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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시루 안에서

  • (2017-06-02 00:00)

집 근처 마트에 가면 야채코너 구석, 990원에 한 봉지나 되는 콩나물을 살 수 있다. 싼 가격에 무침부터 시작해 콩나물국, 콩나물밥, 콩나물조림, 김칫국 등 여러 음식에 쓸 수 있는 엄청난 가성비를 자랑하는 콩나물. 한 봉지 사 놓으면 왠지 조금씩은 남아 냉장고 구석에서 반쯤 썩은 채로 발견되곤 한다.

그렇게 썩어가는 콩나물을 보고 있노라면 80원 정도를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것 같아 찝찝했다. 극도로 감수성이 예민했던 때는 노란 콩나물 대가리가 고개 숙인 모습은 어쩐지 쉽게 버려질 자신의 운명에 좌절하는 모습 같아 안쓰럽다고 느껴 한 주 동안은 버리기 전에 다 먹겠다는 의지로 콩나물 요리만 했을 때도 있었다. 내게 콩나물처럼 감정이입이 잘 되는 야채도 드물었다. 생긴 것부터 머리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눈에 띄게 붙어 있기 때문이다.

만원이 된 버스 안을 언제부턴지는 모르지만 콩나물시루라고 부르는데 정말로 그 꼴이다. 특히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다들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이 콩나물시루라는 단어의 설득력을 더해가기만 한다. 일주일 동안 적어도 열 번은 콩나물시루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내게 콩나물이란 더없이 친근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빠르게 생기고 빠르게 없어지는 콩나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콩나물 인간 중 하나이기 때문이리라.

한번은 이런 얘기를 어머니께 하자 듣고는 한동안 크게 웃기만 하셨다. 이렇게 부모님을 웃기는 아들도 없을 거라는 자부심이 생길 정도로 웃으셨다. 다행이도 내가 부끄러워질 때까지 웃지는 않으셨다.

고개 숙인 콩나물을 보노라면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나눈 대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나와 아버지는 같이 집으로 걸어 돌아가고 있었고 아버지가 나를 놀리면 내가 대꾸하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됐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갑자기 말씀하셨다. “걸을 때에는 허리와 가슴을 쭉 펴고 등을 곧게 하고 걸어라.”

나는 별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듯이 진지하게 지적해서 약간 언짢게 대꾸했다. “그렇게 걷는 게 좋다는 걸 아니까 지적을 안 해 주셔도 돼요.” 아버지께서는 애송이를 보듯 날 보시며 물어보셨다. “그러면 걸으면서 시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그건 모른다고 했다.

지휘자같이 깔끔한 동작으로 검지를 위로 올려 눈동자 앞에서부터 길 앞으로 한 번에 쭉 뻗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시선은 전방 15∼20m, 아래로 15도가 좋다!” 손가락에 시선이 집중돼 저절로 시선이 움직였다. 그리고는 왜 그런지 여쭈었다. 그 대답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앞에 개똥이 있나 없나 한번 보고, 길바닥에 채여 걸릴만한 게 있는지도 보고, 그러다가 하늘도 한번 보기 편하려면 그렇게 걷는게 좋다.”

당시 사춘기는 아니었지만 중학생이었던 나는 내심 쓸모없는 오기가 발동해서 아버지 한 번 이겨보겠다는 마음으로 반박했다.

“그러면 아예 바닥만 보다 걷다가 한 번씩 고개를 들면 되죠. 마찬가지로 개똥을 밟을 일도 없고, 넘어질 리도 없고, 가끔씩 하늘도 볼 수 있잖아요.”

털털하게 웃으시면서 말하시길, “어떻게 걷든 길 위에서 한 번은 넘어지는데, 그렇게 걸으면 발이 걸릴 때 넘어지는 걸로 안 끝나고 크게 엎어져. 실패하는 게 무서워서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면 작은 실패로 끝날 일이 더 큰 실패로 이어지기 마련이야. 이런 걸 삶의 지혜라고 부르지.”

아버지가 그 말을 끝내고 아직 애송이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으면 더 감명 깊게 받아들였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확실히 걷는 걸 고쳐보려 노력했고, 아버지의 삶의 지혜(?)를 몸으로 배울 기회도 있었다. 걸을 때는 제법 똑바로 걷는다고 자부한다. 그래도 여전히 콩나물에 감정이입이 잘 되고 스스로 전철 안에서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는 내 모습을 보면 아직 콩나물인가 보다.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쯤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면 크게 실패하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다. 고개 숙인 채로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도 된다. 콩나물로 사는 게 어디 슬픈 일이랴. 콩나물 인간이 되기 싫다면 그것도 좋다. 인생에서 큰 실패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이고 좌절하는 것이 뭐 어떤가. 다들 한번쯤은 숙이고 다니는데, 콩나물시루 속에서는 나만 숙이는 게 아니라 같이 고개 숙이며 자라는 곳이니 자신이 싱싱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오랫동안 바깥에 관심이 없어 구석으로 파고들어 썩어버린 콩나물은 되지 말아야지 않겠는가. 계속 좌절해 고개를 숙이고만 있는 것은 문제다. 사무엘 베케트는 그의 작품 <최악을 향하여>에 이렇게 적었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콩나물시루 안에서 두세 번 고개를 힘겹게 치켜들어 잠깐 사색을 가져 한 순간 만큼은 전전긍긍 골머리를 싸매는 무거운 머리를 죄인의 무게추처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아픈 목을 편하게 해주자.

 

신준호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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