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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사랑

  • (2016-08-12 00:00)

육중한 피로감이 그녀의 몸을 짓눌렀다. 며칠째 계속되는 불면증이 피로의 무게감을 키운 탓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좁은 평수의 그녀의 집 안 구석구석에는 구매했던 물품들이 쌓여져 있어 어수선하게 보이게 했다. 최근에는 빚 독촉에 시달리는 전화를 받아야 했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처지인지라 고민한 쌓여 갔다. 하루하루 그녀는 말라갔다.

그녀는 믿었던 사람에게도, 불신을 당한 지 오래돼 사람을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예 휴대 전화기를 꺼놓았으며, 집 전화기 코드도 빼놨다. 이제는 자기 전에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심각해진 상태가 왔다는 것을 그녀는 체감했다.

벼룩시장에 있는 일자리를 살펴보다 허기를 느껴 동네 편의점을 찾았다. 컵라면과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서 챙기곤 돌아오는 무렵, 소낙비가 쏟아졌다.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한 그녀는 발길을 서둘러 집으로 도착했다. 빗물에 맞은 몸을 씻기 위해 불이 꺼진 어두운 화장실로 그대로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었다. 틀어진 물소리와 함께 밖에 쏟아진 빗소리가 겹쳐 묘하면서도 우울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대충 물로 씻어 내린 얼굴을 들어 거울을 봤다. 비춰진 그녀의 얼굴이 낯설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빗방울처럼 흘러내리는 물이 화장실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네온사인의 빨간 사이드 불빛과 부딪혀 핏물처럼 보여 지게 해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날의 기억을 그녀는 떠올렸다. 후덥지근하고 습한 오후의 어느 날이었다. 몇 년 만에 연락이 끊겼던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갔던 날이었다. 친구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기억했던 친구는 그다지 상냥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낭랑한 목소리로 밝게 인사를 건네는 친구가 싫지만은 않았다. 친구는 누군가와 동행했는데, 처음 보는 남자였다. 멀끔한 차림새를 한 그 남자의 인상은 꽤 준수해 호감을 가지게 했다. 무엇보다 남자는 신사적이었다. 생각보다 그녀와 나이 차는 있었지만, 처음 보는 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래전 알던 사람처럼 따뜻하게 대했다.

친구와 남자는 어떻게 알던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알던 사이 같지는 않아 보였다. 회사에서 만났다고 했다.

남자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며 친구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딱히 만나는 남자친구가 없었다는 이유로 아마도 소개팅을 주선한 게 아닌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남자의 직업은 소설가이며, 부업으로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친구는 갑자기 이야기를 하다말고, 일이 생겼다며 자리를 떴고, 그녀와 남자 단 둘이 남게 되었다. 서먹한 기운이 감돌자, 남자가 분위기를 살린답시고 그녀에게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예쁘다고 칭찬의 말을 건넸다. 그녀는 그가 다소 엉뚱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 웃었다. 두 사람은 이것을 빌미로 서로 친밀감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취미, 성향 등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서적 교감이 일치함에 따라 두 사람 간의 사이를 좁혀지게 했다. 이 후에도 두어 번 더 남자와 자연스레 만나게 되었고, 암묵적인 동의하에 손을 잡게 되었으며, 가을에 잘 익은 감처럼 무르익은 연인사이가 되었다.

여느 다른 연인이 그러한 것처럼 두 사람은 사랑을 속삭였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남자는 어느 날 그녀를 찾아와 자신의 심각한 사정에 대해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함께 사업을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고, 순순히 믿어주는 그녀를 데리고 한 회사를 소개시켜주겠다며 데리고 갔다. 그 곳의 풍경은 다소 그녀에게는 낯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있었는데, 그들은 무언가에 대한 설명을 파트너로부터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그녀도 남자로부터 설명을 듣게 되었다. 자신은 이 회사의 사업에 뛰어 든 지 1년 되었으며, 현재 꽤 많은 수익을 거두고 있노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자신의 밑으로 사업을 하게 되면 엄청난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녀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믿었다. 그녀는 그가 말하는 데로 했고, 그가 달라는 것도 아낌없이 줬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는 연락을 차츰 안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에게 차가운 사람이 되어갔다. 결국 소리 없이 떠난 남자의 빈자리에는 허무함만이 남았다. 그녀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통장은 비워졌고, 일자리도 잃었다.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캄캄한 상황에도 그녀는 남자와의 다정했던 시간들을 생각했다. 어긋난 사랑이었을까. 휴대폰만 자꾸 만지작거렸다. 참 로맨틱 하지 않은 자신의 사랑에 대해 인정하기 싫었다. 너무 냉정한 현실을 깨닫곤 그녀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문혜원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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