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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18년 미리보는 트렌드④> 거꾸로 가는 다단계 (2018-01-26)

온갖 규제에 경쟁력 상실

최저 임금 사회적 화두됐지만 업계는 여전히 수당상한선

대한민국의 다단계판매는 세상에서 가장 미개한 산업으로 전락하는 중이다. 다단계판매를 이야기할 때 늘 지탄의 대상이 되는 상위로의 쏠림현상이 심화되는 이면에는 35% 이상은 벌어갈 수 없도록 못 박은 방문판매법이 원인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상화폐와 갖가지 유사수신이 성행하고 있으나 현행법으로는 적절하게 제재할 수가 없는데다, 제재와 고발이 먹히더라도 법원의 온정적인 판결이 이어지면서 다단계판매업은 급속하게 경쟁력을 잃고 있다.

지금 전 세계적인 화두는 제4차 산업혁명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가상화폐 등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그저 이론에 불과했던 일들이 속속 현실로 나타나면서 세상은 가히 혁명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다단계판매업계의 현실은 여전히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아직도 많은 ‘물류’ 사업자들은 자동차 트렁크에 세제며 건강식품 따위를 가득 싣고 이집 저집 배달하기에 여념이 없다. 다단계판매원들은 그 누구의 지원도 없이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면서 배달을 하고 소비자를 만나 커피를 사고, 자신의 집을 열어 홈미팅 따위를 이어간다.


◇35%의 저주 

한때 다단계판매는 새로운 방식의 유통으로 각광받았다. 입소문을 내는 것만으로도 사업이 된다는 기발한 발상에 공감한 판매원들이 모여들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건너와 제품이 좋다는 소문과 돈이 된다는 소문에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흐른 지금 제품이 좋다는 소문은 여전하지만 돈이 된다는 소문은 잦아들었다.

30년 전 가장 앞섰던 ‘신유통’은 그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다단계판매만이 누구나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호도하면서 명맥을 유지한다. 지금은 굳이 다단계판매가 아니더라도 해외직구를 비롯한 유통사업과 유튜브,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한 1인 미디어를 통해 사업가의 길로 나서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휘발유다. 지금은 전기자동차도 등장했지만 여전히 대세는 휘발유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다. 특히 서울이 지금처럼 붐비게 된 원인도 돈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한때 다단계판매원의 수는 800만 명을 헤아렸다. 그들이 다단계판매시장으로 몰린 것도 돈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장으로 유입되는 인구보다 빠져나가는 인구가 더 많은 실정이다.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회원자격을 유지하는 업계의 관례를 감안한다면 실질적인 다단계판매원은 500만 명 내외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처럼 파장 분위기로 돌아선 것은 다단계판매원 유인을 목표로 내걸고 설립된 유사한 업체가 난립하기 때문이다. 수차례 보도한 바와 같이 가상화폐시장으로 옮겨간 것이 가장 큰 타격이라고 할 수 있다. 왜 판매원들은 가상화폐에 열광하는 것일까?

“돈이 되기 때문이죠. 가령 S사를 예로 들면 220만 원짜리 팩이 4개가 모여야 수당을 받을 수가 있어요. 금액으로 치면 880만 원인데 그래봤자 받을 수 있는 수당은 소실적 즉, 220만 원을 50% PV로 잡은 110만 원의 15%를 최대로 받아요. 20만 원이 채 안 되는 거지요. 그런데 880만 원을 가상화폐에 투자했을 때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벌 수가 있지요. 그러니 누가 다단계판매를 하겠어요? 같은 돈으로 가상화폐 채굴기에 투자하더라도 월 100만 원 정도는 꾸준히 받으니까 아예 게임이 안 돼요” S사에서 활동하다 가상화폐로 옮겨 간 판매원 P씨의 말이다.


◇법 지키는 놈만 매우 쳐라

모 업체의 임원은 “속수무책이죠.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어요. 가상화폐로 다단계사업을 하는 회사는 평균적으로 70% 가까이 수당을 풀어줘요. 거기에다 가상화폐의 가치가 상승하는 데 따른 이익도 있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1∼2%만 더 준다는 소문만 돌아도 공제조합에서 실사를 나오고 공정위에서 확인하려 들어요. 공제조합 밖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못 본척하면서 법을 지키겠다고 조합에 들어온 회사만 잡는 거죠”

실제로 35% 수당상한선의 적용대상은 한국에 본사를 두고 공제조합에 가입한 업체다. 해외에 본사를 둔 업체는 각종 해외행사에서 현금으로 35% 초과수당을 지급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모 업체는 가상화폐를 통해 가상화폐 업체들과 맞서고 있다. 직접 금전적인 혜택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가상화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판매원들을 묶어두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이 회사의 판매원들은 회사 또는 그룹장이 제공한 정보를 활용해 비교적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업체에서는 국내에서는 거래되지 않는 가상화폐를 제공한다. 국내에서 거래될 경우 35% 규정을 어겼다며 벌칙을 부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 차원에서 가상화폐 채굴기를 구매하는 사례도 있다. 모 업체는 지난해 상반기 채굴기 20여 대를 마련해 가상화폐를 채굴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연말부터 가격이 급등하면서 재미를 봤다. 이 회사의 대표는 “판매가 좀 저조하더라도 회사의 수입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면서 “채굴기를 통한 수입은 공제조합에 신고하지 않아도 되고, 특별히 포상해야 할 판매원에게는 전자지갑으로 가상화폐를 넣어주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기업 중의 일부는 보다 공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다단계판매업 라이선스를 구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모 업체는 자사의 ○○페이를 다단계판매와 접목시키는 방안 중의 하나로 영업이 부진한 업체를 대상으로 라이선스 양도 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영업망을 확장하는 데는 다단계조직만한 게 없다”면서 “우리가 개발한 전자화폐를 실생활에서 상용화하려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이 조직이 필수”라고 말한다.

일부 업체에서는 보상플랜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판매원 단속에 나서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후원매칭수당이다. 자신이 추천한 판매원이 받는 수당의 일정 부분을 수령하는 추천매칭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추천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하부의 수입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특정 직급을 달성하거나 일정 매출을 달성해야 지급하는 등의 조건이 달려 있어 실제로 매칭수입을 얻는 판매원은 소수에 불과했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조건들을 삭제하고 본인의 매출만 있으면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모 업체의 관계자는 “지금은 하루하루가 비상사태와 같다”면서 “보상플랜을 변경하자면 3개월 전에 신고해야 하지만 판매원이 다 빠져나간 후에 새 보상플랜을 시행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 일단 신고와 동시에 시행했다”고 말했다.


◇규제가 일이라고 생각하는 공무원이 문제

다단계판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널리 알려진 규제공화국이다. 이것은 과거 군사독재시절 무조건 ‘잡아 족치던’ 관습에서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규제를 통해 권력을 만끽하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윤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업계의 원성이 가장 자자한 것은 자본금 5억 원을 항상 현금으로 유지하라는 조항이다. 모 업체의 대표는 “창조경제의 기치가 드높던 박근혜 정권시절에 탄생한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창조적인 발상이다. 기껏 장사해서 공제조합에 돈 넣기도 빠듯한 신생업체들에게 통장에 5억 원이라는 거금을 꽂아두라는 생각은 과연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고 비난했다.

공제조합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 사람들은 업계의 누구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서 “업계의 현실을 보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규제만 남발하는 바람에 불법 업체에 달개를 달아주는 격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관계자 역시 “시장이 안정되면 관련 규제는 풀어주거나 완화해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면서 “책상 앞에 앉아서 실적만 내려고 하니까 각종 규제를 더 할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권영오 기자chmargaux@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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