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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하지만... (2018-04-13)

상경해서 일을 하게 됐을 때부터 정했던 것 중 하나가 있는데 바로 거제도에 있는 집에 가족을 보러 한 달에 한 번은 내려가는 것이다. 거의 우리나라 끝에서 끝을 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리를 가는 것은 무척 고된 일이겠지만 얼굴 비추는 게 효도가 된다면야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리라 싶어 결심했었다. 지금은 집에 내려갈 때마다 내게 <빽 투 더 퓨쳐>에 나오는 드로리안을 타고 막 서울에 올라와 미래의 나를 걱정하지 않고 결정을 내린 당시 나 자신의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물론 부모님을 뵙는 것은 좋은 일이고 이를 위해 몇 시간 동안 버스에 가방과 함께 꾸겨 타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보람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내가 집에 내려가기 싫은 이유는 교통편이나 시간이 아니라 다름 아닌 염소 때문이다. 냄새는 역하고 동공은 옆으로 째진 것이 기이한데다 털은 시꺼멓게 탄 숯 같이 검은 그 생물이 있는 한 결코 귀성이 즐겁지 않을 것이다. 염소를 싫어하는 것은 외모 때문은 아니지만 막상 싫어하게 되니 다 징그럽다.

저녁 전에는 몇 시간 동안 주변 공터에 풀을 뜯도록 풀어 놓는데 몇몇이 무리에서 나와 시야에서 사라지면 한동안 염소와 달리기 시합을 하면서 다시 무리로 돌려보내야 한다. 또 우리 집에서는 저녁마다 염소에게 생 나뭇잎을 먹이는데 나뭇잎만 따다가 여물통에 던져주는 평화로운 방법이 아니라 나무를 톱으로 벤 뒤 어깨에 이고 날라 탈것에 싣고 와서 우리에 던져준다.

결코 가벼운 노동이라 할 수 없는데다 몇 시간 동안 이리 뛰며 저리 뛰며 염소의 궁둥짝만 쫓아다니다 보면 부모님 얼굴보다 염소를 더 많이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지금은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와 비교해서 세는 것도 싫을 만큼 염소가 많이 있는데 계속 늘어나니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염소를 치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소 엉뚱한 발상이기도 하지만 헤라클레스, 다윗을 비롯해 오이디푸스,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와 레무스, 잔다르크 등 양치기 출신의 영웅이 많은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양을 치는 것보다 괴물과 싸우고 나라를 세우거나 구하는 게 더 나아 보였을 지도 모른다고 나의 고된 경험을 근거로 멋대로 상상해본다. 짐작하건데 이들은 나보다 더욱 힘들게 양을 쳤으리라. 늑대를 비롯한 맹수를 돌팔매질로 쫓아내야하고 도둑이 양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항상 집중해서 봐야하며 때로는 양들을 약탈해가려는 도적떼들과도 격하게 싸워야 했을 것이다. 성경에서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돌팔매로 사자나 곰 같은 맹수를 쫓아냈음을 말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평생 하루 온종일 맹수와 도적들을 경계하면서 살기보다는 3m가 넘는 거한을 한 번 쓰러뜨리고 장군으로 출세하는 것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후자를 골랐을 것이다.

막강한 경쟁자나 고달픈 환경과 같은 적절한 스트레스는 잠재력을 끌어올려준다고 한다. 이는 차가운 해역에서 자라는 청어를 싱싱한 상태로 운송하기 위해 천적인 메기를 넣었던 것에서 따온 ‘메기효과(Catfish effect)’라고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정작 모든 생물은 천적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리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메기효과가 그럴듯해 보이는 것도 사람들이 청어 수송에만 신경을 쓰지 잡아먹을 청어의 본래 수명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꼰대’는 스트레스나 고통이 주는 삶의 활력을 강조하며 이를 받아들이라고 종용한다. 이는 이로운 스트레스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그 실효성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음은 무시하고 강자의 억압을 합리화 하는 데만 집중한 결과가 아닐까. 양치기였던 영웅들의 말로를 생각해보자. 헤라클레스는 아내의 질투로 인해 독으로 고통스러워하다 승천했고 다윗은 부하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취해 주님의 노여움을 사 화목을 이루기까지 힘든 세월을 보냈다. 레무스 역시 로물루스와 로마를 세우는 과정에서 다툼으로 인해 친형제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며, 오이디푸스는 역경을 거처 왕이 됐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취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눈을 멀게 해 장님으로 생을 마감하게 됐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처럼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을까. 한때 베스트셀러로 거의 모든 서점의 진열장을 장식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제목 자체가 어느새 하나의 격언으로 자리 잡아 청춘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수단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해줄 수 있다. 그렇지만 강하게 살아나간다고 해서 꼭 삶이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심도 있게 고려해본 뒤에서야 스스로 지금 당면한 고통을 감내할지 여부를 생각해야한다. 무식하게 아프기만 한 것은 그냥 병이다.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주말이 점점 다가오는 목요일 오후, 이번에도 집에서 기르는 징글징글한 염소를 포함해서 어떻게 하면 나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것을 내 삶에서 제거해 나갈지 고민해본다.


 
신준호 기자shinister0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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