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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싫어하는 두 번째 이야기- 군대 (2017-06-23 00:00)

여자가 남자와 있을 때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 세 가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첫 번째가 축구 이야기, 두 번째는 군대 이야기, 마지막으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싫어한다고 한다. 때문에 군 복무를 마친 남자가 여자를 만나 데이트할 때 점수를 따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이야기는 대화 주제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이번엔 남달랐던 내 군대 얘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평균보다는 조금 늦은 나이 23세에 군 입대를 했었다. 입대하는 날 고생한다는 생각보다 초등생 시절 겪었던 극기훈련을 26개월간 받는다는 생각을 갖고 편안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 보충대로 향했다. 또 같은 날 같은 곳으로 입대하는 대학 동기 녀석이 있어 든든하기만 했다. 먼저 군에 갔던 동기 2명이 마침 휴가여서 우리를 마중 나왔고, 밤새 내린 눈이 수북이 쌓여 있던 보충대 연병장에서 다른 훈련병들이 눈물의 이별을 고하고 있을 때 우리 무리는 신나게 눈싸움을 벌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 잠시 허기도 채울 겸 보충대 PX를 방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었던 우리는 이제 잠시 고요한 적막감에 순간 잊고 있었던 연병장 집합을 떠올리고 부리나케 뛰어 나갔다. 불안감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그렇게 북적이던 사람들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고 텅 빈 연병장에는 싸늘한 겨울바람만이 불고 있었다.

갈팡질팡하던 동기와 함께 뒤늦게 찾아간 한 건물 뒤편에서는 당일 같이 입대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사회물을 빼기 위한 얼차려를 받고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황당한 에피소드를 갖고 입대한 우리는 3일간의 보충대 생활을 끝으로 헤어졌고 각자 배정받은 훈련대대로 이동했다. 나는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25사단 훈련소에 입소했다. 6주간 기본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깊게 눌러쓴 철모에 매사 각이 잡혀 있는 교관이 멋있게 느껴졌다.

당시 교관이 되면 1기수(6주)의 훈련병 훈련을 마친 후 4박 5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는 매력이 있었다. 이런 매력에 끌려 나를 포함한 약 30명의 훈련병이 교관 시험에 응시했다. 당시 교관이 되면 먼저 자대배치를 받아 일병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해야 했다. 총검술을 비롯해 기본 군사테스트에 통과한 후 중대장, 대대장, 사단장 면접까지 약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교관으로 뽑힌 나는 6개월 후면 교관으로 훈련병을 교육하고 휴가를 가질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자대배치를 받았다.

하지만 그 꿈은 자대배치를 받고 3개월 만에 깨져버렸다. 내가 배치된 부대는 곧 전방 GOP로 부대 이동을 할 예정이었고 부족한 인원으로 인해 계속해서 신병을 수급하고 다른 대대와도 합병을 하는 중이었다. 때문에 이제 막 입대한 신병이었던 나를 다시 훈련대대로 돌려 보낼리 만무했다. 자대배치 3개월 만에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인 GOP로 이동해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1년간 하게 됐다. 일과는 이랬다.

해질 무렵 실탄과 수류탄을 챙겨 2인 1조로 철책을 앞에 두고 있는 초소에 들어가 경계근무를 서고 아침에 해가 뜰 무렵 소초로 돌아와 세면과 조식 후 취침에 들어간다. 야간 근무는 전 인원이 3번 같이 근무를 하고 전반야와 후반야로 나뉘어 절반씩 야간 근무를 섰다. 밤에 잠을 잘 수 있지만 3∼4시간 후에 일어나 근무교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푹 잘 수 없었고, 전방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일기상황이 되면 전원 철야 경계를 해야 했다.

GOP에서 지내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 바로 황금마차 소식이었다. 전방에서는 소대별 생활을 하기 때문에 PX가 따로 없다. 그래서 노란색 트럭이 각종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싣고 소초를 오가는데 군에서는 이 트럭을 황금마차라고 불렀다. 황금마차는 오전에 오가기 때문에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1주일 치 주전부리를 사다 관물대(개인 사물함)에 쟁여놓곤 했다.

또 하나는 월급이 후방 부대보다는 두 배 가까이 높았다. 당시 이등병이 1만 원이 조금 안되는 월급을 받았는데 전방에서는 매일 생명수당 약 300원이 더해져 두 배 가까이 됐다. 정기휴가도 14박 15일간 주어졌다. 전방에 있는 동안 면회, 외출, 외박을 할 수 없는 장병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더 긴 기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마지막으로 GOP 경계근무 기간 동안에는 연간 정해져 있는 각종 훈련에서 제외됐다.

정확히 1년의 기간을 GOP에서 보내고 후방 부대로 이동한 후 밀렸던 훈련이 매월 예약되어 있었지만 그해 여름 엄청난 폭우로 인해 유격장이 쓸려 내려가고 부대 인근 지역이 침수돼 11월까지 대민지원 활동만 했다. 다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군 생활에서 받았던 가장 큰 훈련은 제대하기 전 마지막 겨울 있었던 3박 4일간의 혹한기 훈련이 전부다.

개인적으로 군 생활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처음 입대할 때부터 가졌던 마음가짐이 ‘행복 끝, 고생 시작’이라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접한다는 설렘’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도전’이라는 마음가짐은 극한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다.

 

김선호 기자gys_ted@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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