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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교과서 (2017-08-25 11:28)

자기개발서나 에세이, 에세이 중에서도 자신의 인생을 풀어서 쓴 게 아닌 다른 사람 인생에 대해 쓴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세탁기를 사면 같이 딸려오는 제품 설명서처럼 단계별로, 상황별로 인생을 다 정리한 것 같아 언짢을 때도 있었다. 나나 다른 사람들의 인생이 공장에서 찍어낸 세탁기처럼 천편일률적으로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코 책이나 글쓴이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소개되는 방법이나 조언을 따르고 자신에게 맞는다면 좋은 것이다. 그저 나 같은 경우는 연달아서 나에게 전혀 맞지 않는 책을 고른 것 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한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나는 꽤나 자극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하면서 읽기 시작했었다. 책장을 덮자 ‘뭐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공감을 잘 못하는 것이 문제인가 싶어 다시 찬찬히 훑어봤다. 여러모로 상처받은 인생을 다독여주려는 노력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뿐이었다. 격렬한 감정도 없었고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것도 없었다. 잘 쓴 글이었다. 좋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나는 한동안 왜 청춘에 대해서 조언하거나 자기개발서 마냥 이럴 때는 이렇게 하라는 책이 잘 팔리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책의 저자가 나보다 인생 경험도 많고 여러모로 생각도 더 깊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 글에서 묻어나오는 느낌은 그가 멘토링의 대가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머릿속에서는 책에서 말하는 조언은 보통 실용성이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별로 끌리지가 않았다.


머리와 가슴 간의 괴리감이 꽤나 성가셨다. 그래서 다시 읽었다. 시험공부 때문에 여러 번 파헤쳐서 읽은 에세이 외에 3번 이상 곰곰이 생각하면서 읽은 것은 그 에세이가 유일할 것이다. 세 번이나 읽는 수고를 들였는데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면 기분이 상해서 불쏘시개로 쓸 생각까지 했다.


잠시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언을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어 경건하기까지 한 자세로 힘차게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완독 뒤 책꽂이에 꽂아 넣으며 내용을 반추했다. 보통은 그렇게 공들여서 느낌을 정리하는 일도 없었다. 언어를 고등교육 수준 이상으로 구사한 이래로 처음으로 독서의 고통을 느꼈다(참고로 두 번째는 우연히 찾은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였다). 숨이 격해지고 짜증이 밀려왔다.


그리곤 다시 그 가증스러운 책이 꽂힌 책장을 물끄러미 보다 한 귀퉁이에 습기 때문인지 쭈글쭈글해진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보였다. 중학생 때 처음 접했던 그 책은 이사할 때 파지 줍는 할머니에게 주어야 할 책 1호였다.


그 책이 나에게 야박한 평가를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렸던 나는 세계 제일의 부자가 소개한다는 권위에 끔뻑 죽어 빠르게 읽었다. 제 딴에는 거기서 나온 내용을 따라서 해본다고 시도했다. 그리고 책의 조언대로 생활하려면 따져야 하는 것도 많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다행히도 그 효과는 내 인간 관계를 순식간에 바꿨다. 꽤나 부정적으로. 친구 중 하나가 욕설을 섞어가며 진심으로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너 요즘 되게 이상하다. 뭐 숨기는 거 있냐?”


그 말이 머릿속에서 2.1채널 스피커가 내는 소리로 재생됐다. 그리곤 내가 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공감할 수 없는 지 깨달았다. 


좋은 책에 맞춰 산다고 해서 완벽한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책에 나온 멘토링을 감명 깊게 듣는다 하더라도 나를 둘러싼 세상풍파에 달관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근래에는 여러 에세이와 자기개발서가 베스트셀러로 많이 소개되고 있다. 여러 가지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다루는데, ‘못해도 괜찮아’, ‘한 번 사는 인생 즐기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이렇게 해야한다’ 등의 문구를 들이민다. 그 모습이 마치 누군가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다. 심지어 방향마저 다 제각각이다.


즐거운 인생, 자신이 원하는 인생, 더 나은 인생은 자신이 찾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이 자신의 인생은 오롯이 그 자신의 길이다. 어느 누구도 내 인생의 진로를 미리 지나가 길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누군가 책 소개에 ‘인생 교과서’라는 말을 쓴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요새 교과 과정을 맞춤형으로 뜯어 고쳐야한다거나 주입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바꿔야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영 틀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교과서가 어딘가에는 있겠지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서점 에세이 코너와 자기개발서 코너를 전전하는 목요일 오후, 아직까지 교과 과목조차 정하지 못한 낙제생이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내 삶을 나름대로 즐겁게 산다는데 누가 뭐라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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