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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오의 구구절절 | 모나비코리아 최형욱&문태옥 로얄블랙다이아몬드

“네트워크 비즈니스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업을 해야 한다.

계모임 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

  • (2015-03-13 00:00)

 좀 뭣한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은 모나비코리아가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 놀라워하는 게 사실이다. 한국시장 진출 첫 달에 7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기염을 토했으나 수많은 군소 그룹들이 난립한 데다, 나봉룡 사장이 급작스레 작고하면서 찾아온 위기를 타개하지 못했다. 몰려들었던 수많은 판매원들이 떠났고, 떠나간 판매원들은 모나비코리아의 몰락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모나비코리아는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해에는 천신만고 끝에 흑자전환을 이뤄냈고, 중국시장 오픈을 앞두고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고 있다. 철수 직전까지 몰렸던 이 회사는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을까?
 *(최)최형욱, (문)문태옥



 -모나비 이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
 (최) 매나테크 사업을 했다. 그 전에는 암웨이를 했고. 

 -요즘 많이 저조한 것 같다.
 (최) 알고 있겠지만 처음에 반짝한 이후 사람들이 다 빠져나갔다. 40명 정도 남았었다. 그 인원으로 다시 시작해서 작년에 겨우 적자에서 벗어났다. 빠져나갔다기보다는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왜 함께 떠나지 않았나, 위기감을 느꼈을 것 아닌가?
 (최) 이 사업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사업이다. 사람들이 모두 떠났던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룹도 많았고 잘 난 사람들도 많아서 그게 힘들었다. 시스템 부재 현상도 심각했고.


 -암웨이에서 매나테크로 옮기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암웨이의 정신무장은 유명하지 않나?
 (최) 10년 간 암웨이를 했다. 한계에 부딪쳤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매나테크 이야기를 듣고 적극 검토했다.


 -암웨이에서는 다이아몬드였나?
 (최) 다이아몬드도 못 됐다. 에메랄드였다.


 -10년 해서 에메랄드였다고?
 (문) 파운더스 에메랄드였으니까 약한 다이아몬드보다는 수입도 더 좋았고 조직도 탄탄했다. 

 (최) 우리 그룹은 약했었다. 비즈니스를 몰랐다. 비즈니스를 한 월드와이드 그룹은 살아남고, 우리 그룹은 그렇지 못했다. 덱스트 예거·로버트 기요사키 등이 방문했을 때 내가 총감독을 맡아서 행사를 치르기도 했지만.

 매나테크로 옮겨오면서 사업이 궤도에 진입했다. 산하에 다이아몬드만 20조 정도 있었으니까. 우리의 기반은 암웨이다. 거기에서 성공할 수도 있었지만 리더들 간의 반목이 좀 있었다. 그 때는 그걸 몰랐다. 매나테크와 모나비를 하면서 상위 직급에 오니까 그게 보이더라.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욕심내면 안 된다.

 (문) 모나비에서 우리는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반목이 생겼고 결국 깨지게 된 거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한국시장에서 3∼4위는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최) 모든 것에는 과정이 있다. 유니시티 같은 경우는 얼마나 오랫동안 고전했나. 우리보다 더 고생했지. 우리는 4년 만에 흑자 전환이 됐으니까 운이 좋은 편이다.


 -매나테크에서 모나비로 올 때도 매나테크에 문제가 있을 때였나?
 (최)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정지원 지사장이 그대로 계셨더라면 우리는 못 빠져나왔을 것이다. 정지원 지사장이 나가고 나서 하워드 씨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딜레마에 빠져 있기도 했고. 돈이 안 됐다.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그림이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은 다르다.


 -매나테크가 돈이 안 되나?
 (최) 내가 볼 때는 어느 업체를 막론하고 다들 딜레마로 갖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실제로 암웨이의 억대 연봉자가 몇 명이나 되겠나?


 -밖에다 얘기하는 것과 본인이 고민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큰 것 같더라.
 (최) 밖에다 대고 얘기하는 것은 뻥이 많지.


 -딜레마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제안을 받아 모나비로 옮겼다는 말인가?
 (최) 딜레마가 아니라 대안이 없었다. 혼자 선택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통째로 왔다. 조직이 움직이자면 명분이 없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리더십이 상당한 모양이다. 조직이 통째로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최) 통째로 넘어오기는 왔는데 바이너리에 대해 이해를 못했다. 매나테크도 바이너리가 아니라 리더십 게임이다. 그런데 바이너리는 그게 아니다. 급속하게 돈이 되는 반면에 리더십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그러면서 조직이 무너졌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왜 안 달아 주냐는 둥.


 -한 줄만 하라는 말을 안 했던 모양이다.
 (최) (웃음)한 줄만 한다는 게 말이 되나? 암웨이는 여섯 줄을 해야 되는데. 매나테크도 최소한 세 줄을 해야 한다. 본인이 두 줄을 한다는 생각만 가지면 끝나는데.

 여기까지 오기는 왔는데 우리의 터전이었던 대구지역을 다 잃어버렸다. 오해가 있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새 판 짜자고. 사실 네트워크는 제대로 하는 사람 몇 명만 있으면 끝난다.


 -지금 매출은 어느 정도 되나?
 (최) 작년에 150억원 정도 했다. 올해는 한 300억원은 해야지. 그리고 중국이 4월에 열린다. 이미 허가는 떨어졌다. 작업을 좀 해야지. 중국은 네트워크가 허용되는 나라가 아니니까 거기에 잘 맞춰서 사업을 해야한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제품은 들어가서 인정을 받았다. 중국은 대부분의 음식이 기름지다. 한 달에 4인 가족이 기름 한 말을 쓴다더라. 황사도 심해서 쉰 살만 넘어가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 그냥 단순히 과일을 먹는 것과 19가지 과일을 과학적으로 블랜딩해 인체에 적합하도록 만든 제품과는 다르다.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다. 2020년까지는 성장 할 거라고 본다. 최근 들어서는 젊은 층들도 많이 들어오고 있고. 약사 등의 전문직 종사자들도 관심을 갖고 있다.


 -어느 지역이 잘 되나?
 (문) 부산 마산 등 영남 지역이 잘 된다. 원래 네트워크는 서울이 가장 나중에 되는 경향이 있다.

 (최) 우리는 건실하게 하려고 한다. 우리는 매나테크를 할 때 ‘환자 마케팅’에 질렸다. 그래서 우리는 환자 마케팅을 안 한다. 건강한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컨셉트다.  질병으로 전환되기 전에 건강을 유지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다. 모나비를 선택한 이유 중에는 환자 마케팅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도 있었다.


 -다 무너졌을 때 다른 것 하자는 유혹은 없었나?
 (최) 그런 것은 없었다. 우리는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리더도 아니고, 일단 선택을 한 이상은 끝까지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네트워크 비즈니스의 시작이 암웨이였다는 게 정말 다행인 것 같다.
 (최) 그렇지. 우리는 1995년에 암웨이를 시작했다. 어느덧 네트워크를 시작한 지 20년이 됐다.


 -네트워크 비즈니스는 한 번 떨어지면 다시 일으키기가 힘들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최) 훌륭한 리더들이 연결되면서 믿고 신뢰하게 된 것이 가장 큰 힘이 됐다. 여기에다 우리 마음을 모았다. 작년 3월에는 ‘크레이지 목표’라는 걸 운용했다. 평상시보다 10배의 효과가 났다. 100명의 인원이 그렇게 했다. 전 세계가 놀랐다. 처음에는 미국에서도 베팅이라고 생각하고 반품 들어올 걸로 예상했다고 하더라.

 (문) 그렇지만 반품은 평소 수준에 그쳤다. 모나비 제품의 특징이 반품도 없고 재고도 없다는 것이다.


 -주스는 따서 마시면 그만이니까?
 (최) 일반 회사의 리더들 집에 가보면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문) 우리는 한 달 분량을 하루만에 다 마신다.

 (최) 매일 한 병씩 두 달만 마셔보면 몸의 변화를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다.

 (문)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보통 사람은 아까워서 그렇게는 못 마신다.
 (최) 건강이 안 좋은 분들은 많이 마시는 게 좋다.


 -이 사업을 하기 전에 개인사업을 했었나?
 (문) 암웨이 만나기 전에는 직장 생활을 했었다. 암웨이를 하는 과정에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최) 안 되니까. 중국을 대상으로 사업을 했었다.


 -원래 중국 통이었다는 말인가?
 (최) 중국 통은 아니고 우연한 기회에 중국에 액세서리를 보냈는데 그게 실패했다. 다 떨어 먹었지.


 -암웨이를 하기 위해 사업을 했다는 게 말이 되나?
 (최) 암웨이를 하기 위해서 사업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생계가 안 되니까 했던 거다. 자금력이 안 돼서 실패했다. 내가 아는 길이었다면 성공했을 수도 있는데, 내가 길을 모르니까 수업료가 많이 들었다.

 (문) 사업은 길을 알아도 돈 없으면 안 된다. 네트워크 사업과 일반 사업은 전혀 다른 분야다. 직장 생활하다가 암웨이를 했고, 2년 간 암웨이를 한 후에 전업을 했는데 생계가 안 됐다. 고민을 하던 중에 사업을 시작했는데 네트워크 방식으로 하는 바람에 더 어려웠다. 사업을 하다가 안 되면 그만둬야 하는데, 될 듯 될 듯 하는 바람에 그만 두지를 못했다. 그래서 가진 것 다 날리고 빚만 남았다. 지금도 그 빚을 갚고 있다.


 -그래도 모나비를 만났으니 다행인가?
 (최) 그나마 모나비 덕분에 빚을 갚고 있으니까. 매나테크에서도 적은 수입은 아니었다. 모나비로 넘어오던 시점에 연봉이 약 2억원 정도였다. 매나테크는 크게 돈 들 일은 없다. 그걸로 아이들 교육도 시켰다. 그렇지만 모나비로 넘어오면서 돈 버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지.

 오픈 하자마자 한 주에 1500∼2000만원 들어왔다. 게임 끝났다고 생각했다.

 (문) 샴페인을 터뜨렸는데 너무 일찍 터뜨린 게 됐다.

 (최) 바로 급전직하해서 헤매다가 로얄블랙다이아몬드가 됐다.


 -지금은 얼마나 벌어서 어떻게 쓰나? 
 (문) 로얄블랙다이아몬드를 유지하면 더블이 될 텐데 유지를 못 하니까 월 7000∼8000만원 정도.


 -그것만해도 암웨이 다이아몬드 연봉보다 낫겠다.
 (최) 그것 받아서 파트너들 BMW승용차도 사준다. 이번에도 2대 사줬다.


 -그룹에서 뽑아준 건가?
 (문) 개인적으로 해준 거다. 지금까지 16대 렌트 해줬다. 일정 직급 이상 되면 혜택을 주는데 한 달에 1500만원 정도 든다.

 (최) 기본으로 BMW를 뽑아주면 자신들이 더 보태서 더 좋은 차를 타기도 한다.


 -진짜 멋진 스폰서다.
 (최) 보니까 네트워크에서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는 것 같더라.


 -암웨이를 시작할 때는 어떤 꿈을 꾸고 있었나?
 (최) 직장 생활할 때는 원래 앞이 안 보이지 않나. 그때의 꿈은 그냥 돈 문제 해결하는 거였다. 그러다가 암웨이를 만나면서 조금만 노력하면 뭔가 될 것 같은 가능성이 보였다. 그래서 출발을 했는데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 또 하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더라. 거기에서 빠져나와 다른 걸 선택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지금의 내 꿈은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는 거다. 핀을 떠나서 생활이 돼야 한다. 네트워크를 하면서 생활이 되려면 최소한 억대 연봉은 받아야 한다. 부업자는 관계없지만 전업자는 억대 연봉이 안 되면 힘들다.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적어도 한 달에 200∼3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그러자면 모나비코리아의 매출이 최소한 1천억원대는 넘어서야 한다.


 -어렸을 때 꿈은 뭐였나?
 (최) 잘 먹고 잘 사는 것(웃음).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꿈조차 꿀 수 없었다. 옆에 부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돈에 팔촌까지 다 훑어봐도 제일 성공한 사람이 경찰서장 한 사람밖에 없었다. 꿈을 꾸려면 롤모델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냥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못 했던 거지. 그래서 결혼을 하는 것과 동시에 꿈을 포기하게 됐다.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아이들 키워야지. 그래서 암웨이가 내 인생의 한 분기점이 된 거다. 암웨이에서 많이 배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업계에서는 지금 모나비 사업이 될까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지금 모나비의 비전은 무엇인가?
 (최) 지금이 우리에게는 비전이다. 시장의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청년실업을 흡수할 만한 곳이 없다. 우리는 지난 4년간 고생을 했다. 지금은 고생하는 기간이 끝나고 성장기에 들어섰고 때마침 중국시장도 열렸다. 그리고 사업자들이 모두 함께 하려는 마음가짐이 돼 있다. 제품력이나 보상플랜 등은 다른 어떤 회사들보다 낫다.

 (문) 초창기에 굉장히 많은 붐을 탔지만 리더들의 팀워크라든가 시스템이 없었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시스템이 뭐 필요하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결국은 그것 없이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고, 원점으로 돌아와서 시스템을 정비하게 된 거다. 그 이후에 들어온 사람들이 퍼플다이아몬드가 되고 화이트다이아몬드가 됐다. 네트워크 경험이라고는 없는 약사가 2년만에 블랙다이아몬드가 됐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비가 됐다는 거다. 지금 들어오는 사람들이 가장 혜택 받는 사람이다.

 또 하나는 모나비코리아가 흑자 전환하면서 철수 설도 쏙 들어갔다. 4년 동안 하면서 그런 부분에 고민이 아주 많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회사가 철수를 해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이제는 우리 사업자만 잘 하면 된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가 사업에 매진해야 한다.

 (최) 우리의 소망은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떠나는 일이 없도록 무대를 완벽하게 정비해주는 것이다.


 -네트워크 사업을 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을 때와 가장 기뻤을 때는?
 (문) 암웨이는 힘든 줄 모르고 했다. 가장 기뻤을 때는 암웨이에서 SP 직급을 달성했을 때였다.

 (최) 기쁘기는 뭐 기뻐?(웃음) 나는 사람들이 제 자리 잡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흐뭇하다. 네트워크 비즈니스는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서로가 끌고 밀고 하면서 성장해 가는 거다. 꽉 짜여 있으면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가 없다. 유니시티도 그렇게 해서 성장한 거 아니겠나?


 -돈을 많이 벌수록 행복한가?
 (최) 돈 벌면 행복하지. 대신 쓸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있고.

 (문) 남편 생각은 궤도에 오를 때까지 수입의 50%는 사업에 재투자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모나비 사업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 사업으로 봐야지.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다. 계모임 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사업을 안 해본 사람들은 사업으로 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 풀어서 말해달라.
 (문)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내 것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이 시키는 것만 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사업을 시작하고도 뭘 해야 할지 모른다. 미팅도 오라고 해야 오고. 그러면 안 된다.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공부도 내가 알아서 해야 하고.

 모나비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면 모나비에 대해서, 네트워크 비즈니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스스로 공부해 박사가 돼야 한다. 그리고 시스템에 접목시키면 된다. 자발적 의지만 있다면 시스템이 성공으로 데리고 간다.

 (최) 내가 볼 때 모나비의 최고 성공자는 아직 배출되지 않았다. 미래의 모나비는 누가 이끌어갈지 아무도 모른다.

 (문) 우리는 그 미래와 연결하는 하나의 징검다리일 뿐이다.    
 


 
권영오 기자chmargaux@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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