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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향해 쏜 화살

  • (2016-07-22 00:00)

대학교에 3학년이 되던 해에 통학 문제로 학교 내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게 됐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버스를 타면 40분 정도의 거리였다. 정말 가까운 거리지만 그놈의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배차 간격이 긴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버스의 크기가 몹시 작았다. 그 작은 크기 때문에 버스는 항상 과부하상태였다. 아마 저 깊숙한 곳,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엉켜있는 소심한 성격의 친구가 있었다면 그는 종점까지 갈 판이었다. 일반 버스의 반 토막 내지의 그 짤막한 버스가 내가 학교로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작은 크기 탓에 사람이 몇 명 타지도 못해 그냥 보내기 일쑤였고, 2년 내내 골칫거리였다. 어찌어찌 두 해를 버텼지만 결국은 기숙사에서 살기로 작정했다.


내가 살 기숙사는 한 층에 10개의 방이 있는 4층짜리 건물이었다. 설렘을 가득 실은 마음으로 기숙사의 방을 배정받기 위해 기숙사 동장을 찾아갔다. 그는 은근슬쩍 나를 위아래 흩더니 장딴지가 굵고 튼튼하다고 마음먹었는지 4층을 배정해줬다. 좁은 버스를 탔을 때의 그 숨 막힘에서 벗어난 나는 어떤 조건도 “OK”였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

드디어 기숙사에서의 첫날밤. 베개는 내가 집에서 벴던 베개가 맞는지, 짐을 옮기던 중 이태리 베개 장인이 찾아와 내 베개를 교묘히 바꿔치기 한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푹신푹신했다. 아침 공기는 어찌나 그리 청아한지 통학의 노이로제에서 벗어난 여유가 무척이나 달콤했다.

기숙사에서 강의실까지의 거리는 3분 남짓이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학교까지 이렇게 가까운 항로가 있었다니?!” 강의를 들을 때에도 귀에 귀이개가 들어오는 것보다 더 잘 들어왔다. 참으로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넉 달… 기숙사에서 보낸 시간은 물 흐르듯 했다.

그리고 문제의 2학기가 찾아왔다. 언제부터인가 강의실까지 거리가 가까운 것이 오히려 독이 됐는지 지각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편안함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었다. 힘들게 통학했던 때에는 적어도 지각을 한 적은 없었다. 그 당시 대학생에게 지각이란 지각변동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출석은 누구나 지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기 때문에 학점의 흥망성쇠를 논하기 쉬운 지표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앞으로 생활습관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2학기가 시작되기 전 기숙사에서 살게 된 것을 자축해 강의를 무려 8개나 신청을 하는 오만 방자함을 보였는데 지각은 지각대로하고 강의는 강의대로 많고, 고립무원이 따로 없었다.

이런 불행에 무뎌져 일주일 내내 강의만 듣던 어느 날, 강의 하나가 우연찮게 휴강이 돼 모처럼 기숙사에서 쉬기로 마음먹었다. 기숙사로 돌아온 뒤, 엉덩이만 겨우 들어갈 법한 좁디좁은 의자에 앉아 지각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생각에 생각을 더한 결과, 두 가지로 나누어 나름대로 결론을 냈다. 그것은 계기와 시기였다.

지각을 하게 된 계기는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부터였다. 기숙사에서의 편안함이 결국 내 안에 잠들어있던 게으름을 깨웠다. 그리고 그 시기가 고작 6개월 뒤였다. 통조림도 몇 년을 두고 먹는데 나는 6개월 밖에 못 갔다.


반성의 시간은 그렇게 끝났지만 중요한 것은 해결책이었다. 의자에 앉아 한숨만 내쉬다가 결국 그 한숨에 떠밀려 아침에 개다 만 이부자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생각을 할수록 귀찮은 마음이 들어 얼렁뚱땅 넘어가고는 했다.


“태양을 향해 쏜 화살은 버드나무를 향해 쏜 화살보다 멀리 간다” 대학시절 우연히 제기동역 화장실 3사로쯤에서 봤던 문구다. 태양을 쳐다보면서 화살을 쏘려면 눈이 부시지만, 버드나무를 향해 쏜 것 보다는 멀리 간다는, 과정이 힘들면 결과물은 좋다는 의미다.

원래 그 화장실은 낙서가 많았다. 종교전쟁을 방불케 하는 낙서가 대부분이었지만, 아직까지 그 문구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 제법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가끔 제기동역을 지나칠 때 일부러 화장실에 들러본다. 지금은 “낙서금지”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지만, 어린이에게 훈육을 위한 ‘생각하는 의자’가 있듯이 그곳도(배뇨의 자유가 인정된 곳이다.) 내게 그런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문득,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량한 성적표 탓인지, 저 문구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각하는 습관을 버리게 됐다. 그렇게 무사히 2학기를 마쳤던 것 같다.

두영준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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