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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속에서 (2018-05-11 09:46)

혐오에 관한 뉴스가 쏟아지고 있는 요즘 미투 운동과 무고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매체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들이 고통을 받았노라 주장하고 또 실제로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볼수록 마음 속 한편이 답답하고 슬프기도 하며 때때로는 언짢기까지 하다. 설상가상으로 서로 헐뜯고 비난하고 비방해대기 일쑤인 댓글들이나 반응들은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한다.

혐오가 문제가 된 것은 비단 오늘날만의 문제는 아니다. 단적인 예로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의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인 사실이 혐오가 극단적으로 팽배해 사회에 만연하게 되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 알 수 있다. 그때, 아니 그 이전으로부터 혐오의 논리는 바뀌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격류에 휩쓸리듯 이성을 붙잡지 못하고 거대한 물결에 휩싸인 것 같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세태를 정리하자면 혐오사회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남성혐오와 여성혐오 두 종류의 부류로 볼 수 있는데 이들은 SNS 상에서, 또 현실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고 있다. 혐오가 그동안 없었는데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라는 관점에서는 SNS나 각종 인터넷을 활용한 매체의 발달이 이를 표출하는 광장을 만들어주면서 눈에 보이는 문제로 부상했다고 볼 수 있다.


<혐오사회>의 저자인 독일의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는 저서에서 혐오와 증오는 개인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 아닌 훈련되고 양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정한 이데올로기에 따라 집단적으로 미리 정해진 양식에 따라 범주화와 이미지를 통해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주장처럼 사회에서 혐오는 소위 ‘낙인’을 찍는 것으로 쉽게 생산이 된다. 쉽게 예를 들자면 나치즘 내에서의 홀로코스트는 동성애자, 유태인, 장애인 등을 ‘사회를 좀먹는 자’로 규정하고 탄압과 제재를 가했다. 남성혐오를 부추기는 사람들은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 내지 ‘여성 권익을 탄압하거나 억압을 방관한 자’로 규정하고 공격하며, 반대로 여성혐오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성을 ‘남성이 지고 있는 책임은 외면하고 권리만을 탐하는 사람’으로 본다.


사람들은 만들어진 하나의 이미지로 상대를 판단하고 그 이미지에 맞추어 사람들의 모습을 재단한다. 그 속에는 다양성은 없고 ‘우리’ 아니면 ‘너’ 밖에 없다. 낙인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사회에 혐오가 여기저기에 넘치게 되지는 않는다. 이 낙인을 재생산하고 유통할 때 혐오가 퍼지게 된다. 한국 괴담 중 어둑시니라는 요괴가 있는데 혐오는 마치 어둑시니와 같다. 어둑시니는 사람이 계속 바라보거나 올려다보면 볼수록 점점 커져 마지막에는 사람이 깔려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커지는 것을 내려다보면 볼수록 점점 작아져 종국에는 사라진다고 한다.


혐오를 마주하게 됐을 때 그에 대처하려 역으로 혐오를 이용해 대응하게 되면 오히려 혐오는 더욱 커지고 널리 퍼지게 된다. 그렇다고 혐오를 무시하는 것 역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혐오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구별하고 관찰할 때, 즉 내려 볼 때야 말로 혐오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되기 전에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타이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든다.


왜인지 모르게 무거운 주제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혐오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한 친구는 예전부터 혐오는 자신의 처지를 옆에 비슷한 형편에 있는 나와는 다른 사람의 탓으로 보도록 한다고 말했다. 본디 그 감정을 쏟아내야 할 마땅한 대상이 있음에도 그 창끝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 결국에는 서로를 찌르고 분열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결국 서로 제대로 마주보고 같음을 보고 ‘우리’가 되면 혐오는 끝이 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한국처럼 혐오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나라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로 뭉치는 것을 얼마나 자주 했는가. 탄압에 맞서고 민주주의를 되찾고 기본적인 권익을 찾기 위해 하나가 되어 싸워온 투쟁의 역사가 우리나라 역사 곳곳에 있다. 옛날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역시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구심력이 우리에게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까지 이성보다는 감성에 충실한 사람으로, 혐오의 물결에 휩쓸리기 쉬워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때가 부지기수다. 한 번 본 자극적인 이미지를 뇌리에서 지워내지 못해 선입견으로 서투른 판단을 할 때도 있다. 혐오에 대응하는 법을 체득하지 못해 머리로는 알더라도 몸이 먼저 달아올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면의 혐오를 키웠을 수도 있다. 그럴수록 두 눈을 뜨고 있는 그대로를 자세히 그리고 정확히 바라보아야한다는 반성을 하게 되는 목요일 오후, 언제쯤에야 우리는 우리를 뒤흔들고 있는 혐오라는 폭풍을 잠재울 수 있을지 생각하며 뜨거운 가슴을 다잡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앉아서 천천히 심호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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