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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오의 구구절절 | 메리케이코리아 조선화 내셔널 세일즈 디렉터(NSD)

메리케이는 행복한 비즈니스

  • (2015-02-24 00:00)

 메리케이코리아(대표이사 노재홍)의 열 세 번 째 내셔널 세일즈 디렉터(NSD)가 탄생했다. 대전을 중심으로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선화 씨가 그 주인공. 지난 2005년 메리케이 사업을 시작한 지 꼭 10년만이다. 조선화 NSD는 사업 시작 당시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으나 메리케이 사업을 통해 제기에 성공했다. 그는 과거의 가난과, 중고 자동차를 선물해준 남동생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힘겨웠지만 아름다웠던 조선화 NSD의 분투기이다.


 -메리케이 사업을 시작할 당시의 상황은 어땠나? 의류 매장과 음식점을 경영했다면 비교적 여유가 있었을 것 아닌가?

 아니다. 너무 힘들었다. 남편이 주식에 손을 대는 바람에 어려워졌다.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으면서 사채까지 쓰는 상황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에 메리케이를 만났다.


 -운명 같은 만남이다.

 기회가 두번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자존감도 바닥이었고 사람들이 나를 아는 척만 해도 서글프고 눈물부터 났다.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10년 전에?

 나이 50이 되던 무렵이었다.


 -메리케이 사업은 누가 소개했나? 소개를 받았다고 해서 선뜻 달려들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메리케이코리아 세 번째 내셔널 세일즈 디렉터인 윤홍순 NSD로부터 이 사업을 전해 들었다. 내 생각만으로 판단해서 무시하고,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올 때마다 귀찮게 하니까. 그래도 윤홍순 NSD가 열심히 사업을 해서 많은 수입을 올린다는 것과 ‘핑크카’를 타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하다가 결정을 했나?

 2년여 동안 만나지 않다가 길에서 우연히 핑크카를 탄 그를 봤다. 함께 커피숍으로 들어간 것이 메리케이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런데 그 때는 제품을 주문할 돈이 없었다. 단 돈 100만원도 아쉽던 시기였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첫 주문을 할 때의 심정은 어땠나?

 교육을 통해서 메리케이의 문화와 가치와 비전을 깨닫는 것에서 사업이 시작된다. 판매는 자신이 없었다. 피부도 안 좋았고.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화장품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교육을 통해서 큰 비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나의 잠재력을 끄집어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작할 당시 이미 희망을 갖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교육을 받은 지 사흘째 되던 날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흘렀다. 메리케이 사업의 비전을 본 것이다. 4∼5년 간 회피하고,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윤홍순
NSD에게 굉장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렵지는 않았나?

 어떻게 어렵지 않았겠나. 무슨 일이든 대가는 치러야 하는 것이고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오십에 일을 시작했고 너무나 열악한 상황이었으므로 그냥 창립자 메리 케이 애시 여사의 ‘할 수 있다’는 말을 믿었다.


 -어린 시절은 어땠나? 똑똑했을 것 같다.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통솔력은 있었다.


 -그게 도움이 됐나?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됐다. 우리 사업은 리더가 되는 일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한 방향을 바라볼 수 있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함께 이끌고 가야한다. 어렸을 때 반장 부반장을 하기 위해서도 친구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지 않나. 어떻게 해야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지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많이 도움이 됐다.


 -사업 경험도 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그렇다. 한 자리에서 음식점을 10년 넘게 했다. 음식점이라는 게 주인은 운영만 하는 것이고 일은 직원들이 한다. 그 직원들에게 다른 업소와 차별화 된 방법으로 힘을 주고 인정을 해줬다. 그것이 메리케이에서도 큰 도움이 됐다.


 -금전적 수입 외에 자랑할 만한 메리케이의 장점은 어떤 게 있을까?

 내가 자동차를 탈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보지 못 했다. 나는 자동차도 없이 사업을 시작을 했다. 당시에 내 형편을 보다 못한 남동생이 중고 자동차를 한 대 사서 선물을 해줬다. 100만원도 안 되는 자동차였다. 에어컨도 없어서 달려야 바람이 들어오는 자동차였다. 고물이기는 했어도 정말로 고마웠다. 동생이 “영업하는 사람이 자동차도 없이 어떻게 하냐”며 선물해준 것이다.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그때 마음속으로 가족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자동차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라웠다. 일을 그다지 잘 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내게 자동차를 준다는 것인지 어리둥절했다.


 -메리케이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만의 일이었나?

 2년이 조금 안 된 시점이었다. 그때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부터 사업이 급물살을 탔다. 거기까지가 워밍업이었던 셈이다. 작은 것이지만 성취하고 나니 자신감도 더 생기고 확신도 더욱 확고해졌다. 수입도 많이 늘어났고.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메리케이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메리케이를 하기 전과 후는 어떻게 달라졌나?

 많이 달라졌다. 생활도 달라졌지만 나의 인성, 습관, 마인드가 완전히 달라졌다. 메리케이를 하기 전의 나는 부정적이었고 고집스러웠다. 나만의 생각에 갇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위를 돌아볼 줄도 알고,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도 알게 됐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기는 하다.


 -식구들도 좋아했겠다.

 내가 변하니까 남편도 180도로 변했다. 예전에는 남편을 원망하고 남편에게 모든 화살을 쏘아댔다. 많은 사람들을 이끌면서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기보다 내가 먼저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른 사람은 결코 변화시킬 수가 없다. 내가 변하니까 그들도 변하더라.

 지금은 남편이 많은 부분을 책임져준다.


 -얼마나 벌어서 어떻게 쓰나?

 메리케이 사업을 시작하고 2년이 지난 시점에 연봉 1억원을 넘겼다. 이제 NSD가 됐으니 내가 노력하면 훨씬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NSD라고 하더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서 수입은 천차만별이다.


 -그렇다면 식당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은 모두 해소가 된 것인가?

 빚이 엄청났다. 길거리에 나앉을 만큼 힘들었다. 빚 정리하고 아파트 마련했다. 나 자신으로 봐서는 엄청난 발전이다. 요즘 정말 돈 벌기 어려운데, 내가 이룬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딸은 모두 장성했나?

 큰아이는 대학 졸업했고 둘째는 고등학생이다.


 -아이들이 메리케이를 하겠다고 한다면?

 대환영이다.


 -엄마가 메리케이 사업을 하는데 대해서 불만은 없나?

 불만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 회사에는 스타컨설턴트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3개월마다 실적에 따라 작은 선물을 주는 시스템이 있다. 가족들이 필요한 것을 항상 의논하면서 달성해왔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그때부터 엄마의 일을 좋아했다. 지금은 화장품도 실컷 쓸 수 있어서 아주 좋아한다.


 -여기에 와서 메리 케이 애시 여사를 알게 된 것인가?

 그렇다. 메리 케이 애시 여사의 <열정은 기적을 낳는다>라는 자서전이 있다. 이 사업을 하기 전에도 읽었었는데 좋은 회사이기는 하지만 내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해보니까, 할만 하던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메리케이를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다. 여태까지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파트너가 많다보면 하다가 그만 두는 사람도 있을 것 아닌가.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동기부여를 주나?

 함께 마음 아파할 때도 많다. 강의를 통해서도 1대1 미팅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힘을 주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돈이 될 수 있도록 현장에 동행해서 함께 일을 해준다. 함께 부딪치다보면 그들에게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여성인지라 감정적인 기복도 심하다. 어제까지는 긍정적이었다가 오늘 돌아서는 사람도 많고. 그런 감정의 변화들을 세심하게 읽어내려고 노력하고 대화를 많이 하기도 한다.


 -남자 파트너도 있나?

 많지는 않지만 간혹 있다.


 -그들은 어떻게 후원 하나?

 대체로 남자들은 여성들에 비해 인내심이 부족하다. 메리케이는 미팅과 교육에만 집중해도 회사와 관련된 지식은 쌓을 수가 있다. 노하우는 경험에서 나오게 마련인데 남자들은 몇 번만 해보면 다 안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만 극복한다면 얼마든지 사업을 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순수한 사람들이 성공확률이 높다. 선배 NSD들도 순수하고 우직한 분들이 많다.


 -어렸을 때 꿈은?

 판·검사. 그리고 개성파 탤런트가 되고 싶었다.


 -지금은 어떤 꿈을 꾸고 있나?

 이 일을 통해서 많은 여성들에게 꿈이 되고 싶다. 힘이 닿는 한 사회를 돌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리더를 만드는 사업이지만 세일즈도 간과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노하우가 있다면?

 신제품이 나오면 내가 반드시 써 본다. 그 체험이 바로 사업이 되는 것이다. 우리 메리케이에는 스킨케어 클래스라는 고객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이 스킨케어 클래스를 많이 개최했던 것이 내 성장의 비결이라고 본다. 많은 여성들에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루에 너댓번 하고 나면 입에서 단내가 날 때도 있다.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나?

 10년 간 메리케이를 하면서 2년 간 투병을 했다.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오랫동안 받았다. 나는 메리케이가 있었기 때문에 좀 더 빨리 회복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있다는 걸 그때 느꼈다. 가족들도 응원해줬고 회사와 동료들도 한마음으로 응원해줬다. 빨리 일어나서 그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 나로 인해 만들어진 내 그룹의 식구들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들어오는 적지 않은 액수의 커미션도 새로운 동기부여가 됐다.  


 -암에 걸려 누워있으면 의지가 꺾이지 않나?

 나는 의지가 꺾인 적이 없다. 누워 있으면서도 사업을 전달했다. 그럴수록 메리케이가 더욱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궁합이 잘 맞는 회사인 모양이다.

 궁합이 잘 맞는 게 아니라 좋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완치 후 필드에 다시 나갔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항암 치료를 하면서도 미팅에 빠진 적이 없다. 화장실에 가서 토하면서도 뒤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다. 내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될 거라고 믿었다. 가족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 일을 겪으면서 남편도 아내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 같고. 암을 이겨낸 지 4년 됐는데 보통 5년이 돼야 완치됐다고 하니까 아직 좀 남았다.


 -메리케이에서는 커리어의 끝까지 온 셈인데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부터의 꿈이 더 크다. 그동안 나를 믿고 따라와준 사람들을 나보다 더 큰 리더로 만들고 싶다.


 -가족 중에도 같이 하는 사람이 있나?

 조카가 부업으로 하고 있다. 다들 메리케이 제품의 매니아다.


 -다른 사람들에게 메리케이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면?

 눈앞의 이익만 좇는 사람에게 메리케이는 어울리지 않는 회사다. 판매만으로도 수입이 되지만 단 시간의 욕심만으로 덤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5년 후 10년 후의 미래를 보고 해야 한다. 나느 메리케이를 하면서 기적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자주 사용한다.


 -왜 그런가?

 나도 기적을 만들어냈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중에도 기적을 이뤄내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우울증에 걸렸던 22세의 아가씨도 메리케이에서 기적을 이뤄냈다. 그는 ‘내 심장과 같은 회사’라고 말한다. 메리케이를 통해 가치관이 달라진 사람들도 많다. 메리케이는 행복한 비즈니스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서는, 헌신하겠다는 마음이 없이는 절대로 성장할 수가 없다. 이것이 메리케이의 철학이다.

 

 

권영오 기자chmargaux@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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