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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매 (2017-07-21 00:00)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는 말이 있다. 미국 듀크대학교 연구팀은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준다는 사실을 연구해 발표했다. 그 연구 결과는 ‘영국 왕립학회보B’에 실렸는데, 그 기사를 읽고 전 세계 어디서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일찍 일어나는 것은 공통적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연구팀은 이에 대해 초기 인류가 맹수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진화한 행동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노년기에 찾아오는 불면증은 병이 아니라 고귀한 희생이라는 것이다.

이 ‘잠 못 드는 조부모 가설’이라 이름 붙여진 학설은 나이가 지긋한 여성이 직접 자식을 낳는 대신 손주들을 돌봐 집단에 도움을 준다는 ‘할머니 가설’과 비슷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늙었어도 사회나 집단에 공헌하고 싶다는 마음은 크다는 것이다.

그분들의 아름다운 마음가짐을 돕기에는 세상이 너무 삭막해져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자식들을 돕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한 분들도 많고, 일을 하고 싶다하더라도 계속되는 취업난에 자리를 찾지 못하는 분이 많다.

어르신들을 다시 생기가 돌게 하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많이 부족하지만 그분들이 어릴 적 우리를 도왔듯, 우리도 그분들이 노년을 활기차게 사시도록 손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전주에는 이와 비슷한 이유로 시작한 매우 특별한 빵집이 있다. 이제는 하나의 명물로 자리 잡은 ‘비빔밥 빵’을 파는 전주빵카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비빔밥 빵 안에는 팥이나 크림 소 대신 비빔밥 재료가 들어있다. 특이한 빵처럼 그 시작 역시 특이했다.

은퇴한 후 전주의 복지관을 다니던 60대 노인 4분이 있었는데, 소일거리가 없어 의기소침한 그분들을 복지관 관장이 돕고 싶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잘 만들 수 있는 빵을 개발하기 위해 비빔밥을 소로 쓴 것이다. 처음에는 채소의 수분 때문에 빵이 구워지지 않았고 속이 물렁해져 먹기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정을 전해들은 사회복지사와 제빵전문가들이 모여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다른 방식으로 구워 새롭게 탄생한 비빔빵은 어느새 명물로 자리 잡게 됐고 오른 매출만큼 전주 빵카페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과 사회적 취약계층도 적극적으로 고용했다. 키케로는 그의 저서 <노년에 관하여>에서 늙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다 스키피오처럼 위대한 승리를 회상하며 살 수는 없는 법이네. 또 다른 노년도 있다네. 조용하고 우아하게 보낸 부드러운 노년 말일세. 저술 활동을 하면서 여든하나에 세상을 떠난 플라톤의 노년이 그랬고, 아흔넷에 책을 쓰고 거의 5년을 더 산 이소크라테스의 노년도 그러했다네. 그의 스승인 고르기아스는 107세를 채우면서도 학구열이 식지 않았다지.”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시골에 내려가면 항상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상을 차리는 할머니를 보면 참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른 아침 달그락거리던 그릇 소리와 부엌에서 새어나오는 빛에 깨지만, 부스스한 눈으로 자는 아이들이 깨랴 조심스럽게 내딛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발끝을 보고서 안심하고 아침이 차려지기 전까지 다시 잠에 들곤 했다. 할머니는 어머니로 사는 것을, 아이를 안고 일을 하던 젊었을 적 그 청춘을 아직도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종종걸음으로 여기저기 분주하게 일하시던 모습은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함을 그대로 담은 모습이라고 여겨질 만큼 항상 조용한 힘이 넘치셨다. 놀기도 잘 노셔서 항상 가족이 모이면 화투판이나 윷판을 벌이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의외로 크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굳은살이 박힌 쭈글쭈글한 손가락은 고목의 나뭇가지 같았다.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내게 할머니는 항상 무언가를 주시고 싶어 하셨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집마다 다르겠지만 아마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녀들의 삶이 어머니로서의 삶이었고, 항상 베푸는 삶이었기 때문이라고 감히 짐작한다. 그때와 같이 항상 무언가를 주고자 하는 것은 그분들의 삶이 황혼이나 저녁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애착과 열정만 있다면 늦은 밤에 잠 못 드는 것이 대수로 여기지 않고, 하루건너 하루를 젊을 적처럼 부지런히 즐기면서 사는 것. 그 모습을 담기에는 아직 젊지만 언젠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던 일,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었던 일을 모두 시작하기에 너무 늙은 나이는 없다.

 

신준호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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