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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위인인가 (2018-01-26 11:26)

이제 와서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어린 시절 아무생각 없이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흥얼대며 선생님께 배운 지식을 집에서 부모님께 자랑하고, 골목에 나와서 길 가던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은근히 피로한 적이 있다.

부모님이야 노래를 잘 부르는가는 둘째치고 잘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겠지만 이름 모를 행인에게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소음에 가까운 어리고 째진 목소리를 그저 어린이라는 이유로 참고 그냥 지나간 분들에게는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 때는 생각이 그렇게 깊지 않았던 나이였고 숫자도 한 번에 100단위를 넘게 잘 세지를 못했기 때문에 왜 100명의 위인이었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생이 되고 3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다 뜬금없이 친구와 100명의 위인들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시답지 않은 일이어서 그 얘기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 친구와 나는 ‘과연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 딱 100명일까 아닐까’를 두고 승부를 벌이게 됐다. 물론 여기에 3,000궁녀가 포함되진 않았다. 나는 노래가 짧으니 100명이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 친구는 그래도 100명의 위인인데 100명은 되지 않을까라고 추측했다. 길을 가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숫자를 셌으나 하굣길이 생각보다 짧아 결판을 내지는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결국 저 승부는 유야무야 됐지만 위인의 뜻도 모를 때 그냥 노래에 나오고 사람이름 같으면 세 버렸으니 그대로 계속 진행했으면 내가 패배했으리라 생각된다. 그 친구는 비겁하게 2절에 나오는 천축국이 세 글자니까 사람이라는 둥 사람이 아닌 것도 셌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 친구의 얼굴도 기억나질 않는다. 할 짓이 없던 수능 끝난 고3 때 갑자기 궁금해져 세어보려 해봐도 위인의 정의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아 확실히 계수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위인이 아닌 이완용까지 스리슬쩍 껴 있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노래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나오는 위인을 세고 싶은 마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위인을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내게 뛰어나고 훌륭하면 모두가 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사람도 위인에 가깝게 느껴지도록 한다. 이는 보통 사람도 어떤 면에서는 훌륭하고 뛰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인이 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을 필요도 없으며 역사 교과서에 실릴 필요도, 위인집 전집을 이루는 책 한 권에 자신의 얼굴이 박혀야 할 필요도 없다. 무엇이 뛰어나고 훌륭한 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나는 적어도 스스로 덜떨어지거나 시원찮다고 여기지 않는 이상 위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위인전의 단골 소재인 발명왕 에디슨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위인이 되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훌륭해야만 하는 지도 잘 모르겠다. 백열전구를 처음 발명한 것도 스코틀랜드의 발명가 보우먼 린제이였고 그것을 개량해 더 발전된 전구를 만든 것은 영국의 화학자 조셉 스완지였다.


에디슨은 일단 자신이 오래가는 전구의 발명에 성공했다고 밝히고 연구를 완성하지 못하자 스완의 아이디어를 도용해 선보였다. 소송까지 이어진 이 사건은 결국 에디슨이 스완을 돈으로 매수해 Edison & Swan United Electric Light Company이라는 합작회사를 차려 무마했다. 몇 년 후 에디슨은 저항력이 강한 탄소 필라멘트는 자신이 발명한 것이라며 스완에게 소송을 걸었고 승소해 ‘전구의 아버지’가 됐다. 에디슨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실험일지의 해당 부분을 찢기까지 했다는 것이 현대에 와서 밝혀졌지만 아직까지 그가 위대한 발명가라는 이미지는 남아있다.


도용을 하고도 현대에서는 ‘전구의 아버지’이자 ‘천재 발명가’로서 위인이라고 불리는 에디슨의 일화를 떠올리면 위인이 되려는 생각도 시들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미 평범한 사람들도 도덕적으로는 위인이라 불리는 사람보다 뛰어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위인이 될 것인가 아닌가를 정하는 것은 자신이 성취한 과업을 얼마나 세상에 떳떳하게 보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위인(偉人) 역시 범인(凡人)과 별로 차이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스스로 리더나 위인이 될 재목이 아니라고 매사에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이완용 같은 매국노나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지금 당장 힘들고 욕을 듣는다고 해서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잊고 불행한 선택을 하는 것 보다 앞날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알아봐 주리라는 희망과 적어도 자신은 떳떳하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위인이 된 것처럼 하루를 힘차게 살아나가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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