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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의 샤우팅 (2016-04-25 00:00)

어느 집단이나 계급이 있다. 회사를 예로 들면 옥새를 쥐고 있는 큰형님, 그를 추종하는 아우들, 그리고 형님들의 부름을 받고 어디에선가 뛰어오고 있을 비운의 주인공 막내가 있다.

 

한창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 이 드라마는 계급사회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 많은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공감을 이끌어 냈다. 특히 이런 장르에는 직장상사에게 서류 세례를 받는 막내의 모습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상사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막내는 밖으로 나와 눈을 지그시 감고, 상사에게 도리어 서류 세례를 퍼붓는 상상으로 울분을 삼킨다.

 

이들은 인턴이라는 족쇄의 무게에 자주 넘어지기도 한다. 이 때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항상 자신의 턱밑까지 차오르는 서류 덩어리들을 들고 있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서류 덩어리가 마치 막내가 져야 할 숙명 혹은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과중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지는 이 시대의 막내들. 누구나 막내라는 타이틀을 짊어졌던 기억이 있기에 그 장면을 본 뒤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것은 풍족한 봉급도, 업무능력에 뛰어남을 보이는 것도 아닐 터. 그들은 다만 인간적으로, 그리고 함께 갈 직장 동료로서 대우 받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에는 전국팔도에서 모인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성깔들을 보여준다. 막내들은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직장 상사들의 기분 탓에 의붓어미 눈치 보듯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퇴근 후에도 인산인해를 이루는 지하철 안에서 또 다른 고비를 맞는다. 사람들로 가득해 발 디딜 틈 없이 옴짝달싹 못하고 그 자리에 결박되곤 한다. 가끔은 직장인들의 뒤섞인 점심 냄새사이로 은연히 내일 점심 메뉴를 골라보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스산함을 느낀다. 푹 꺼진 어깨 사이로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현관문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신발을 내팽개치고 된장에 풋고추 박히듯 침대로 몸을 내다 꽂는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달콤한 상상을 한다. 황홀함도 잠시, 격앙된 몽상사이로 어렴풋이 아침을 알리는 핸드폰의 미세한 소음이 들려온다.

 

어김없이 새로운 오늘이 그들을 맞는다. 부리나케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기 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결심했다는 듯 집밖을 나선다. 회사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마치 세렝게티 초원을 휘젓고 다니는 물소 떼들처럼 오늘의 할 일들이 몰려든다. 온갖 육두문자가 혀를 발판 삼아 비상을 시작할 찰나에 거울 앞에서의 다짐을 떠올리며 이내 곧 벙어리가 되어버린다.

 

녹초가 된 막내들은 가끔 어른이 되길 두려워했던 소싯적이라는 보석함을 꺼내 보곤 한다. 과거를 더듬어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조심스레 뒤돌아본다. 복잡한 푸념에 얽히고설키다 그래도 오뉴월 댑싸리 밑의 개 팔자 보다는 낫다며 소박한 결론을 내린다.

 

​사회로 융화된다는 것은 굉장히 고달픈 과정이다. 특히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이 시대의 막내들에게는 뼛속까지 아리다. 이럴 때일수록 머무를 수 있는 여유를, 혹은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길이 뻗어 있다고 하여 무작정 걷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싶다. 차라리 제자리에 머물러 내가 진정 고대했던 목적지를 떠올려 보는 것이 낫겠다.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가라는 것이아니라, 그 돌다리를 건너가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떠올려 봤으면 한다.

 

너무 멀리 왔다며, 되돌아가기에는 늦었다며 스스로 출구를 봉쇄해버리는 어리석음을 보이 지는 말자. 오늘이 있기까지 수십 년을 투자했다며 둘러댈 필요도 없다. 지나온 세월은 당장내일의 거름이 될 수도, 일 년 뒤의 거름이 될 수도 있다. 잘못된 결정으로 후회를 일삼는 날도 결국은 또 다른 어느 날의 해답이 되곤 한다.

 

진부한 말들은 진부하기 때문에 진리일 때가 있다. 사람살이를 함부로 더듬어볼 수도 없지 만 그저 동틀 무렵, 예고 없이 찾아온 소나기처럼 마음 한편을 쿡쿡 찌르는 미세한 울림이 되었으면 한다. 장마철의 종잡을 수 없는 하늘도 결국은 개기 마련이다. 변화의 기미조차 없는 내일에 좌 절하지 않고 뜻한 바를 모두 이룰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하며 이곳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본다.


두영준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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