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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 때문에 웃고, 울고 (2016-04-08 00:00)

  얼마 전 후배기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먼저 연락 하는 일을 불편해 하는 나로서는 그 친구의 전화가 정말 반가웠다. 함께 사내에서 수다도 떨고, 취재도 같이하면서 친해졌던 후배였던지라 오랜만에 온 안부인사가 고맙기만 했다. 후배의 새 직장이 강남 근처라기에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본 그 친구는 얼굴이 조금 수척해 보이긴 했지만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승진도 했다며 자랑도 했고, 사귀는 남자친구와 잘 돼 결혼도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여전히 기자 일을 하느냐고 물었고, 후배는 뜻밖의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기 무섭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구비해 온 서류와 설명을 하기 위한 카탈로그 등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보자 그 친구가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지 직감이 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업이었다.

  후배는 고객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각종 포인트를 쌓아 여행, 정기검진, 상품 등을 준다는 것이었다. 후배가 다니는 회사의 회원이 되려면 월 5만9,000원∼12만 원 중 택해 회원비를 내야 한다고 했다. 우선 12개월 동안 내면 회원 카드가 나오고, 이것으로 각 종 다양한 이벤트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혹시 신종 다단계판매 회사가 아닐까 의심은 했지만, 그냥 이야기를 대충 들어주는 쪽으로 하기로 했다.

  낯선 후배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에 ‘회원이 될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그 이후로 다시는 후배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후배를 이해하려고 했지만, 연락을 한 목적이 다른데 있다는 데에서 실망감과 서운함이 들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다단계 영업이 발달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다단계 영업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인 ‘정’이 꼽힌다. 특히 나이가 어린 사회초년생,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다단계 영업에 쉽게 빠져든다. 대체로 지인의 소개로 들어가게 되지만, 나중에 불법인 줄 알았다 한들 쉽게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다단계 영업에 첫 발을 내딛었던 28살 이 모양은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하게 됐다. 불법인걸 알고는 있었지만 친구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친한 친구가 어쨌든 함께 소속되어 있고, 자신도 다른 친한 친구에게 소개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의리 때문이라도 ‘책임을 져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불법다단계 회사에서 나온 지 6개월 되었다는 최 모 씨는 예전에 대학교 동기 모임을 가졌고 그곳에서 만난 첫사랑과 다시 대면하게 됐다. 그녀는 그에게 먼저 연락을 했고, 둘은 다시 옛날처럼 데이트도 했다. 얼마 후, 그녀는 네트워크마케팅에 대해 물었고, 장황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실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지만, 믿는 척하며 함께 다단계판매 영업에 뛰어들었다.

  3개월 쯤 지났을 때,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녀의 모습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느껴졌다. 현실을 직시한 그는 불법다단계영업을 하는 동안 돈도, 사랑도, 친구도, 모두 잃었다며 한탄해 했다. 이처럼 정에 호소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인을 상대로 한 사기나 보험영업 등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다단계영업에 들어서는 이유 중 ‘정’도 있지만 조직에 있는 중심인물들의 화려한 언변, 카리스마 등이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오면서 감정적인 ‘묻지마’ 신뢰감을 조성한다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이런 이상한 신뢰감은 곧 조직 간의 친분 관계를 형성하도록 한다.

  심리를 연구하는 한 교수는 “우리나라의 정서인 정을 이용해 지인이나 이웃을 상대로 한 불법 영업행위나 사기 등이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어떤 행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권유하는 것보다 아는 사람이 권유하는 것이 더 조심스러운 점이 현실이다”라며 “냉정한 시선으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사람간의 정과 신뢰는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도 없을 뿐더러 한번 잃으면 돌이킬 수 없다. 때문에 무엇보다 신중해야 하는 것이 대인관계인 것이다.

  최근 들어 ‘한국의 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과거부터 한국의 고유정서인 ‘정’은 현대에 들어 교묘하게 변질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 고유의 정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본래의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타인을 배려하고 서로 간의 믿음을 조성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우선돼야 한다.


문혜원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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