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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약용이 싫어요! (2018-02-02 09:50)

정약용은 1762년에 태어나 1836년까지 살다 간 조선시대의 실학자입니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서학에 연루됐다는 이유 등으로 18년에 걸쳐 전라남도 강진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했지요. 유배생활 중에 <목민심서>를 비롯한 500여 권의 책을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사농공상의 고정관념이 박혀 있어서 책을 쓴 사람이라면 무작정 알아주는 몹쓸 풍토가 있지요. 게나 고동이나 읽으나마나 쓰나마나 한 책들을 내는 까닭도 저자(著者)에 대한 로망 때문일 겁니다.

아주 개인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나는 정약용이라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가 국법을 어기고 천주교를 믿었다는 전과 때문도 아니고, 50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쓸 정도로 뛰어난 지성을 자랑한 데 대한 시기심 때문도 아닙니다.

그를 싫어하는 가장 큰 원인은 목민(牧民)이라는 갑(甲)의 사상 때문입니다. 목민이라는 말은 왕이나 원이 백성을 기른다는 말입니다. 과거 봉건시대에야 당연히 왕이 슈퍼 갑이었고, 그 아래로 정승 판서 그리고 고을의 수령들이 갑의 연대를 형성했을 테지요.

목민심서라는 정약용의 저작도 백성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일 겁니다. 정약용을 떠올릴 때 가장 기가 막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죄를 짓고 유배 간 주제에 죄 없이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을 기른다니요? 어린 나이에 과거 급제를 하는 바람에 뼛속까지 스며있을 엘리트 의식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1806년에 태어나 1873년까지 살았습니다. 정약용과 꼭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그는 <자유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서양 사람들도 ‘저서’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몰라도 어쨌든 그도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밀은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합니다.

비록 시대적으로는 같을지라도 사회적으로 지역적으로는 판이한 곳에서 살았을 그 두 사람을 비교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기는 합니다. 더욱이 조선이라는 나라가 완고하기 그지없는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목민’과 ‘자유’는 비교 대상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정약용이 자유론을 설파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마 10리도 못 가서 거열형을 받았거나 궁형에 처해졌을 겁니다. 물론 당시의 정약용으로서는 자유라는 말 자체를 몰랐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불민한 생각으로는 정약용이 거론한 목민이라는 전통은 지금까지도 꿋꿋이 살아남아 모든 공무원으로 하여금 백성을 길러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최근에 가상화폐를 두고 벼슬아치들이 벌이는 말잔치를 보노라면 목민의 폐단이 극에 달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당연히 정약용의 후예다운 발상이지요. 보시기에 흡족하지 않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존 스튜어트 밀의 후예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생각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말은 행동의 자유이기도 하지요. 지금은 영국도 한국도 자본주의를 신봉합니다. 그러나 영국의 수도 런던이 세계 최대의 금융허브인 반면 한국의 서울은 세계 최대의 규제의 본산입니다.

특히 다단계판매만을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사전영업을 빌미로 집회와 결사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제한하는 것이 다단계판매와 관련된 법률입니다. 법률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존경하는 목민관 스스로가 지어낸 규제도 차고 넘칩니다. 다단계판매기업의 자본금은 5억 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항도 위헌의 소지가 다분한데 그에 더해 그만한 금액을 예금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고 정약용의 후예들은 주장합니다. ‘짐이 곧 방판법’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올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다단계판매업계의 권력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나오고 서울시에서 나오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어떻게 정약용을 싫어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의 마이애미대학교 등지에서 철학 강의를 하는 마크 롤렌즈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은 법률이라는 것을 ‘강제(强制)’로 이해하기보다는 ‘제안(提案)’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당 규정을 어기더라도 즉각적으로 적발하고 처벌하기보다는 지켜보고 권유하고 설득하는 식으로 법을 집행한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살아보지 않아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것이 절반의 진실이라고 해도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자유론>에 입각한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그리고 행동의 자유를 인정하니까요. 우리에게 가해진 <목민심서>의 굴레는 언제쯤 벗겨질 수 있을까요? 생각하건대 우리가 입을 닫고 있는 한 그 굴레는 쉽사리 벗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는 아기에게 젖 물리고, 무는 개를 돌아보게 마련이라는 게 우리의 상식입니다. 봄은 오고 있건만 날이 갈수록 정약용이 싫어집니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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