한 업계의 월 매출액은 3월이 되면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7월에는 대기업의 연이은 부도사태로 주춤했다가 반등을 반복, 또 다시 IMF의 된서리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1997년의 다단계판매업계 총 매출액은 9,195억 원으로 전년대비 19.5% 증가했다.

총 매출 순위 10개사는 한국암웨이, SMK종합유통, 뉴스킨코리아, 앨트웰, 세모, 썬라이더코리아, 일영인터내셔날, STC인터내셔날, 하이리빙코리아, N.H.B.인터내셔날. 순이었다. 당시 매출 순위 상위 50개사가 매출액의 97%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120개사의 비중은 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상위 50개사 중에서 외국계 회사는 11개, 국내는 39개사였다.



두영준 기자endudwns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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