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돋보기

팩트로도 때리지 말라 (2017-04-21 00:00)

4월 17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언론사들도 저마다 검증 시스템을 속속 내놓고 있다. 실시간 팩트체크 시스템부터 데이터 분석, 토론 검증단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후보자들을 검증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최근 후보 간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해지는 만큼 가짜뉴스를 가려내 유권자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한 팩트체크가 필수 과정으로 떠오르고 있다.

3년째 뉴스룸에서 팩트체크를 해온 JTBC의 경우, 이번 대선에는 기존에 해오던 검증뿐만 아니라, 5명의 기자들로 구성된 별도의 대선기획단을 꾸려 ‘실시간 팩트체크’ 시스템을 마련했다. 시민들은 언제든지 카카오톡을 통해 후보들의 발언과 관련된 궁금한 점을 제보하고, 일대일로 답변을 받을 수 있다. 중앙일보도 군사안보, 통일, 복지, 환경 등에서 전문 경력을 쌓은 6∼7명의 선임 기자들이 대선 TV토론회를 실시간으로 팩트체크하기 시작했다. SBS 8뉴스의 팩트체크 코너 ‘사실은’도 한 달 만에 500여 건 가까운 제보를 받을 정도로 선전하고 있다. 한겨레도 팩트체크 시스템 ‘진짜판별기(짜판)’를 출범하며 대선 주자 검증에 나섰다. 짜판의 콘텐츠는 각 부서에서 현장기자들이 제공하고 디지털팀에서 편집과 유통을 맡고 있다. 또 SNS에서 화제가 되는 이슈는 콘텐츠기획팀에서 아이템 회의를 거쳐 짜판으로 내보내게 된다.

이렇게 팩트체크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진실을 갈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가끔씩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눈에 불을 켜고 거짓을 찾아 폭로하며 사실만을 밝히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팩트폭력, 팩트폭격기, 팩트리어트, 팩트체크… 이렇게 팩트라는 말이 많이, 그리고 광범위하게 쓰이는 때는 없었다고 본다.

이 팩트폭력이라는 말의 뿌리는 인터넷 상의 밈(meme, 인터넷에 재미있는 말을 적어 넣어 다시 포스팅한 사진이나 그림) 중에 “Stop Using Fact”라는 밈이 유행을 탄 것이 국내 사이트로 유입되면서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팩트는 타인을 사실로 공격하고 비방하는데 쓰이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뼈있는 비판으로 눈이 번쩍 뜨이게 해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저 불쾌감만을 던져준다.

불필요하게 팩트를 휘둘러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모습은 좋지 않다. 예를 들어, 오래전 한국 만화영화인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한 장면은 팩트가 극단적으로 사용됐을 때 어떻게 ‘폭력’이 되는 지 보여준다. 작중 캐릭터 ‘이기철’이 어린 시절에 짝꿍과 싸우는 장면은 웃어넘기기도 힘들다.
 


기철: 아버지도 없는 주제에!

짝꿍: 뭐엇?!

짝꿍: 우리 아버지는 미국에 가셨어! 곧 돌아오실거라고!

기철: 너네 아버지는 미국에 가신게 아니라 하늘나라에 가신 거겠지!



정황상 시청자는 기철의 말이 사실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기철이 그 말을 결코 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된 사람은 팩트의 부정적인 모습을 마주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는 사실의 강력함이 양날의 검처럼 자신을 겨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심지어 법적으로도 팩트폭력을 잘못하면 자칫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 판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되어있다. ‘공연히’라는 말은 통설과 판례에 의하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팩트폭력 같은 경우 사실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죄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경우에 따라 고소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팩트폭력은 유머로 쓰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길을 가다 특이한 헬스장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그 광고에는 “아직도 뚱뚱하고 마르고 아프고 못생기셨나요? 이제는 못생기기만 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뚱뚱하고 마르고 아프고 못생기지는 않았기에 참신한 광고라고 생각했다. 또, 만일 광고 문구대로 생겼더라도 어지간히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 아닌 이상 불쾌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을 찾고 비교하는 것에서만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할 때가 됐다. 조그만 일탈로 유머로 사용하는 것도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자각 없이 무분별하게 장난감을 바닥에 쏟아 이리저리 내던지는 것처럼 팩트를 던져대는 것은 교양 없으며 덜 성숙한 자세이다. 나이프를 휘두르고 다니면 흉기이지만 테이블 위에서 매너 있게 고기를 썰면 교양 있는 사람이 된다.

팩트는 팩트일 뿐이다. 팩트가 일부 담겨 있는 주장이라고 전부 옳을 수 없다. 이는 데이비드 흄의 사실명제에서 당위명제를 연역할 수 없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예컨대 ‘여자는 아기를 낳는다’가 사실인 사실명제라고 해도 ‘여자는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지닌 주장이 옳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순간의 통쾌함을 위해 잘못된 방식으로 팩트를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 되어야 한다.

 

신준호 기자mknews@mknews.co.kr

※ 저작권자 ⓒ 한국마케팅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목록으로

포토뉴스 더보기

해외뉴스 더보기

식약신문

사설/칼럼 더보기

다이렉트셀링

만평 더보기

업계동정 더보기

세모다 스튜디오

세모다 스튜디오 이곳을 클릭하면 더 많은 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의 날씨

booked.net
+27
°
C
+27°
+22°
서울특별시
목요일, 10
7일 예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