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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오의 구구절절 | 정지만 매나테크 플레티넘 프레지덴셜 디렉터

성공이란 내가 이룬 만큼 다른 사람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

  • (2015-01-30 00:00)

 정지만의 뚝심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다. 모두가 흔들릴 때도 그는 자리를 지켰고 매나테크가 마이너 리그를 벗어나는 데에도 한 몫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었다. 듣기에는 그저 저돌적인 이미지였는데 막상 만나고 보니 논리적이었고, 설득력마저 갖추고 있었다. 특히 반가웠던 것은 매나테크를 만나게 된 계기가 <다이렉트 셀링>이었다는 점. 정지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가 꿈꾸는 미래를 들었다.


 -매나테크는 어떻게 만났나?
 <다이렉트 셀링>의 기사를 보고 직접 정지원 지사장을 찾아갔다.


 -원래 하이리빙 출신 아닌가?
 매나테크로 옮겨올 때는 유니시티를 하고 있었다.


 -네트워크 비즈니스 경력은?
 한 20년 됐다. 매나테크는 10년 됐다. 암웨이를 처음 접해 3년 정도 하고, 하이리빙과 유니시티를 거쳤다. 유니시티에서는 정대근 사장이 내 스폰서였다. 지금도 가끔 전화 온다.


 -매나테크로 옮겨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유니시티가 굉장히 힘들었다. 회사가 매각이 되고, 보상플랜이 계속 바뀌면서 어려웠다. 운영위원이었으므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파트너들에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철판을 깔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있는 대로 이야기하면 남을 사람이 없을 것 같고. 그 과정을 2년 가까이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다. 그 때 <다이렉트 셀링>에서 매나테크라는 회사의 기사를 봤다. 당시 지사장이 정지원 씨였는데 유니시티를 잠깐 거치셨다. 전화를 해서 축하 인사를 하고 차 한 잔 하자고 했다. 거기에서 사업설명 듣고 결정했다.


 -정지원 사장에게도 행운이었겠다.
 당시 정지원 사장도 약간 어려움을 겪을 때였다. 오픈 당시 첫 달에 PD 직급자가 다섯 명 나왔다가 다음 달에 서로 싸우고 흩어진 상태였다. 와 보니까 패잔병만 있는 느낌이 들었다. 운이 좋았는지 내가 오고 나서 고속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300% 이상 성장했다. 당시에 신인왕 상도 받고 최고 사업자 상도 받았다.


 -그 후 약간 주춤하지 않았나?
 회사에 문제가 좀 있었다. 2006년 경 매나패스트에 참가를 했는데 당시 맷 대니얼 박사라는 분이 계셨다. 본인이 의사로서 임상 실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진료 기록이나 사진 등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과대 광고를 하지 않고 사실만을 이야기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다가 소송이 들어왔다. 제약회사에서 우리 ‘글리코’ 특허에 대해 천연물질은 특허의 대상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소송이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흔들렸고, 일부 똑똑한 사람들은 세계 굴지의 제약회사를 상대할 수 없다며 떠났다. 그런데 우리가 이겼다. 그런데 후폭풍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과대광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그때 본사에서 전 회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과대광고를 통해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면 모두 환불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정작 반품 들어온 것은 거의 없었다. 그때는 회사가 망하는 줄 알았다.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연구진들도 모두 손을 뗐다.
 세계 최초로 샴쌍둥이 분리 수술에 성공했던 밴 카슨 박사가 있다. 그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것까지 가짜라고 매도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모 일간지에서 미국에서 부정적으로 보도한 기사를 그대로 복사해서 실었다. 그러니 사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매나테크를 그만 둘 생각은 하지 않았나?
 나는 미국에서 모든 걸 보고 왔으므로 어떤 게 진실인지 알고 있었다. 매나테크는 약간 독특한 점이 있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회원이 빠지면 매출이 빠지는데 우리는 사람이 빠져도 매출은 유지된다. 한 번도 20억원 밑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 강력한 매니아층이 지지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지하다가 2012년 9월부터 매출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클린>이라는 책이 출판된 게 계기가 됐다. <클린>의 핵심적인 내용은 우리 몸은 자가 치유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가 치유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음식과 환경오염 등 독소 때문이다. 몸이 그것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다보니까 자가 치유력이 발현되지 않는다. 클린을 하기 위해서는 독소를 차단하고 천연 식재료를 섭취하면 된다. 천연 제품을 섭취하자면 힘도 많이 들고 엄청나게 많이 먹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대신 우리 제품을 적용해보자고 생각한 것이 폭발적인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암웨이에서는 어느 직급에 있었나?
 루비DD. 9개월만에 달성했다. 다이아몬드까지만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루비에 갔는데 돈이 안 됐다. 당시 나는 보상플랜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었다. 스폰서에게 물었다. 나는 보상플랜에 대해 실감나게 풀고 싶다. 어떻게 해서 다이아몬드가 1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싶은데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300∼400만원밖에 안 나온다. 실제 통장에 얼마나 들어 오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게 맞다고 하더라. 충격이었다. 그때부터는 전달을 할 수가 없었다. 양심에 거리끼니까 자신감도 없고. 네트워크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인원이 빠지는 숫자보다 가입시키는 숫자가 많아야 하는데 그게 멈춘 거다. 다이아몬드가 눈앞이었는데.
 그 와중에 암웨이를 하다가 하이리빙으로 옮긴 사람이 찾아와서 우리는 계산하고 똑 같다고 이야기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암웨이가 아니면 안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으므로 하이리빙 얘기는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밤이나 낮이나, 밤 열 두시에도 찾아와서 한 번만 들어보라고 이야기했다. 그의 정성에 감복해서 가서 들었다. 몇 번 들었더니 내가 굳이 암웨이만  고집할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리빙에서는 골드하이마스터에 가니까 약 800만원의 수입이 됐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중에도 글로벌 기업과 자꾸 비교되더라. 허접한 제품도 많았고. 회사 운영위원으로 있다보니까 회사에 갈 일이 많았는데 회사에 갔다오면 오히려 의욕이 꺾이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중에 함께 암웨이를 했던 사람이 유니시티를 들고 왔다. 당시에는 렉솔이었다. 첫 번째 말이 100년 된 제약회사라는 거였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완전 신뢰가 갔다. 그 얘기를 듣고 고민이 생겼다. 그 무렵 하이리빙도 망하느니 마느니 얘기도 많았고.
 글로벌에 대한 미련이 있는 터였으므로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유니시티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파트너들과 함께 가기로 했었는데 모 스폰서의 방해 작업으로 혼자 옮겨가게 됐다. 혼자 영주에서 콜드컨텍을 하면서 유니시티를 시작했다.


 -영주에는 왜 갔나?
 부도나서. 하이리빙에서도 콜드컨텍을 해서 만들어 놓았던 거다. 어쨌든 다시 콜드컨택을 해서 6개월만에 또 최고 직급엘 갔다. 1년쯤 지나서 이진성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문을 들어보니 당신 월급이 3000만원이 넘는다는 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당시만 해도 하이리빙에서 3000만원 받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 매출은 100억원을 넘어섰는데 1500만원 받는 게 최고였고, 나는 회사 매출이 3억원이었는데 3000만원을 받았던 거다.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이진성 이진옥 박진희 등이 있더라. 컴퓨터를 열어서 수당 명세서를 보여줬다. 다들 충격을 받았지. 그리고는 하이리빙 여행 가서 의논을 해서 단체로 유니시티로 옮겨왔다. 그런데 그들은 옮기면서 미국 스폰서를 선택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혼자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랬더니 이번에는 사업설명을 해달라는 거다. 유니시티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으니까. 옛정을 생각해서 몇 번 해줬다. 1만명 옮기기로 했다가 약 2000명 정도가 옮겼다. 그때 사업이란 자기가 노력해서 일군 것이 내 사업이지 뭉텅이로 옮기거나, 떼서 붙이는 것은 다 없어진다는 걸 배웠다.


 -매나테크는 어떤 회사인가?
 나는 매나테크를 상당히 크게 본다. 매나테크는 ‘글리코’라는 당영양소를 독점으로 가지고 있다. 제품력이 굉장히 탁월하다. 제품이 좋은데 왜 좋은지 설명할 수 있는 제품은 몇 안 된다. 그렇지만 매나테크는 왜 좋은지 설명할 수가 있다. 글리코와 관련된 이론을 내놓은 사람들은 모두 노벨상을 받았다. 다섯 번이나. 이들이 내놓은 자료들을 우리나라의 전문가들이 검토를 해보면 완전 흥분 상태가 된다. 자기들은 외워서 공부했는데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왜 그렇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있으니까. 원인과 결과가 분명해서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전문가 집단이 들어왔고 폭발하기 시작했다.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오히려 입 단속하는 게 더 힘들다. 체험했더라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한다.
 매나테크에 포진하고 있는 수많은 석학들은 헤드헌터를 통해서 온 것이 아니다. 다들 글리코에 매료돼 자원한 사람들이다.


 -재정적으로도 튼튼한가?
 2007년도부터  소송을 당하면서 회사가 많이 어려워졌다. 작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주가도 적자일 때는 폭락했다가 흑자로 전환하면서 많이 올랐다. 3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지금은 25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최고 직급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제품력이다. 그리고 <클린>을 읽고 그것을 시스템화 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그럼 당신이 매나테크 폭발의 도화선이 된 것인가?
 나보다 <클린>을 먼저 읽은 사람이 있다. 이연자 씨라고. 그 분이 처음에 힌트를 줬다. 나는 그 힌트를 잘 활용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당신의 비전은 무엇인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초보자가 쉽게 복제할 수 없으면 이 사업은 어려운 사업이다. 설명을 듣고 숙지한 다음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우리는 3주에 걸쳐 클린을 하고, 그 과정에서 체험하고 알게된 것만 이야기하면 된다. 어떻게 했더니 어떻게 됐더라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몸의 변화를 수치화 할 수 있으면 더 좋고.
 3주는 길다. 처음에는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하다 보면 대부분 지친다. 그래서 우리는 카카오톡에 클린방을 만들어서 일률적으로 관리한다. 물 마실 시간, 쉐이크 마실 시간, 간식 시간, 귀마사지 등등 구체적으로 안내를 한다. 그러면 끝까지 완주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그 다음에는 사업자방으로 옮긴다. 그 방에서는 사업자를 위한 매뉴얼을 올려준다. 초보자들도 쉽게 한다.


 -얼마나 벌어서 어떻게 쓰나?
 우리 마케팅의 특징은 최고 직급에 가도 엄청난 돈이 들어오지는 않는다. 월 4000만원에서 5000만원 정도 번다. 몇 억씩 벌어야 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데 벌어보니까 이 정도도 작은 돈은 아닌 것 같다.
 처음에는 돈이 없던 시절 생각해서 저축을 많이 했다. 요즘엔 그걸 다 깼다. 우리 회사에서 엠브로토스를 하나 사면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에게 또 하나가 전달되는 기부 프로그램이 있다. 그렇다보니 회원들도 기부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사업을 하다보니 파트너도 그렇고 주위 사람도 그렇고 아주 절박한 사람이 많더라. 그럴 때마다 적금을 하나씩 깨서 도와줬다. 그렇다 보니 남아 있는 게 없다. 멤버가 재산이고 인세 개념으로 꾸준히 돈이 나온다면 그걸 쌓아놓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돈은 필요할 때 써야하고,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때 나도 가장 행복하더라. 정말 절실한 사람을 지원하고 그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그런 쪽으로 많이 쓰고, 교회에 다니니까 십일조도 하고.


 -당신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라면?
 가족. 젊었을 땐 몰랐는데 부도가 나니까 그동안 알던 사람들이 싹 사라지더라. 오로지 가족만이 남더라. 어려울 때나 잘 나갈 때나 늘 붙어 있는 것은 가족밖에 없다. 아이들이 둘 있는데 다행히도 잘 자라줬다. 지난 10월에 하나는 장가를 갔다.


 -연세가?
 쉰 셋. 빨리 간 거지. 내가 그 녀석을 스물 여섯에 낳았으니까. 걔는 스물 일곱에 간 거다. 신부감은 있는데 장가 갈 생각을 안 하기에 물어봤더니 자리를 잡으면 간다고 해서 그 정도는 해줄 테니까 가라고 그랬다. 유학을 다녀왔는데 매나테크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해서 지금 배우고 있다. 헬스클럽으로 다니면서 열심히 하고 있다. 막내 딸은 미국에서 유학중이다.
 내 꿈은 가족 전체가 매나테크 사업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살고 싶은 곳에 가서 살면서.


 -어느 나라에 가서 살고 싶은가?
 지금은 한국이 좋다. 아직 할 일도 남아 있고.


 -매나테크는 4레그인가?
 그렇다. 지금 2레그는 완벽하게 돼 있고 나머지 두 줄은 좀 더 다지기만 하면 된다.


 -당신의 꿈은 어떻게 변해 왔나?
 어렸을 때는 굉장히 가난했다. 돈 버는 게 막연한 꿈이었다. 돈은 좀 벌었다. 손대는 것마다 실패한 적은 없었는데 대전에서 자판기 총판을 하다가 부도를 맞았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총판이 다 무너지니까 본사가 견디지를 못하더라. 할 수 없이 정리하는 과정에서 손해를 많이 봤다. 최선을 다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더라도 손해를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라는 걸 배웠다. 그 때 네트워크 비즈니스를 배웠다. 그렇지만 부도 나고 네트워크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콜드 컨텍을 하게 됐다.
 나는 좋은 집이나 좋은 자동차, 명품 따위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다.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돈을 더 벌더라도 다른 것을 할 생각은 없다. 현재까지는.


 -네트워크 비즈니스를 택한 것에 대 후회한 적은 없나?
 없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회사가 힘들어졌을 때. 나는 견딜 수 있었는데 파트너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 당시에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성장하는 걸 볼 때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 파트너 사장님으로부터 빚 다 갚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찡 하더라. 그는 자동차도 벤츠로 바꾸고, 집도 송도로 옮기고, 아이들도 국제학교 보내고.


 -누리는 일만 남은 것인가?
 아직은 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좀 쉬자는 마음으로 책도 안 보고 허랑방탕했다. 늦잠도 자고. 그런데 결코 좋은 일이 아니더라. 폐인이 되는 느낌이었다. 자유라는 것은 선택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지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가장 행복할 때는 역시 사람들을 만나 사업 얘기를 할 때다. 퍼져서 쉬는 게 결코 좋은 게 아니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이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성공은 내가 이룬 만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지원해서 다 잘 되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권영오 기자chmargaux@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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