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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無知)의 공포 (2017-11-10)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이 어디선가 검출된다는 뉴스들이 끊이지 않고 나와 화학물질이 들어갔다거나 제품 뒤 재료 설명에 알지 못하는 화학물질 이름이 보이면 의심부터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화학물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공포증까지 이어져 일명 ‘케미컬포비아’까지 낳았다.

속속들이 드러나는 유해 화학물질과 그 피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늦거나 잘못됐다는 목소리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더 거세고 커진 것 같다. 아마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언론에 드러나면서 고통 받던 피해자의 모습, 특히 어린 아이들이 입은 끔찍한 피해가 머리에 새겨지면서 내가 혹은 내 아이가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가 아닐까.

한 번이 아니라 수차례 반복된 피해는 소비자들이 이성적으로 화학물질에 대해 판단하는 데 큰 장해물이 되어 제조사들은 제품에 화학물질이 들어갔다고 밝히는 것을 꺼리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감추고 모르는 척 눈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살충제 계란 파동, 생리대 유해성 논란 등으로 인해 화학물질에 대한 두려움의 몸집을 키워나간 만큼 비판의 목소리도 커져만 갔다. 식약처는 그저 순간만을 모면하기 위해 졸책을 내놓았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엉성하고 불안감만을 조성하는 대응으로 보인다.

처음 살충제 계란 파동에 대해 식약처는 “국민이 평생 매일 2.6개씩 먹어도 건강에 큰 문제는 없다”고 밝히며 넘어가려했다. 안전에 직결된 만큼 문제가 없더라도 더 조사하고 언행에 있어서도 신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결국 식약처의 발표는 오히려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돋궜다.

이후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불거지자 식약처는 9월 28일 “인체위해성 우려 없는 수준”이라고 밝혔지만 조사방법과 대상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실제로 국정감사에서도 프탈레이트 3종이 대량 검출됐고 생산설비 등의 현장 확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검 결과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러한 대응은 여태까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손을 놓고 있다가 공론화가 되면 조사에 착수한다고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막상 들춰보면 아닌, 국민을 속이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를 알 길이 없는 소비자들은 무지(無知)에 놓이게 된다. 진실은 알 수 없고 막연한 지식만이 불안감을 키우며 결국에는 불신에 빠지고 불신은 더 큰 공포만을 가져온다.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 쉽게 공포를 느낀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눈을 감고 누가 더 멀리 그리고 오래 걸을 수 있는 지를 따져 누가 더 용감한지 내기를 했다. 친구 모두 평소 걸음과는 다르게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매우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레 발을 디뎠고 몇몇은 실눈을 뜨기도 했다. 나는 그런 친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차례가 와 눈을 감고 걸음을 내딛는 순간 휘청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계단을 헛디딘 듯한 불쾌한 느낌이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정전기가 오듯 몸속을 달렸다. 평소 사이가 별로였던 친구가 내발을 걸 것만 같았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몰라 벽에 부딪칠 것 같아 무서웠다. 그렇다고 친구들 앞에서 쪽팔리게 꼬리를 말고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눈을 떴다. 나는 몇 분정도 걸은 것 같은데 1분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단순히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식약처가 안전성 논란이 일 때마다 해온 것은 소비자들의 눈을 가리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소비자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일각에서는 계란번호에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표시하는 것과 생리대 전성분표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알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식약처가 정말로 국민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소비자의 눈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밝히기 위해 모든 노력을 들이지 않을까?

몇몇 사람들은 잔혹한 진실보다 선의의 거짓말을 좋아한다지만 선의의 거짓말로 포장해 사람들을 진실에서 멀어지게 해 무지한 상태에 머물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유해물질에 대해 식약처 문의를 했을 때 반응은 “소비자들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논란이 되는 물질이 확정되지 않았으니 그것은 답해주기 어렵고 아직 내부에서 조율 중인 사항이라 밝히는 것은 어렵다”였다. 내게는 이 말이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는 알려서 좋을 것이 없으니 나중으로 미루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우리는 아직까지 매일 먹는 것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른다.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다.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미혹된 감정, 무지로 인한 공포 등에서 벗어나면 진정한 행복과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알아서 좋을 것 없다’는 말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지금은 진실이 밝혀져 자리 잡아야 하는 시대다. 진실, 그리고 진실을 아는 것은 공포를 이기는 가장 좋은 무기다.
 

신준호 기자shinister0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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